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만 에이스를 벤치에 앉힌 것이 아니었다. 같은 조 체코 역시 반드시 이겨야 했던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핵심 공격수 파트리크 쉬크(레버쿠젠)를 선발 명단에서 제외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체코는 대패를 당했고, 20년 만에 밟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도 조별리그 탈락의 쓴맛을 봤다.
체코는 25일(한국시간) 멕시코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멕시코와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0-3으로 완패했다. 이로써 체코는 1무2패(승점 1)라는 처참한 성적과 함께 A조 최하위로 이번 월드컵 여정을 마쳤다.
이날 '75세 노장' 미로슬라프 코우베크 체코 축구대표팀 감독은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대표팀 핵심 공격수이자 주포인 쉬크를 선발 명단에서 제외했다. 이번 대회에서 무득점 부진에 빠졌다고 해도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최종전에서 에이스를 빼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로이터 통신 역시 "체코는 32강 진출을 위해 필요한 결과를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 공격수 쉬크를 벤치에 남겨뒀다"고 주목했다. 쉬크는 유로 2020 공동 득점왕을 차지했던 공격수이기도 하다.
마치 한국 축구대표팀과 비슷한 장면이었다. 홍명보 감독 역시 A조 최종 3차전 남아공과 맞대결에서 '캡틴' 손흥민(LAFC)을 선발 명단에서 제외하고, 대신 오현규(베식타스)를 최전방 공격수로 내세웠다. 하지만 결과는 잔혹했다. 오현규는 전반 내내 고립되며 제대로 된 슈팅 기회를 만들기 어려웠다. 홍명보 감독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손흥민을 투입했지만, 끝내 상대 골문을 열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은 후반 18분 타펠로 마세코(AEL 리마솔)에게 결승골을 내주고 0-1로 패했다. 홍명보 감독의 '손흥민 선발 제외' 승부수가 결과적으로 통하지 않은 셈이다. 결국 한국은 무승부만 거둬도 A조 2위로 32강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1승2패(승점 3)로 A조 3위가 되면서 다른 조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영국 매체 더선도 이 장면을 주목했다. 매체는 경기 후 "홍명보 감독은 많은 이들이 아시아 역대 최고 선수로 꼽는 팀의 주장 손흥민을 선발 명단에서 제외하는 충격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짚었다. 이어 "홍명보 감독은 경기 흐름을 바꾸기 위해 후반 시작과 동시에 손흥민을 포함한 3명의 교체 카드를 단행했다"면서도 "한국은 경기 막판 동점골을 위해 거세게 몰아붙였으나 시간이 부족했다"고 전했다.
체코도 다르지 않았다. 초반 멕시코를 상대로 거세게 맞서는 듯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를 내줬다. 이후 멕시코의 빠른 공격과 측면 침투에 연거푸 흔들렸고, 후반에만 세 골을 허용했다. 코우베크 감독은 0-2로 뒤지던 후반 19분 뒤늦게 쉬크를 투입했다. 하지만 이미 경기 흐름은 멕시코 쪽으로 완전히 넘어간 뒤였다. 쉬크는 볼 터치 5회에 그쳤고, 슈팅은 단 한 차례도 기록하지 못했다. 결국 체코는 최종전 패배와 함께 월드컵 탈락을 받아들여야 했다.
독자들의 PICK!


영국 더 가디언은 체코의 탈락을 강하게 비판했다. 매체는 "월드컵을 떠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강팀을 상대로 정면 승부를 펼치다가 영광스럽게 패배할 수도 있고, 운이 따르지 않아 심판 판정과 운명을 원망하며 짐을 쌀 수도 있다. 퇴장, 자책골, 엄청난 실수로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아니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질 수도 있다. 체코가 택한 길이 바로 그랬다"고 혹평했다.
가디언은 "20년 뒤 북중미 월드컵에 체코가 참가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 유럽 지역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체코에 월드컵 티켓을 내준 아일랜드 팬들 정도만이 '체코가 이 기회를 얼마나 엉망으로 날렸는지'를 떠올릴 것"이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체코의 전술 선택도 꼬집었다. 매체는 "체코가 최종전에서 승리했다면 다음 라운드에 갈 수 있었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코우베크 감독은 쉬크와 토마시 소우체크(웨스트햄)라는 가장 경험 많은 선수 두 명을 선발 명단에서 제외했다. 그 결과 멕시코의 17세 선수 길베르토 모라(티후아나)가 경기를 지배할 길이 열렸다"고 지적했다.
멕시코는 이미 A조 1위를 확정한 상태였다.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은 선발 라인업에 5명이나 변화를 줬다. 일각에서는 멕시코가 주전 대부분을 쉬게 하면서 대회 공정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이는 현실이 되지 않았다. 가디언은 "멕시코는 체코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경기 후 코우베크 감독의 발언도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코우베크 감독은 멕시코전 경기력에 대해 "아마 이번 대회 우리 최고의 경기였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가디언은 "이 말은 설득력이 떨어졌다"며 "체코는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가운데 북중미 월드컵을 떠났다"고 다시 한 번 냉정하게 짚었다.
체코가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른 것은 2006 독일 월드컵 이후 20년 만이었다. 당시 체코는 파벨 네드베드, 토마시 로시츠키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팀을 이끌었다. 첫 경기에서 미국을 3-0으로 완파하며 기대를 키웠지만, 이후 가나와 이탈리아에 연달아 0-2로 패해 1승2패(승점 3), 조 3위로 탈락했다.
20년 만에 돌아온 월드컵에서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성적은 더 씁쓸했다. 체코는 이번 대회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고, 조 최하위로 물러났다. 한국과 체코 모두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에이스를 벤치에 앉히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