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편되는 아시아 산업지도…"글로벌 질서, '국가' 아닌 '생태계'로 이동"

재편되는 아시아 산업지도…"글로벌 질서, '국가' 아닌 '생태계'로 이동"

김세훈 BCC Global 한국·동남아 총괄
2026.04.04 06:00

[키플랫폼 전문가 칼럼] 김세훈 BCC Global 한국·동남아 총괄

[편집자주] 머니투데이 지식·학습 콘텐츠 브랜드 키플랫폼(K.E.Y. PLATFORM)이 소개하는 전문가 칼럼 코너

지난 10여 년간 글로벌 경제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 위에서 작동해 왔다. 중국은 '생산'을 담당하고, 미국은 '소비'를 이끌며, 나머지 세계는 이 축에 적응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이 질서는 점진적 변화가 아니라 지정학적 압력 속에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최근 2년간 미·중 무역 긴장은 완화와 재격화를 반복했지만, 과거 기준으로는 이례적인 수준에서 고착화되고 있다. 2024년 미국 대선 국면에서는 중국산 제품에 약 60% 수준의 관세 부과 방안이 거론됐고, 2025년 4월에는 일부 품목의 실효 관세가 최대 145%까지 급등했다. 이후 제네바 합의를 통해 약 30%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2026년 상반기 기준 여전히 26~30% 수준의 높은 관세가 유지되고 있다. 여기에 10~15% 수준의 보편 관세 도입 가능성도 남아 있다.

중국 역시 맞대응에 나섰다.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최대 약 125%까지 끌어올렸다가 현재는 약 10% 수준으로 조정한 상태다. 이같은 흐름은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라 글로벌 무역 구조 전반의 '리셋'을 의미한다.

'탈동조화'가 아닌 '재구성'…한국·일본, 공급망 재편의 '핵심 허브'

일각에서는 이를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의 신호로 해석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한 분리가 아니라 '구조적 재편'에 가깝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 제조업의 중심축으로 2025년 약 1.19~1.20조 달러(약 1785조~1800조원) 규모의 무역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미국은 약 9015억 달러(약 1352조원)의 무역적자를 유지하며 글로벌 소비의 핵심 시장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비대칭 구조는 양국이 완전히 분리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대신 글로벌 무역은 제3국을 통한 우회 경로, 중간 거점, 지역 단위 재편을 통해 지속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은 단순한 대응을 넘어 구조적 수혜 가능성이 높은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양국은 안정적인 외교 환경, 고도화된 제조 기반, 중국과의 지리적 인접성, 그리고 글로벌 기업과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공급망 재편의 핵심 중간 허브로 자리잡고 있다.

2025년 기준 중국의 대미 수출은 약 4201억 달러(약 630조원)에 달하는 반면 한국은 약 1229억 달러(약 184조원), 일본은 약 1317억 달러(약 198조원) 수준이다. 만약 한국이 현재 중국 중심의 미·중 교역 물량 중 10~30%를 흡수할 경우, 대미 수출은 약 45%에서 최대 230%까지 확대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증가가 아니라 한국의 글로벌 무역 내 위상이 구조적으로 재평가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시대, 숙명의 파트너 ‘한일’/그래픽=윤선정
트럼프시대, 숙명의 파트너 ‘한일’/그래픽=윤선정
아시아, '시장'에서 '생태계'로

아시아를 단순한 성장 시장으로 보는 시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현재 아시아는 생산, 혁신, 소비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다. 이 변화를 견인하는 세 가지 축은 다음과 같다.

