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을 넘어 세계를 흔들고 있는 인플레이션은 왜 고금리 정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잡히지 않는 것일까.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그 단서가 포착된다.
15일(현지시간) 미국 고용통계국(Bureau of Labor Statistics)에 따르면 5월 CPI 상승률에 가장 변수가 된 항목은 주택(Shelter) 지수였다. 그 다음은 중고차 및 트럭에 대한 지수가 차지했다.
헤드라인 CPI는 지난해에 비해 4.0%, 전월과 비교해서는 0.1% 상승하면서 2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는 전월에 비해서는 0.4% 올랐고, 전년비로는 5.3%나 상승했다.
물가를 다스리는 연방준비제도(Fed)에 있어 연간 4.0%와 5.3%의 물가상승률은 천지차이 스코어다. 기본 상승률을 2.0%라고 보면 4.0%는 3%대로 사정권을 좁힐 수 있는 제어가능한 영역이지만, 5%대 중반은 기준금리를 역대급인 5.25% 한껏 높였는데도 불구하고 통제가 되지 않는 인플레 영역이란 의미다.

이 1% 남짓의 그 차이는 역시 사람이 사는데 필수적인 내구재인 주택과 차량의 품귀와 가격앙등에서 벌어졌다. 평균적인 미국 가정의 가장 큰 지출영역인 주거분야는 사실 CPI 가중치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근원 CPI와 헤드라인 CPI의 차이를 기준으로 인플레이션이 잡히거나, 잡히지 않거나 하는 차이는 주택과 차량 등 주거 및 이동 내구재 가격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에서 주택 부문의 문제가 가시지 않는 이유는 일단 코로나19가 미국인들의 주거형태를 통째로 흔들어놨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이 좁은 장소에서 밀접접촉이 많은 대도시 주거민들에게 치명타를 입히면서 미국에서는 콘도미니엄과 아파트(임대) 주거형태에 대한 탈출러시가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뉴욕의 방 3개짜리 콘도에 수백만달러를 지불하고 살던 중산층이 그 가격에 롱아일랜드나 웨체스터 혹은 주를 옮겨 뉴저지 북동부로 거처를 옮기는 것이다. 펜데믹 기간동안 뉴욕 미드타운에는 한때 코로나19 절정기에 거리 곳곳에 시체더미가 나뒹굴었다. 고밀화된 맨해튼에서의 전염적 취약성을 경험한 이들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교외(Suburban)으로 주거지를 이전하고 있다.

도시를 탈출하려는 수요는 많지만 교외에 깨끗한 단독주택을 건설하려는 개발업자는 줄었다. 펜데믹 기간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벌어지면서 자재가격을 폭등했고, 전염병으로 인해 노동인구가 사라지면서 인건비도 대폭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 등에 따르면 연간소득이 10만 달러 이상인 이른바 억대 연봉자들이 마련할 수 있는 자금은 평균 34만1000달러 수준인데 시장에 출회된 집들 가운데 39%만 그 수준 이하의 가격이었다. 코로나 이전에 균형잡힌 시장이라면 10만 달러 연봉의 구매자가 매물 가운데 64%를 타깃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하지만 지금 시장에선 약 28만5000건의 매물이 부족한 셈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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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중개인들은 중요도시 외곽에서 학군이 좋은 교외지역 50만 달러 이하 매물들은 리스팅 이후 일주일 내에 팔리고 있다고 얘기한다. 집이 비교적 관리가 잘된 경우 한 매물에 쌓인 매수 제안만 30~50개에 달하는 실정이다. 현지에서도 '미친 시장, 더 미친 집값(Crazy Market)'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산층이 살 수 있는 34만 달러짜리 매물은 코로나 이전에 비해 공급량이 반토막이 났는데 이제는 그 두 배 이상인 68만 달러 이상의 매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만큼 시세는 뛰었고, 주택구매력을 잃은 이들은 렌트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프롭테크 질로우(Zillow)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임대료는 전년보다 15.7% 상승한 1949달러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해 5월 임대료는 지난해보다 4.8% 다시 상승해 월 평균 2048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동부는 물론 중부나 남부 지방까지 아우른 집들의 임대료가 한달에 2000달러를 훌쩍 넘은 셈이다. 대도시 주변에서 단독주택 임대료는 이제 4000~5000달러를 가뿐히 뛰어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거비는 연준의 파격적인 기준금리 상승 이후 그 상승속도는 확연히 줄었다. 그러나 CPI 지수는 주거비 상승세 저하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주거비에 있어서는 인플레이션 데이터를 완전히 반영하는데 6개월~1년의 시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는 CPI를 집계하는 고용통계국이 6개월 마다 샘플가구로부터 임대료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이 패널데이터를 다시 6개 하위그룹으로 나누고 수집 시차를 두기 때문이다. 예컨대 패널 1의 임대료는 1월과 7월에 보고되고, 패널2는 2월과 8월에 수집되는 식이다. 때문에 모든 하위그룹에서 데이터가 수집되려면 족히 1년이 걸린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고용통계국은 추가적은 데이터 측정 문제도 내포하고 있다. 이들은 '소유자 등가 임대료(owners' equivalent rent)'라는 측정값(measure)을 수집하는데 이 항목이 현상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현재 주택소유자가 만약 비슷한 집을 임대할 경우 내놓을 월세 가격을 설문조사로 받아내기에 시세와는 다른 주관적 의견이 포함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낸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교수도 이에 동의했다. 퍼먼 교수는 "주거비는 여전히 인플레이션에서 큰 역할을 하지만 하반기에는 둔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