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은퇴, 그 후의 삶
앞만 보며 달렸다. 우리 시대 중·장년층 대부분은 당연한 듯 회사를 위해 청춘을 바쳐왔다. 그런 그들에게 '은퇴'는 끝이나 다름 없었다. 그 막다른 길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김영희, 엄홍렬 씨를 만났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박물관 유물을 해설.안내해주는 도슨트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그들에게 은퇴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다.
막막했다.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던 일터, 그곳에서 내쳐진 것만 같았다. 29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해 오던 김영희 씨(59)는 지난 2000년 갑작스레 교직을 떠나야 했다. 그 후 꼬박 3년을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처럼 그에게 '은퇴'란 허무하고 무기력한 것이었다. 그런 그의 얼굴에 요즘은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국립중앙박물관 도슨트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찾아온 변화였다.

"그때는 학교를 떠나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만 같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덕에 새로운 인생을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다시 '내 일이 생겼다'는 기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어요. 요즘은 제 표정이 밝아진 걸 스스로 느낄 정도니까요. "
한국 무용을 전공하고 초등학교에서 무용을 지도하던 김 씨는 재직 중 학생들에게 가르친 무용 작품으로 여러 차례 상을 받을 만큼 인정받는 선생님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에만 매달려왔기 때문일까. 그는 "재직 당시만 해도 은퇴라는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며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놓는다.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면 그만인 줄 알았던 그에게 어느날 갑자기 찾아 온 명예퇴직. 그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그 때가 IMF직후라 온 사회가 구조조정 바람에 휘말려 있었어요. 교직이라고 예외는 아니었죠. 자연스럽게 나이 많은 사람들이 명퇴 우선 순위로 거론됐고, 학교에서 꽤 나이 많은 축에 속했던 저 역시 미래를 준비할 시간도 없이 명퇴를 결정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참 힘들더라고요. 아 내가 참 이렇게 나이가 많이 들었구나 싶고, 더 이상 내가 남을 위해 할 일이 없을 것만 같고. 그러다 보니 그게 병이 되더라고요."
우울증이었다. 은퇴 후에도 기간제 교사로 아이들을 계속 가르칠 기회를 얻었지만, 우울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학교에 적을 두고 있을 때와 비교해 왠지 이방인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때 김 씨에게 찾아온 새로운 기회가 바로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 도슨트였다. 2005년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대규모의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는 공고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남편이 예전부터 도슨트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서 저도 관심은 많았어요. 그러던 차에 박물관이 이전을 하면서 어린이박물관 자원봉사자를 신규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은거죠. '드디어 기다리던 기회가 왔구나!' 싶었어요."
독자들의 PICK!
김 씨는 "돈벌이도 안 되는 봉사활동 하겠다고 돈벌이인 기간제 교사까지 마다하는 자신을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며 "하지만 몇 번을 생각해봐도 봉사활동을 선택한 건 참 잘한 일" 이라고 웃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도슨트 활동을 통해 그는 예전엔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언젠가 한 번은 6학년쯤 된 장애학생의 손을 잡고 박물관 안내를 했던 적이 있어요. 그 때 29년 교육생활 중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것 같아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배울 수 있었던 거죠."
물론 김 씨에게도 도슨트 활동이 힘겨워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어린이 박물관은 아이들의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어지간한 체력으로는 버티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하루 종일 서서 아이들을 맞이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다독이느라 매일매일 몸이 녹초가 됐다. 몇 번이고 포기하려 마음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김 씨를 붙잡아준 것은 다름아닌 남편이었다.
"사실 남편과는 박물관 내에서 근무하는 장소도 시간도 다 달라요. 박물관에서는 마주칠 기회조차 없는데도 저랑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게 내심 좋았나 봐요. 제가 힘에 부쳐 몇 번이고 봉사활동을 망설일 때마다 든든한 후원자가 돼주는 걸 보면 많이 감사해요. 요즘은 남편이 제 역사 선생님이에요. 덕분에 어린이들에게 더 쉽게 역사를 설명할 수 있어서 좋아요."
남편 얘기가 나오자 소녀 같은 웃음이 김 씨의 얼굴에 슬며시 번져간다. 실제로 부부가 함께 봉사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부부관계도 훨씬 좋아졌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은퇴 후엔 시간이 많으니까 부부가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녀요. 아무래도 둘 다 박물관 일을 하다보니 여행도 역사 기행에 가깝죠. 유적지를 탐방하고 남편이 들려주는 역사 속 얘기를 듣다보면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 싶을 때가 많죠."
국립중앙박물관의 도슨트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건 엄홍렬 씨(62)도 마찬가지다. 그는 보험감독원에서 탄탄대로를 걷던 고위공무원이었다. 그런 그에게 달갑지 않은 변화가 찾아 온 것 역시 IMF무렵. 보험감독원이 금융감독원으로 통합되면서 1998년 '은퇴'를 맞게 된 것이다.
"처음 몇 달은 홀가분했어요. 그 동안 정말 일 밖에 모르고 내달렸거든요. 그 일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니까 편하고 좋았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점점 무기력해지는 저 자신을 발견했어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갈 곳이 없는 기분, 그때부터 젊은 시절을 모두 바쳤던 직장에 더 이상 출근할 수 없다는 게 실감이 나더라고요."
그 무기력함을 이기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보험감독원에 있던 때의 경험을 살려 2년 동안 특수보험회사를 운영하기도 하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애니메이션 회사에 관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은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았고,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눈 뜨게 해준 건 2004년 우연찮게 시작하게 된 잠실사회복지관 도시락 배달 봉사활동 이었다. 그가 맡은 일은 몸이 불편한 장애우들의 집으로 도시락을 배달하는 것. 그는 그 일을 "그저 아침에 조금 일찍 눈떠 자동차 타고 도시락만 갖다 주면 되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저에게는 세상을 다시 보게 해 준 소중한 기회였어요. 제가 조금만 부지런 떨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잖아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제 인생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 동안 내가 너무 나와 가족들만 바라보며 살았구나. 이제부터라도 남들을 위해 살아보자고 결심했죠."
그것이 시작이었다. 엄 씨는 도시락배달뿐 아니라 자신의 봉사활동 범위를 넓히길 원했고그때 그의 눈에 그의 눈에 들어 온 것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 도슨트 활동이었다. 엄 씨 역시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이전을 앞두고 대규모로 모집한 도슨트 자원봉사 공고를 보고 일에 지원하게 됐다고 한다. 워낙 역사나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도슨트는 말그대로 안성맞춤이었던 셈이다.
"도슨트는 역사를 해설해주고 안내해주는 사람이잖아요. 봉사활동이라도 사람들을 제대로 안내해 주려면 전문지식이 필요한 건 당연하죠. 때문에 박물관에서 전문 교육을 받고 시험을 통과해야 봉사활동의 자격이 주어져요. 남을 돕는 데도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거죠."

