[MT리포트]옛 실손보험, 어찌하오리까(下)

정부가 이르면 5월 옛 실손의료보험(1세대·초기 2세대)을 5세대로 전환하는 방식의 계약재매입을 추진하지만 보험업계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오는 7월 보험대리점(GA) 판매수수료 1200% 제한(1200%룰) 시행을 앞두고 계약재매입을 내세운 부당 승환이 대폭 늘어날 수 있어서다. 5세대 전환률이 예상보다 높으면 보험사별로는 수천억원에서 조단위의 재무적인 부담도 떠안아야 한다.
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생명·손해보험협회와 보험사들은 최근 금융위원회에 계약재매입 시행 반대 입장을 전달했다. 실손보험 정상화라는 당초 목표 달성 보다 보험사의 재무적인 충격, 우량고객의 이탈로 인한 손해율 악화, GA 절판마케팅 등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금융당국 입장이 강경한 만큼 제도를 시행하더라도 시점을 11월 이후로, 보험료 50% 할인 적용기간을 3년이 아닌 2년으로 단축하는 안을 업계는 대안으로 당국에 제시했다.
보험업계가 시행 시기를 연기해 달라고 하는 이유는 오는 7월 GA에 1200%룰이 처음 적용되기 때문이다. 1200%룰이란 보험설계사에 지급하는 초년도 판매수수료가 월납 보험료의 12배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다. 규제가 시행되면 GA 소속 설계사의 수입이 초기에 줄어들 수 있는 만큼 최근 GA 모집 채널에서 '절판마케팅' 등 과당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계약재매입이 GA 채널의 과도한 마케팅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며 "5세대 실손보험은 옛 실손 대비 보장 내용이 축소되는데 설계사들이 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승환계약을 유도하면 다수의 민원과 분쟁이 발생할 소지도 다분하다"고 우려했다.
본질적으로는 보험사들의 재무적인 충격도 크다. 보험료를 50% 할인하면, 해당 계약은 적자 계약이 되기 때문에 보험사 돈으로 손실을 채워야 한다. 전환율이 평소 대비 2배 이상 늘어날 경우 중소형보험사는 수천억원, 대형 보험사는 '조 단위'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연간 순익이 최소 10% 이상 깎일 수 있다는 게 업계 추정이다. 보험사의 재무적인 충격을 감안해 할인 기간을 2년으로 단축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는 이유다.
보험업계는 5세대 실손도 단독 상품이 아닌 특약형으로 도입할 것을 건의했다. 1세대 실손의 경우 대부분 주계약에 특약형태로 실손보험이 팔렸다. 1세대 실손을 해지하는 과정에서 주계약까지 동시 해지될 수 있는데 이 경우 보험계약자, 보험사 모두 타격을 볼 수 있다. GA 채널에서 수수료 수익 극대화를 위해 주계약 해지와 신상품 가입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보험업계는 또 새 회계제도(IFRS17) 하에서의 5세대 실손보험 회계처리도 예외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손실계약을 그대로 회계처리하면 보험부채가 단기에 대폭 늘어날 수 있어서다.
독자들의 PICK!
실손보험 정상화를 위해선 근본적으로 보험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5세대 실손이 출시되면 규정상 통계가 충분히 쌓일때까지 3년 이상은 보험요율 조정을 하지 못하는데, 보험사들은 정확한 손해율을 반영해 2027년 혹은 2028년에는 보험료 조정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보험업 감독규정 상의 실손보험료 조정한도를 25%로 제한한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량 계약은 5세대로 갈아타고, 의료 이용을 많이 하는 계약자만 1세대에 남으면 손해율이 치솟을 수 있는데, 보험료는 규정상 25% 이상 올리지 못한다"며 "계약재매입을 시행하면 이같은 악순환이 반복될 우려가 있어 보험료 정상화를 위한 규제 완화도 동시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손의료보험 적자가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도수치료 등 일부 과잉진료가 일어나는 진료에 대해서는 관리급여로 전환해 가격 통제를 시작하기로 했다. 5월에는 5세대 실손보험을 출시해 중증치료는 과감하게 보장하고 비중증치료는 본인 부담을 대폭 높이기로 했지만 재가입 주기가 없는 1세대·초기 2세대 실손보험을 해결하지 못하면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손보사의 실손보험 적자규모는 2022년 1조5892억원, 2023년 1조9838억원, 2024년 1조5788억원을 기록했다. 매년 조단위 적자가 이어지고 최근 3년 간 5조원이 훌쩍 넘는다. 지난 5년간 누적 적자규모는 10조원에 달한다. 보험업계에서는 연평균 2조원 가량의 실손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앞으로도 실손보험 적자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새로운 비급여 청구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어서다.
최근엔 비만치료제로 알려진 마운자로가 보험업계의 새로운 골칫거리다. 지난해 8월부터 청구되기 시작한 마운자로가 당뇨 치료 목적으로 사용됐다며 보험금이 지급되는 사례다. 위고비가 비만체료제로만 허가를 받아 보험금 청구에서 면책되는 반면 마운자로는 당뇨병 치료제로 허가를 받아 청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손보4사(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메리츠화재)의 마운자로 청구 건수는 지난해 8월 24건에 불과했지만 지난 2월 3264건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비급여 청구금액은 1000만원에서 12억2600만원으로 폭증했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특정 항목에 대한 비급여 청구가 규제를 받는다고 해도 마운자로와 같은 새로운 비급여 항목이 계속 나온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지난해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열고 비급여와 실손보험 개혁안을 도출했다. 이 가운데 도수치료 등 과잉 진료가 남발되는 일부 비급여를 관리급여로 전환해 정부가 직접 가격을 통제하는 논의가 최근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비급여를 급여체계 안으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수가, 이용 제한, 환자 본인부담 구조 등의 설계를 다시 짜는 것이다. 실손보험 뿐 아니라 비급여 과잉진료를 차단해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으려는 의도다.
이와함께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선택형 특약과 계약재매입 논의도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1세대와 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가 일부 비급여 진료를 보장에서 제외하는 대신 보험료를 낮추는 방식의 선택형 특약이 5세대 실손보험 출시와 맞물려 곧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함께 1세대와 2세대 가입자를 아예 5세대로 전환 시키는 계약재매입 논의도 수면위로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