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나가게 할 것도 아닌데 3D프린터로 사제총기를 못 만들 것도 없어요."
11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3D(3차원)프린팅 업체 전기환 대표(53)의 말이다. 도면만 있으면 3D프린터로 총을 만들 수 있는데 전 대표가 온라인상에서 총기 제작에 필요한 3D 프린트 도면 구하는데 까지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사제총기 제작이 손 쉽게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8일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가 3D프린터로 만든 사제총기에 맞아 사망한 가운데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인터넷 공간에서 유포되는 총포류 제작 매뉴얼 등에 대한 집중 단속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전 대표는 이날 마포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직접 포털사이트에 싱기버스, 터보스퀴드 등 3D프린트 도면을 공유하는 외국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해 시범을 보였다.
해당 커뮤니티에서 총(gun), 권총(pistol), 소총(Rifle) 등을 검색하자 어렵지 않게 총기 제작에 필요한 3D모델링 파일과 도면을 찾을 수 있었다. 3D모델링 파일은 완성된 제품의 형태와 실제 치수 등을 데이터로 저장한 파일이다. 이들 파일은 총기를 구성하는 모든 부품의 수치가 들어 있어 그 자체로 총기 설계 도면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미국 주요 도시의 경찰과 FBI(연방수사국)요원들이 사용하는 글록17이나 러시아군이 사용하는 AK소총 등의 3D모델링 파일이 거래되고 있었다. 한국군 제식소총인 K2의 3D모델링 파일도 950달러(한화 약 123만원)를 지불하면 다운로드 받을 수 있었다. 전 대표는 "비싼 것 같아도 파일을 한 번만 받으면 K2를 무한히 찍어낼 수 있다"고 했다.

이른바 고스트건(Ghost gun)이라 불리는 개인제작 총기 도면은 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D사이트에서는 월 구독료 5달러(한화 약 6500원)를 내면 수십종의 사제총기 도면을 다운받을 수 있었다.
일반 3D프린터로 만든 총기는 내구성이 약해 실제 총기로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H사 등 일부 3D프린터를 사용하면 120℃에서도 변형이 발생하지 않는다. 내구성도 강하다.
전 대표는 "탄약의 폭압과 열을 견뎌야 하는 약실 등 총기 내부 구조나 부품 일부를 금속으로 제작하고 외부는 PA12소재를 활용하면 3D프린터로 총기 제작이 충분히 가능하다"며 "고스트건은 구조가 간단해 더 쉽다"고 했다.
총기 제작을 위해 대당 가격이 5억~15억원에 이르는 금속 3D프린터기를 개인이 직접 구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국내에도 3D프린터 소재로 금속을 활용하는 제작업체들이 있다.
3D 프린팅 업체의 의심을 피하고자 업체별로 부품을 나눠 맡기거나 일부 부품은 해외업체에 주문할 수도 있다. 국내 금속 3D프린팅 업체에 글록17의 권총손잡이와 하단부 몸체 부분을 주문할 경우 제작기간은 2~3일, 제작비는 150만~2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이·약실·총열 등 금속으로 제작해야 하는 총기 내부부품은 철공소에서도 제작이 가능하다. 인터넷에서 3D프린팅 도면을 구해 서울 종로구 청계천이나 영등포구 문래동 일대의 철공소에 주문을 맡길 수도 있다.
독자들의 PICK!
문래동에서 ㄱ철공소를 운영 중인 A씨는 "탄을 만드는 게 어렵지 그에 맞는 총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ㄴ철공소 관계자는 "도면만 있으면 총보다 더 복잡한 정밀 기계도 다 만든다"면서도 "총열, 포신 등 무기류에 쓰일 것 같은 부품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어줄 업체는 없다"고 했다.
ㄷ정밀 기계 업체 관계자는 "아베 총리 저격에 쓰인 산탄총 형태는 만들기 쉽지만 총열에 강선을 그리는 기술은 난이도가 높은편"이라며 "총포류는 강선 기술이 없다면 조악한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했다.
강선은 총열 안쪽(총강)에 나선형으로 파낸 홈을 말한다. 격발시 탄환이 홈을 따라 회전하면서 탄환이 목표물에 깊히 박히게 된다.
경찰 관계자는 "국내에서 현재까지 3D프린터를 활용한 총기 제작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며 "철공업계나 3D프린팅 업계에 총기류 제작이 불법이라는 점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도면을 구해도 최종 제작단계가 막혀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탄의 재료가 되는 화학제품은 정부의 감시 대상이라 이를 이용해 탄을 제조하는 건 매우 어렵다"고 했다.

경찰은 사제총기에 저격당해 사망한 아베 전 총리 사건의 여파로 발생할 수 있는 모방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인터넷 공간에서 유포되는 총포류 제작 매뉴얼 등에 대한 집중단속에 나설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인원을 지원받아 약 한 달 동안 인터넷 공간에서 공유되는 총기류 제작 방법 등 유해정보에 대해 집중 감시기간을 가질 예정"이라며 "아베 전 총리 사건을 계기로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모방 범죄를 원천 차단하려는 조치"라고 했다.
경찰은 총포·화약류 제조법 등 집중감시를 위해 시·도 경찰청 산하 안보수사국 소속 사이버요원과 전국 258개 경찰서 총포담당 경찰관, 일선 수사부서 소속 사이버 명예 경찰관인 '누리캅스' 등 1000여명의 인원을 투입한다.
현행법상 사제 총기 제조법을 인터넷에 올리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통상 해외 사이트를 통해 우회해서 글을 올리는 경우가 많아 게시자를 특정하기 어려웠다.
경찰은 게시자를 특정해 처벌하는 것과 별개로 집중 감시와 단속을 통해 해외IP나 사이트를 통해 무분별하게 올라오는 총기 제조법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 신속하게 삭제·차단 조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