만만치 않은 노력을 들여 얻은 일이니만큼 보람도 크다. 현재 교육팀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박물관의 교육 활동을 돕거나 유물을 안내하는 일을 주로 맡는다. 특히 그가 안내해주는 유물의 역사를 재미있게 경청하는 관객들을 볼 때면 뿌듯함이 크다. 더 맛깔스러운 설명을 위해 유행하는 드라마나 영화도 빠뜨리지 않고 챙겨본다. 덕분에 그는 "박물관에서 알아주는 젊은 오빠"가 됐다며 호탕하게 웃어 보인다.
"박물관에서 한 달에 한번 필수적으로 재교육을 받도록 돼 있어요. 하지만 까다로운 관객들을 상대하려면 안내자인 저부터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지 않으면 안돼요. 책도 많이 읽고 따로 역사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그렇게 노력해서 내가 우리의 역사를 알리는 전달자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자부심이 더 크죠."
국립중앙박물관 도슨트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 그는 또 하나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서울시 문화 해설자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서울시를 관광하는 사람들에게 역사를 들려주는 일종의 관광 가이드다. 경복궁이든 청계천이든 한번 해설을 시작하면 두서너 시간은 훌쩍 넘어갈 정도. 그는 "오랜 시간 걸어다니다보면 육체적으로 힘 들 때도 많지만 일의 즐거움을 알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세 가지 활동을 모두 하다 보면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바빠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아직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많다는 데 감사할 뿐이죠. 물론 힘이 들 때도 있지만 덕분에 저는 따로 운동할 필요도 없답니다. 우리 나이에 건강관리로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거에요."
환하게 웃는 엄씨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엄씨는 앞으로도 기회만 된다면 더 많은 봉사활동에 욕심을 내보고 싶단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지금처럼만 여생을 보내고 싶은 것이 엄씨의 희망이다.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참 안타까웠던 것이 '너무 빨리 포기하는 사람들'이었어요. 도시락 배달만 해도 도시락을 기다리는 장애우들은 늘 집에만 있는 분들이니까 아침에 잠깐 들르는 봉사자라도 너무 반가워해요. 그런데 6개월을 버티는 사람이 드문 게 현실이에요. 저는 앞으로 10년, 아니 20년이라도 제가 시작한 봉사활동을 끝까지 하고 싶어요."

은퇴를 인생의 '끝'이라고 여겼던 그들. 하지만 그로 인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맞이하게 된 김영희, 엄홍렬 씨.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다"는 그들은 진정으로 삶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이정흔객원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