•지정학적 경쟁: 미·중 갈등이 무역 질서와 기술 접근 구조를 재편

•공급망 다변화: '차이나+1' 전략을 기반으로 ASEAN(아세안)과 인도로 제조 확장

•기술 융합: 전기차, AI(인공지능), 친환경 에너지 중심의 신규 수요 창출

결국 아시아에서의 경쟁력은 개별 국가 전략이 아니라 연결된 시스템 전체를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생태계의 중심에는 여전히 중국이 자리하고 있다. 다만 그 성격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제조국일 뿐 아니라 혁신 중심 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2025년 기준 배터리, 전기차, 첨단 제조 등 핵심 산업에서 수천억 달러 규모의 매출을 창출하며 주요 산업 규모는 총 4000억 달러(약 600조원) 이상으로 평가된다. 제조업 부가가치 기준에서도 중국은 전 세계의 약 30~31%를 차지하며 미국(16~17%), 일본(6~7%), 독일(5~6%)을 크게 상회한다.

동시에 중국 기업들은 자동차 및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해외 투자와 생산 거점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기업들에게 복합적인 전략 과제를 제시한다. 중국은 △핵심 공급망 허브이자 △빠르게 부상하는 경쟁자이며 △동시에 필수적인 소비 시장이다. 이에 따라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 내 고부가가치 기능은 유지하되 생산 거점은 베트남·인도·태국 등으로 분산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ASEAN과 인도: 성장의 두 축…한국·일본의 전략적 포지션

'차이나+1' 전략은 이미 실행 단계에 들어섰다. 동남아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이 주요 생산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비용 경쟁력과 산업 역량을 동시에 확보하며 글로벌 공급망 확장의 핵심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인도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시장이다. 중산층 확대, 풍부한 노동력, 생산연계 인센티브(PLI) 정책을 기반으로 2030년 세계 3위 경제로 부상할 전망이다. 다만 인프라와 규제 환경 측면의 제약은 여전히 존재해 단기적 진출보다는 중장기 투자 전략이 요구된다.

이러한 산업 생태계 내에서 한국과 일본은 상류 공급망을 담당하는 핵심 국가로 기능한다. 일본은 포토레지스트, 첨단 세라믹 등 반도체 핵심 소재에서 50~90% 수준의 글로벌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반도체·배터리·수소 기술 등 차세대 산업에서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중국과의 공급망 연계와 미국 중심 기술 동맹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며 구조적 레버리지를 확보하고 있다.

진짜 경쟁은 소재와 인프라에 있다. 무역 갈등의 이면에서는 산업 수요 구조 자체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중국의 전기차 판매는 2025년 약 1200만~1300만 대로 전체 시장의 40~42%를 차지했으며 2030년에는 2000만~2200만 대로 확대될 전망이다. 동시에 인공지능 확산으로 글로벌 데이터센터 시장은 2025~2030년 사이 약 4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 전반에 △첨단 배터리 소재 △고내열·고성능 폴리머 △데이터센터 액체 냉각 기술 △정밀 커넥터 및 절연 소재 등의 수요를 촉발하고 있다. 전자 산업에서는 소형화·고속화·고온화가 동시에 진행되며 생산의 현지화와 소재 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는 산업 경쟁이 단순한 물량 중심에서 기술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가'에서 '시스템'으로

앞으로 글로벌 산업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기술은 한국과 일본에서 출발하고, 대량 생산은 중국에서 이루어지며, 소비는 인도에서 확대된다. 이 세 축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을 구성한다.

아시아를 개별 국가 단위로 접근하는 기업은 구조적 한계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통합된 운영 모델을 구축한 기업은 다음 글로벌 사이클을 주도할 것이다.

실행이 경쟁력을 결정한다. 이제 전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행 역량이 곧 경쟁력이다.

•민첩성: 지정학 변화에 따라 공급망을 유연하게 재편

•고객 정렬: 생산·소비 거점 이동에 맞춰 고객 기반 동반 이동

•인재: 다국적 환경을 이해하는 글로벌 리더십 확보

글로벌 경제는 탈세계화가 아니라 더 복잡하고, 더 지역화되며, 동시에 더 긴밀하게 연결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아시아가 있다. 그리고 이 변화를 '리스크'가 아닌 '운영해야 할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기업만이 향후 10년의 성장을 주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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