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돈 버는 해외진출] <4> (上)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증권사들이 오랜 준비 끝에 수익을 거두기 시작했다. 이들 증권사는 경제도시 호치민과 수도 하노이에 본점을 두고 영업 지점을 늘려가고 있다. 호치민에는 미래에셋증권(MSVN)·한국투자증권(KIS)·신한투자증권(SSV)이, 하노이에는 KB증권(KBSV)·NH투자증권(NHSV)·한화투자증권(파인트리)이 각각 터를 잡았다. 오랜 기간 준비한 결과가 수익으로 나타나면서 시장점유율 확대에도 드라이브가 걸렸다.
베트남 시장은 그동안 경직돼 있었다. 주식시장은 현지인 중심의 개인 투자가 성행하고 일부 대형 종목이 전체 지수를 이끄는 걸음마 단계로 분류돼왔다. 베트남 호치민증권거래소(HoSE)의 일일 가격변동 한도(상·하한가)는 각각 7%다. 국내에서 당연시되는 일중(당일)매매는 거래시스템 미비로 사실상 이용할 수 없다. 공매도도 할 수 없다.
외국인 투자자는 투자를 위해 VND 계좌를 만들어야 하고 종목 보유한도(지분한도·FOL)도 적용받는다. 하지만 2024년 또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제도 개선에 속도가 붙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베트남 증시도 해외 자금을 빨아들일 채비를 하고 있다.
올해 베트남 증시는 변곡점에 서 있다. 올해부터 글로벌 브로커를 통한 외국 기관투자자의 주문이 허용되면서 현지 투자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 증시는 지난 9월21일 FTSE 지수에서 프런티어마켓에서 세컨더리 이머징마켓으로 격상됐다. 시장 가치가 올라가면서 장기적으로 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연기금·기관투자자 등이 투자를 검토하기에 우호적인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경제도시 호치민 3사3색…미래 '현지화' 한투 '영업파워' 신한 '그룹시너지'
미래에셋증권은 2007년 12월 베트남에서 외국계 종합증권사로 간판을 걸었다. 내년이면 베트남 진출 20주년을 맞는다. 미래에셋증권의 전략은 '현지화'다. 미래에셋증권 베트남법인은 오프라인 네트워크도 촘촘하다. 하노이와 호치민 양대 거점은 물론 다낭과 껀터 등 2선 도시까지 모두 11개 영업망을 갖췄다.
브로커리지 수수료와 신용공여 이자수익이 주요 수익원인 현지 시장 구조에 걸맞은 전략이다. 미래에셋증권 베트남법인은 수익 대부분을 홍콩법인에 배당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강문경 법인장이 인도법인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현지인인 응우옌 호앙 옌이 법인장에 올랐다. 베트남 증권가에선 영업망이 안착한 사례로 평가한다.
한국투자증권 베트남은 2010년 11월 설립돼 국내에서 쌓은 '영업 파워'를 현지로 옮겨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호치민 본사와 2개 지점, 4개 영업소를 운영 중이다. 인력은 모두 319명에 이른다. 한국투자증권 베트남의 사업 부문은 브로커리지와 IB(기업금융), 자산운용 등 증권업 전반에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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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리지에서는 주식·채권 중개는 물론 신용공여 서비스로 경쟁하고 있다. IB에서는 DCM(부채자본시장) 중심의 자금조달 지원, 구조화금융, 투자자문 업무 등을 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쌓은 비즈니스 노하우를 바탕으로 커버드워런트(CW)와 ETF 운용을 통한 파생상품 포트폴리오를 투자자에게 제안하고 있다. 앞으로 종합 AM(자산관리) 서비스로 비즈니스 모델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신한투자증권 베트남은 호치민에 사옥(더메트)을 두고 있다. 이 빌딩에는 신한은행, 신한파이낸스, 신한라이프, 신한DS 등 계열사가 총출동해 있다. 이런 '그룹 시너지'가 신한투자증권 베트남의 입지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10년 전 자본금 50억원의 소형 증권사로 출발한 신한투자증권 베트남은 꾸준한 신사업 발굴과 증자에 힘입어 신한금융그룹의 동남아 핵심 IB 거점으로 성장했다.
신한투자증권 베트남은 2024년부터 현지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평생 수수료 무료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 정책을 시행한 2024년 한 해 동안 예탁자산과 신용융자 잔고는 각각 119%, 3.7배 뛰었다. 수수료 무료로 브로커리지 수수료 수입은 줄었지만 새로 유입된 고객의 신용융자 마진에 집중하면서 전체 수익과 고객 기반이 함께 커지고 있다.
◇수도 하노이 각축전…KB 'ESG' NH '파트너십' 한화 '디지털'
KB증권은 2017년 베트남 증권사인 매리타임증권을 인수해 이듬해 자회사 KB증권 베트남을 공식 출범시켰다. 매리타임증권은 베트남에서 자산 기준 27위, 자기자본 기준 24위의 중소형 증권사였지만 지금은 KB증권의 해외 거점으로 탈바꿈했다. 전략은 'ESG'를 앞세운 이미지 마케팅이다.
