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 차림표를 만들자"

"좋은 말 차림표를 만들자"

홍찬선 기자
입력 2006.09.07 13:20 드롭다운 아이콘 수정 2006.09.0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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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강연<2>'말이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편집자주]  이해인 수녀가 쉽지 않은 외출을 했습니다. 지난 4일 저녁, 서강대 경영대학원 총동문회 초청 추계세미나에서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선한 마음, 고운 말씨'라는 주제로 강연한 것입니다. 원래 이 강연은 서강대 MBA 동문들에게만 참여가 제한된 모임이기는 했지만, 이해인 수녀의 강연 내용이 너무 좋아 3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언론을 통해 강연 내용 공개를 양해해 주신 이 수녀님께 감사드립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해인 수녀님처럼 선한 마음과 고운 말씨로 아름다운 삶을 가꿀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부산역에 있는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려고 하는데 점원이 ‘할머니 어서 오세요’라고 하더군요. 누가 뒤에 있는가하고 생각하며 돌아봤는데 아무도 없더군요. 아직도 마음은 젊은데 시간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이해인 수녀(61)는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선한 마음, 고운 말씨”의 강연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친구들끼리 만나면 3-4년 뒤에는 경로우대증이 나올 것이라고 얘기할 정도가 됐으니 늙음과 죽음을 묵상의 화두로 삼아 살아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설명이다. 아직 95세인 어머니께서 정정하시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불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목소리는 여전히 젊지만 세월의 흐름만은 어쩔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애브러햄 링컨은 “나이 40이 넘은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사람은 20대에는 하늘이 준 얼굴을 하고, 40대에는 자신이 만든 얼굴을 하며, 50대 이후에는 갖고 싶은 얼굴을 갖는다”는 말도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의 살아온 길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인 수녀를 보면 그 말이 딱 맞는다는 것을 느낀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젊은 얼굴에는 맑은 미소를 머금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다. 코스모스(10대)와 민들레(20대), 진달래(30대)와 치자(40대) 및 장미(50대)를 거쳐 천리향과 만리향을 좋아하며 사랑을 널리 퍼뜨리며 살아온 삶이 그대로 보는 이의 마음으로 전달되기 때문인 듯 하다.

하지만 그의 얼굴 못지않게, 아니 한층 더 우리를 푸근하게 하는 것은 그의 목소리다. 아니 그가 조용조용히 쏟아내는 예쁜 말들이다. 얼굴을 보지 않고 목소리만 들으면 그는 영락없는 20대 소녀다. 귀에 거슬리는 탁함이나 갈라짐이 하나도 없이 여울목 소리처럼 청초하고 낭랑한 목소리는 우리를 편안하게 한다.

비결은 무엇일까.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선한 마음을 갖고 고운 말씨를 쓰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는 게 그의 자가진단이다. 19세에 봉헌한 뒤 40여 년 동안 자기경영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일 면도하고 세수하며, 때가 되면 이발하는 것처럼 선한 마음과 고운 말도 매일 갈고 닦지 않으면 좋지 않은 막말을 하게 되고 삶도 헝클어지는 만큼 매일매일 노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좋은 말 차림표'를 만들어 활용하자

이 수녀가 이를 위해 하는 일은 적고 반성하는 일이다. 주머니에 항상 쪽지를 갖고 다니면서 좋은 말을 듣거나 글을 보면 깨알처럼 적는다. 매일 밤, 하루 일과를 끝내면서 공적으로 쓰는 업무일지 외에 하루의 삶을 되돌아보는 ‘마음의 일기’를 기록하는데, 쪽지에 적은 말과 글을 옮겨 적으면서 나쁜 말을 했을 때는 반성하고, 좋은 말을 했을 때는 더욱 잘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런 과정은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어 실수를 줄이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이해인 수녀가 예로 드는 ‘좋은 말 차림표’를 보자.

“밭에 들어가면 의 상함”(곡식이 심겨진 밭에 들어가지 말라고 주인이 적어 놓은말. 출입엄금보다 훨씬 정감이 가고 생각하게 한다)

“아니온 듯 다녀가시옵소서!”(어느 절에서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며 내건 푯말)

구제불능→더 이상 어쩔 수 없다.

웃기는 짬뽕→못 쓸 사람이구먼.

땡 잡았네요→좋으시겠네요, 복도 많으시네요.

눈이 삐었네→내가 잘못 본 것 같아요.

맞아죽게 생겼다→한소리 듣게 생겼다.

뿅 갔다→반했다

똥인지 된장인지→콩인지 팥인지

환장하겠네, 미치고 팔짝 뛰겠다. 꼭지 돌겠네, 졸도 사망하겠네→내 정신이 아닌 것 같다. 인 내의 한계를 느낀다. 감정통제가 안된다. 등등.

이 수녀는 욕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어느 신부님의 사례도 소개했다. 그 신부님은 여러 가지 욕의 유형을 4가지로 나누어 번호를 붙인 쪽지를 운전석에서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았다고 한다.

1번=‘개’자가 들어간 욕.

2번=‘ㅆ'이 들어간 욕

3번=17 다음 숫자가 들어간 욕

4번=기타 좋지 않은 말

이런 식이다. 이렇게 붙여놓고선 갑자기 앞에서 끼어들어 깜짝 놀랐을 때 “야, 이 ××놈아. 눈 똑빠로 뜨고 운전해~”라고 하는 것보다 “1번 같은 사람이네, 좀 조심하면 좋으련만...”이라는 식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욕에도 미학이 있다’며 욕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일부 신부님도 있지만, 욕함으로써 스스로도 기분나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처방인 셈이다.

이 수녀는 화내는 일이 거의 없는 영화배우 안성기 씨가 매우 화났을 때 하는 말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라고 소개하면서 “부정적 극단적인 막말을 쓰는 사람과 고운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는 말이 곱지 않아도 가는 말은 고와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하고 있다. 무심히 건넨 한마디 말이 상대방에 돌이키기 어려운 상처를 안겨준 사례를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오는 말이 곱지 않아도 가는 말은 곱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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