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일류 중기] 과감한 설비투자, 시장개척으로 세계 최대 전문회사 '우뚝'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오자 직원들이 사장에게 건의문을 건넸다. 임금을 동결하고 보너스를 반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사장은 일거리도 줄지 않았고 자금사정 역시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이를 반려하고 오히려 임금을 5% 인상했다. 그 결과 외환위기 때 매출이 30% 늘어났다. 그 회사가 바로태웅(37,650원 ▲100 +0.27%)이다.
남과 달라야만 성공할 수 있다
1981년 설립 이래 자유형 단조품 생산이라는 한길을 걸어온 태웅은 세계 최대의 자유형 단조 및 링 단조회사로 우뚝 섰다. 조선 기자재, 선박엔진부품을 비롯해 풍력발전기, 원자력·화력발전설비, 석유화학플랜트, 산업기계, 우주항공부품에 이르기까지 다루는 분야도 다양하다.
단조 제품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공구, 자동차 부품 등 표준화된 소형제품을 만드는 금형단조이며 나머지 하나는 조선,발전,플랜트,산업기계 등과 같은 비규격화된 대형제품을 주문생산을 통해 만드는 자유형 단조다.
이중 태웅이 선택해서 도전한 분야는 자유형 단조다. 금형단조는 시장규모가 크지도 않고 경쟁이 치열한다. 또 재고를 쌓아둬야 하는 리스크를 안고 있다. 반면 자유형 단조는 시장규모도 크고 다품종을 소량생산하며 주문방식이므로 재고가 없다. 다만 투자비용이 높은 장치산업인데다 숙련된 기술과 인력이 필요하다. 주로 미국, 유럽, 일본 등 기술선진국에서 발달해 왔던 분야다.
설비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자유형 단조업계의 경우 생산해낼 수 있는 제품의 크기나 종류에서 사실상 성공여부가 결정된다. 쉽게 말해 지름 3000파이(π)의 링 형태 단조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설비를 한 회사가 갖추고 있다면 그 회사가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
태웅의 허용도 사장은 창립 10년째인 1991년 부산 다대단지로 이동하면서 사운을 건 모험을 했다. 다대 단지에 2600평의 공장 건설과 2000톤급 프레스를 갖추면서 국내 처음으로 링 롤링 밀이라는 설비를 도입했다. 자본금 5000만원인 회사가 20억원 짜리 기계를 덜컥 들여온 것이다.
제대로 된 설비투자를 갖추지 못해 회사 설립 전 7년 동안 그가 몸담았던 대동단조가 고전 끝에 망하는 것을 경험한 뒤 내린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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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사장은 빚 때문에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신기계를 들여온 것은 원가절감과 아울러 수출계약으로 이어졌다. 즉 일본에서 그만한 설비를 갖춘 회사가 없자 도시바가 단조품 주문을 낸 것. 설비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얻은 차입금은 6년만에 모두 갚았다.
이후로도 태웅은 단조제품 생산에 적합한 설비를 갖추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5000파이급에 이어 9000파이급 롤링 밀을 가장 먼저 들여왔으며 단조 프레스도 8000톤급을 확보하며 일본,유럽 경쟁자들보다 우위에 서서 관련 시장을 선점했다.
고비라고 피해 가지 않았다
모든 기업이 그렇듯 태웅도 고비가 있었다. 도시바로 첫 수출한 제품이 불량이라는 통보를 받았던 것. 크레인으로 물건을 옮기는 과정에서 흠집이 났다는 얘기였다. 단조제품이 특성상 완제품이 아니라 한번 더 가공해 사용하는 중간제품이어서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이후 도시바에 납품하는 물건은 비닐로 포장하고 수차례 검사할 정도로 꼼꼼하게 했다. 마무리 작업과 품질의 중요성을 체득했던 상징적인 사례였다.
또다른 위기는 1990년대 초반에 찾아왔다. 석유화학 플랜트에 들어가는 중대형 단조품을 만들어내던 태웅은 일본 단조공장에서 비싼 가격에 제품을 수입했던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등에 40% 이상 싼 가격으로 단조 제품을 공급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3년 동안 지속된 일본 단조회사들의 덤핑공세였다. 태웅 역시 마진 압박을 감수하면서 가격인하로 맞섰다.
허사장은 노후화된 기계를 갖고 있던 일본의 오미단조, 타이라단조 등에 비해 설비규모면에서 뒤지지만 최신형 설비를 갖고 있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고 결과는 3년만에 태웅의 완승으로 끝났다. 이 시기의 생산성 향상, 원가절감 노력을 통해 태웅은 더 강해졌다.
끊임없는 새로운 시장을 찾았다
다른 조선기자재 업체들과 달리 태웅이 한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수요처)을 계속 찾았다는 것도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대표적인 것이 풍력발전용 단조 제품 시장에 뛰어든 것.
태웅은 2001년 GE에 원자력 발전용 부품을 공급하게 된 것을 계기로 풍력발전 관련 사업에 착수했다. 2003년부터 GE 산하 GE윈드사에 풍력발전용 타워 프렌지와 메인 샤프트를 납품하면서 본격적인 제품개발에 나선 것이었다.
단조품 제조업체로서 갖췄던 기존의 설비를 이용해 풍력발전용 부품들도 생산할 수 있어서 풍력발전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지난 7월 3일 산업자원부가 주관하는 '2006년도 상반기 세계일류상품'에 풍력발전용 회전축(메인샤프트)이 선정되는 개가를 올렸다.
이 같은 수요처 다변화로 인해 태웅은 300여개의 거래처를 갖고 있다. 이는 한 두개의 대형 거래업체와 관계가 끊어져도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태웅은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지난 2004년 11월부터 3년 계획으로 포항공대 이종수 교수팀과 함께 티타늄 합금링 등 신소재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이를 통해 우주항공 부품소재사업체로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스승의 마음으로 직원을 대한다
허용도 사장은 진주교대(5기)를 나와 5년간 교사생활을 했다. 교사생활을 하면서 부산 동아대 경제학과에 편입해 졸업한 뒤 먼 친척이 하던 대동단조에서 기계업을 처음 접했고 태웅을 설립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을 잊지 못한다. 허용도 사장의 핸드폰 컬러링도 '섬마을 선생님'이다. 직원들을 대할 때도 제자들을 대하는 심정으로 대하는 것이다. 태웅의 기술력의 비결도 여기에 있다.
사실 단조분야는 수백, 수천억원의 기술개발비용을 퍼부어야 하는 첨단기술의 경연장이 아니다. 기술인력들의 숙련된 경험과 노하우가 오히려 관건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태웅은 현재 초창기 기술인력 7명중 5명이 기술이사 등으로 여전히 허사장과 함께 하고 있다. 부산은행에서 30년간을 일한 뒤 5년 전부터 관리 분야를 맡고 있는 최영조 상무 역시 1981년 평행원 시절부터 허사장과 인연을 맺어 왔다.
태웅은 올해 직원 200명에 매출 25000억원, 영업익 32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인재가 몰린다는 것. 올해 4명을 공채하는데 600명이 몰려 150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처음으로 서울대 출신이 입사해 경영진을 감격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