KB증권 베트남은 지난 7월 베트남 금융·증권 부문 10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녹색기업(ESG10)으로 선정됐다. ESG10은 베트남 시장조사기관 베트리서치와 재무부 산하 경제매체 재무·투자신문이 공동 발표하는 ESG 평가다. 현지에서 ESG 실천 수준과 장기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앞서 KB증권 베트남은 CSI 2024(2024년 베트남 지속가능기업), APEA(2024년 아시아태평양 기업상)에 선정됐고 2025년 ESG 실천 선도 증권사 7곳에도 이름을 올렸다.
NH투자증권 베트남은 '파트너 네트워크'를 활용해 투자자에게 장기 투자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VCBF, VCAM, 미래에셋, KIM 등 현지에서 입지를 굳힌 자산운용사의 펀드를 공식 판매 중이다. 지난 8월에는 파생상품을 출시해 상품 라인업을 늘렸다. NH투자증권 베트남은 또 법규 준수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투자자 권익을 보호해 신뢰받는 증권사로 자리매김한다는 방침이다.
한화투자증권 베트남은 출발은 늦었지만 '디지털' 증권사로 확실한 방향을 잡았다. 현재 신한투자증권 베트남에 이어 주식거래 수수료 무료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자체 구축한 증권 코어 시스템과 알파트레이딩 등 온라인 증권사에 필요한 플랫폼을 갖췄다. 고객의 거래비용을 낮추면서도 편리한 투자 환경을 제공해 미래 성장 기반을 다진다는 복안이다.

베트남에서 증권사의 자본금은 곧 사업 한도다. 신용융자와 자기매매 한도 등이 자기자본에 연동되기 때문이다. 현지 규정상 신용공여 한도는 자기자본의 2배, 커버드워런트(CW) 발행 한도는 유동자본의 10%까지다. 신용공여는 현지에 진출한 국내 증권사들이 공격적으로 영업하는 분야다.
베트남 데이터 리서치 업체 FIIN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국내 증권사 베트남법인의 자기자본은 미래에셋증권 5270억원, 한국투자증권 3916억원, KB증권 2449억원, NH투자증권 1434억원, 신한투자증권 1359억원, 한화투자증권 859억원 순이다.
국내 증권사의 자본금은 2024년부터 꾸준히 늘었지만 현지 업체와의 '곳간 경쟁'에서는 뒤로 밀렸다. 베트남 대형 증권사인 TCBS는 원화 기준 1조5500억원의 자기자본을 보유하고 있다. 또 다른 대형 증권사 SSI는 올해 2월 증자로 자기자본을 1조3900억원까지 늘렸다. 온라인 브로커를 보유한 VPS도 올해 3월 추가 자본 조달로 자기자본을 1조3600억원으로 키웠다. 디지털 플랫폼을 앞세워 대형사 반열에 오른 VNDIRECT의 자기자본도 8500억원에 이른다.
한때 자기자본 규모로 베트남 3위에 올랐던 미래에셋증권 베트남의 자기자본(5270억원)은 대형사 수준에 못 미친다. 1위 업체인 TCBS의 3분의 1 수준이다. 베트남 현지 증권사들이 은행 등 그룹 계열사를 통해 자본을 늘리면서 국내 증권사들이 규모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베트남 금융투자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지 증권사의 자본 확충은 신용융자(마진 대출)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신용융자 금리는 8~10%에 이른다. 이는 개인투자자의 레버리지를 키우고 거래대금 점유율(MS) 확대로까지 이어진다. 베트남 증권 사업의 핵심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개인고객을 얼마나 끌어올 수 있느냐다. 현지 정부가 신용대출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업체의 체력을 중시한 결과로 분석된다.
베트남 증시에서 현지 개인고객의 입지는 실제로 탄탄하다. 크로스보더 리서치에 따르면 최근 7년간 외국인 지분율이 22%에서 12%로 반토막 가까이 떨어지는 동안 현지 개인 계좌 수는 꾸준히 늘었다. 베트남 증시의 개인 계좌 수는 2019년 240만개에서 2026년 6월 1370만개로 증가했다. 베트남 인구는 1억159만명으로, 과거에는 전체 인구의 약 2%만 계좌를 갖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약 13%가 계좌를 개설했다. 100명 중 13명꼴로 계좌를 보유한 셈이다.
국내 증권사들은 현지에서 자본 확충을 준비하면서도 다양한 사업 방식을 모색하며 내실을 다지고 있다. 호치민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한국투자증권 베트남은 자기자본 규모에서 미래에셋증권 베트남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한국투자증권 베트남의 현지 주식시장 점유율은 올해 1분기 3.21%, 2분기 2.99%였다. 현지 업체를 포함한 상위 10위권 증권사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영업력을 바탕으로 자산 기준 베트남 10위권 은행인 SHB(시가총액 4조원)의 184억원 규모 사모 유상증자를 주선했다.
신한투자증권 베트남은 한국에서 발행하는 채권으로 활로를 모색했다. 최근에는 빈그룹의 첫 아리랑본드(국내 원화채권) 발행 단독 주선을 맡았다. 현지에서 IB 트랙레코드를 쌓아 시장에 안착하고 그룹과 시너지를 낸 결과로 평가받는다.
베트남 증권업계 관계자는 "해외법인이 본사 딜을 거드는 게 아니라 현지법인이 딜을 만들고 본사가 지원하는 구조가 이곳 사업의 핵심"이라며 "오랜 기간 현지에서 쌓은 관계를 바탕으로 도태되지 않는 탄탄한 경쟁력을 위해선 자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