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씨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건축업자 B씨 제안을 받고 투자를 했다가 1억원에 가까운 손해를 보고 B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B씨는 이자 지급 협약서를 써놓고도 7년간 이자를 한 차례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A씨가 이의신청을 해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은 1년이 넘게 추가 소환 조사 등을 진행하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한 A씨가 의견조회를 신청했고 검찰은 그 직후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불기소 사유를 확인하니 경찰이 불송치를 할 때 냈던 의견이 그대로 적혀있었다.
A씨 사례처럼 수사기관의 늑장 수사로 피해를 보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만한 조치가 없이 수사가 상당 기간 지연되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이다. 검찰개혁에 따른 사직자 증가 등의 파급효과로 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사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 수사 지연의 가장 큰 요인이다. 지난해 1년간 검찰 퇴직자는 175명으로 최근 5년 중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도 1분기 동안에만 58명이 퇴직했다. 일명 '3대 특검'(내란·김건희·순직해병)에 파견된 검사와 2차 종합특검에 추가로 파견된 검사 수 등을 고려하면 일선청에 남아 사건을 처리하는 검사 수가 평상시 대비 3분의 2 수준이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퇴직자도 많고, 실무 역량이 뛰어난 허리급 연차 검사들이 파견을 가기 때문에 단순히 사람이 부족한 게 아니라 체계가 무너지는 수준"이라고 했다. 안미현 대전지검 천안지청 부부장 검사는 지난달 25일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서 업무 과중으로 후배 검사가 응급실에 간 일을 거론하며 "수사검사 1인당 미제는 500건을 돌파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인력난에 자연히 사건의 적체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전국 검찰청의 미제사건은 12만1563건에 이른다. 최근 5년간 연도별 5만∼6만건 수준이었던 장기 미제사건이 최근 들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미제사건 처리가 늦어지면 차장검사 보고를 거치게 해 반강제적으로 미제사건 수를 낮추던 내부 지침도 현재는 기간을 한참 더 늘려주는 등 유명무실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폐지를 앞둔 검찰청 내부의 무기력함도 사건 적체를 만드는 요소라는 분석이 나온다. 성범죄 사건을 대리하는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요즘 사건 처리가 기본 2∼3년은 걸려 성범죄 사건 피해자들이 고소를 망설일 정도"라며 "검찰개혁이 진행되면 검사의 책임은 완전히 사라질 거라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일을 열심히 안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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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전에 사법 체계가 한 차례 바뀌면서 사건 처리가 늦어졌는데 앞으론 더 심해질 것"이라며 "피해자 측을 위해서 변호사가 직접 관련 자료를 모아 제출하는 등 변호사가 수사기관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 역시 "곧 회사가 사라진다고 하는데 열심히 할 직원이 어딨겠느냐"고 설명했다.
검찰청은 경력검사 임용 절차를 앞당기는 등 인력 충원을 통해 미제사건 적체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계획이지만 해결이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는 법조 경력 2년 이상의 변호사를 검사로 뽑는 경력검사 임용절차를 앞당긴 상태다. 또 미제가 쌓인 검찰청에 저연차 검사 파견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