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싱성 시대에 요구되는 황색등 리더십"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한 때 현대 기업들이 '과잉 관리되고 리더십이 결여(overmanaged and underled)'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90년대말의 거품 경제가 꺼지고 보니 오히려 '리더십은 넘쳐났는데 관리가 엉망'(overled and undermanaged)이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장밋빛 성장의 호시절엔 최고경영자들은 기업의 활동을 꼼꼼히 챙기기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비전을 제시하며 굵직굵직하게 행동해야 제대로 된 경영자감으로 여겨졌다. 시스코의 존 체임버스, 휴렛팩커드의 칼리 피오리나, 찰스 슈왑의 슈왑, 엔론의 제프리 스킬링 같은 최고경영자들이 비전을 갖춘 리더로 추앙을 받았다.
그러나 호황이 막을 내리고 테러 사태까지 겹치면서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이 같은 '녹색등 리더십'(green light leadership)은 급속히 퇴조하고 대신 무자비한 감원, 급격한 구조조정, 저돌적인 전투력을 구사하는 '적색등 리더십'(red light leadership)에 대한 향수가 짙어지고 있다. 무너진 크라이슬러를 되살려낸 리 아이아코카, 아메리칸 에어라인을 적자의 늪에서 건져낸 로버트 크랜달, 5년 동안 11만명을 감원하며 GE를 탈바꿈시킨 잭 웰치 등이 위기 대처의 리더십으로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즈 앨런 해밀턴과 캘리포니아 대학이 포춘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에는 '청색등 리더십'이나 '적색등 리더십'보다는 '황색등 리더십'(yellow light leadership)이 더욱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황색등 리더십'을 발휘하는 경영자는 기업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되짚어가며 취약점의 원인과 대책을 감정이입 없이 냉정하게 따져가는 '분석적인 경영자'(analytical exeutives)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첨단 기술이나 제품, 전략에 맹목적인 호감을 보이거나 기업의 성장 전망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낙관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수시로 위기의식을 불어넣으며 직원들을 불필요하게 긴장시키지도 않는다.
'황색등 리더십'의 대표적인 인물은 지난 3월 최고경영자 자리를 물려준 IBM의 루 거스너 회장이 꼽혔다. 93년 거스너가 IBM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앉았을 때 '영원한 블루칩'으로 여겨졌던 IBM은 80억 달러에 이르는 적자에 허덕였다. 거스너는 회사가 위기에 빠졌다며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대신 거스너는 IBM을 기술기업에서 서비스 기업으로 바꾼다는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조용하고 꾸준히 자신의 전략을 밀어부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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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너는 PC 사업 투자를 대폭 줄이고 로터스 등 소프트웨어 업체들을 사들였다. 연구개발(R&D) 투자의 25%를 인터넷 응용프로그램 개발에 쏟아부었다. 거스너는 비전을 얘기하는 대신 성과에 집착했다.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직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퇴출시켰다. 객관적인 결과를 놓고 신상필벌하는 엄정한 거스너의 경영방식은 직원들에게 탄탄한 신뢰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거스너는 카리스마를 멀리했고 비전을 강요하지도 않았으며 감성이 풍부한 경영 스타일을 보이지도 않았다. 대신에 불합리를 배격하고 상식을 기초로 운영을 했으며 객관성과 일관성을 중시했다. 감성경영의 대가로 유명했고 IBM의 이사이기도 했던 존슨 앤 존슨의 짐 버크는 바로 이러한 '냉혈한' 같은 거스너의 기질을 높이 평가해 그를 IBM의 최고경영자로 발탁했다. 버크는 거스너에게 농담 삼아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한테도 그렇게 냉정하게 대하느냐"고 물어봤을 정도였다.
9년전 80억 달러의 적자를 보던 IBM은 거스너의 '황색등 리더십'에 힘입어 지난 해 77억 달러의 흑자를 올리고 시가총액도 6배 이상 커지며 '지지 않는 블루칩'의 위상을 되찾았다.
적자투성이에다 무기력증에 빠져있던 닛산자동차를 흑자기업으로 돌려세우며 일약 스타 경영자의 반열에 오른 카를로스 곤도 '황색등 리더십'을 발휘한 경영자로 꼽힌다. 부실기업을 맡은 경영자들은 대개 구조조정과 감원에 매달리는 것이 상례다. 곤도 자구방안을 추진하면서 비용절감에 신경을 썼지만 그보다는 마진율 개선과 자산 효율성 제고에 더욱 힘을 쏟았다. 또한 경쟁업체들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무이자 할부 대출 판매 공세를 펼칠 때에도 "기업의 장래를 당장의 시장점유율과 바꿀 수 없다"는 원칙으로 버텨냈다. 곤의 승리는 규율과 인내의 승리였다.
'황색등 리더십'은 '상황적 리더십'(situational leadership)과는 다르다. 상황적 리더십은 불경기일 때는 거친 경영 스타일을 보이고 호경기일때는 부드러운 경영 스타일을 구사한다. 그러나 '황색등 리더십'을 발휘하는 '분석적인 경영자'는 마키아벨리즘 같은 조삼모사의 경영 스타일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일관성을 철저히 지킨다. 경영 스타일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업무의 실행과 일의 성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휴렛팩커드의 공동창업자인 데이빗 팩커드는 "최대의 만족은 뭔가 쓸모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할 때 생겨난다. 그러나 네가 성취한 것을 자랑하지 말고 곧장 잊어버려라. 그리고 무언가 또다른 의미있는 일을 찾아 나서라"는 말을 남겼다. '황색등 리더십'은 어쩌면 성취와 실패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세우고 '끊임없이 정진하라'는 메시지에 다름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