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 주로 업무상 배임·횡령죄…개인적인 착복의사 여부가 관건

검찰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롯데 오너 일가가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다.
13일 검찰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와 첨단범죄수사1부로 구성된 수사팀은 지난 10일 서울 중구 롯데그룹 정책본부 사무실과 롯데호텔, 롯데쇼핑, 롯데홈쇼핑 등 계열사 6곳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오너 일가의 내부거래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다.
계열사를 활용한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 행위가 또 사회의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그동안 대기업 비자금 조성 행위에 대한 법원 판결을 살펴봤다.
사실 비자금이란 법적 용어가 아니다. 비자금에 대한 법적 정의는 없지만 기업이 만든 비자금은 주로 탈세행위나 각종 불법 행위를 통해 모은 돈을 추적이 불가능하도록 관리하고 있는 자금을 말한다. 이 때문에 비자금 조성 행위에 대해 처벌이 가능한 법조항은 없다. 따라서 언론에서 '비자금 조성 혐의'라고 언급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개별적인 사안마다 비자금 조성 행위와 조성 전과 후의 상황이 어떤 범죄에 해당되는지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비자금 조성 행위 자체만으로 처벌되는 것 아니라 다른 상황 따져야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범죄들에 대한 법원의 입장은 다소 복잡하다. 보통 재벌가의 비자금 조성 사건에서는 주로 업무상 배임·횡령죄가 문제다. 그러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해서 바로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비자금이 회사의 일반자금 속에 숨겨져 있지만 공식적으로 회계처리가 된 경우는 비자금 조성 행위 그 자체만으로는 불법영득의사(불법으로 다른 사람의 재물을 취하려는 의사)가 없다고 봐 배임죄나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만일 비자금이 회사의 공식적인 회계처리에서 누락된 경우라면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한다. 회사자금을 개인적으로 착복할 목적이 발견된 경우에는 비자금 조성 행위만으로도 문제가 된다. 그러나 비자금을 조성했더라도 자금을 개인적으로 착복하려는 목적이 입증되지 않는 한 비자금 조성 행위 그 자체만으로는 횡령죄나 배임죄가 성립하기 어렵다.
어떤 경우든 조성된 비자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경우에는 유죄가 인정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사적 용도 사용이 입증된 금액에 한해 유죄를 인정하기 때문에 조성된 전체 비자금 액수에 비해 현저하게 적은 금액만이 범죄액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낮은 형량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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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대금 과다 계상·고가 미술품 구매 등 수법 다양
그동안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 행위 수법은 다양했다. 베트남 고속도로 건설 사업을 진행하며 공사 대금을 과다 계상하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하도급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았던 포스코건설 모 임원의 사례가 있다. 그는 지난해 9월 1심 재판에서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6개월, 추징금 1억1300만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비자금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했다.
또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은 2013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원심 확정 판결을 받았다. 담 회장은 해외 유명작가 고가미술품 10점을 계열사 법인자금으로 매입해 성북동 자택에 설치하는 수법으로 회삿돈 140억원을 빼돌렸다. 대법원은 "담 회장이 아내를 통해 회사자금으로 미술품을 구입한 행위는 불법영득의사에 기한 것으로 업무상 횡령죄를 구성한다"고 말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직원 급여를 허위로 신고하거나 직원들에게 작업복 대금을 받고도 무상으로 지원한 것처럼 꾸며 수십억 원을 빼돌렸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이 회장은 2012년 항소심에서 징역 4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횡령·배임과 불법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은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은 올해 항소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인천제강소 파철을 무자료로 판매해 88억원을 빼돌리고, 가족명의의 계열사에 급여를 주고 거래한 것처럼 꾸며 회삿돈을 횡령했다. 이 돈을 원정도박과 은행 대출이자 납부 등 개인적 목적으로 사용해 문제가 됐다.
롯데그룹의 경우 계열사 간 자산거래로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알려졌다. 이에 따라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자금 흐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승한 변호사(법무법인 유스트)는 "계열사 간 자산 거래로 비자금을 조성한 경우 일반적으로 자산을 매각한 회사 관계인의 경우 업무상 횡령의 혐의를, 자산을 취득한 회사 관계인의 경우 업무상 배임의 혐의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장호식 변호사(법무법인 서율)은 "어떤 행위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명확한 사실관계가 필요하다"며 "행위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업무상 배임이나 횡령 이외에 탈세 관련 범죄도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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