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삼성 내부 수혈...이수빈 체제 출범
특검 후폭풍 속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수습책으로 자신의 퇴진을 선택했다. 그리고 삼성의 구원투수로 낙점한 이는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었다.
삼성은 1938년 창립 이래 수차례의 우여곡절을 겪었고 총수들의 공백기가 있었다. 그때마다 빈자리를 한시적으로라도 메운 것은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전 법무부ㆍ내무부 장관), 신현확 전 국무총리(삼성물산 회장 역임), 김준성 전 부총리(삼성전자 회장 역임) 등 원로들이었다. 이들은 정ㆍ관계나 금융계 등에서 고위직을 거친뒤 삼성에 영입된 케이스였기 때문에 외부 수혈이라 할만 하다.
반면 이수빈 회장은 삼성그룹 공채(6기) 출신으로 40여년 간을 삼성에서 보낸 정통 삼성맨이다. 삼성그룹 얼굴 자리로 외부 명망가를 영입하기보다 그룹 내부에서 해결책을 찾은 것이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그룹 전반 업무를 관장하기보다는 전경련 등 대외 모임에서 그룹 대표자 자격으로 참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외부 압력에 의한 변화보다는 내부 동력을 활용한 수성을 선택한 것으로도 풀이한다.
◆'명망가' 홍진기ㆍ신현확ㆍ김준성…총수 외 삼성 얼굴들은
지난 1966년 한비사건 당시 이병철 창업주가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며 경영일선을 떠난 적이 있었다. 일명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삼성이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요소비료공장인 한국비료(이하 한비)를 건설했던 1966년에 발생했다. 한비 직원이 사카린 원료를 당국 허가 없이 시중에 팔다 적발된 사건이다. 사카린은 값이 비싼 설탕 대신 식료품의 단맛을 내는 데 쓰이던 원료였지만 발암물질 논란이 일면서 사용이 금지됐던 터라 삼성이 사카린을 밀수했다는 사실은 엄청난 사회적 충격을 불러왔다.
이병철 회장은 준공된 지 6개월 된 한비의 주식 51%와 운영권을 정부에 헌납하는 한편 명예회장으로 물러앉았다. 50대 중반의 이병철 회장은 불가피하게 한시적이지만 잠시 의욕적인 경영 행보를 접어야 했다. 이 즈음 등장한 이가 홍진기 회장이다.
명예회장으로서 경영 후선에 있을 때 이병철 회장은 중앙매스컴(중앙일보, 동양방송) 회장으로 잠시나마 실업인이 아닌 언론인으로서의 길도 걸었다. 그때 이 회장이 동업자로서 선택한 이가 홍진기 회장이었다. 이 회장과 홍 회장 사이를 연결해 준 것은 신혁확 전 국무총리로 알려져 있다.
홍 회장은 이승만 정권에서 내무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을 지내다 1965년 중앙일보를 창간한 이병철 회장에게 발탁돼 중앙일보 사장과 회장을 역임했다. 또 이병철-홍진기 회장은 사돈지간이기도 하다. 홍진기 회장의 큰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이다.
신현확-김준성 회장은 1987년 이병철 회장이 타계하던 즈음 이건희 회장으로 그룹 지배권이 넘어가던 시기에 후견인 역할을 했다. 신 회장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장관(부흥부, 보건사회부)과 부총리, 국무총리 등을 지낸 관료 출신으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삼성물산 회장을 지냈다. 신 회장은 삼성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생전에 외아들인 신철식 전 국무총리 정책차장에게 삼성전자 주식 1만주를 물려줘 신 전 차장이 재산 많은 공무원이 되도록 한 사연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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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ㆍ외환은행장, 산업은행, 한국은행 총재, 부총리 등을 지낸 김준성 회장은 1987년 삼성전자 회장으로 삼성에 몸담았던 적이 있다. 신 회장과 김 회장이 동시에 삼성에 적을 뒀던 1987년은 이건희 회장이 45세의 나이에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회장이 된 해였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11월19일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뒤 12일 만인 12월1일 회장으로 취임했다.
홍진기-신현확-김준성 회장 같은 인물들은 이건희 회장이 성공적으로 그룹 총수로 안착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맡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관리통' 이수빈 회장…친정체제 강화 포석도
그룹의 제3의 창업(이병철 창업, 이건희 취임이 각각 제1, 2의 창업으로 지칭)이라 불릴 만한 최근 사태에서 전면에 나서게 된 이수빈 회장은 앞서의 인물들과는 차이점을 보인다.
이수빈 회장은 1939년 경북 성주 출생으로 서울사대부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후 1965년 삼성그룹에 입사, 12년 만에 제일모직 대표이사로 초고속 승진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증권, 생명 등 금융계열사 CEO와 그룹 비서실장 등 삼성의 주요 계열사를 두루 거쳤다.

또 1991년에 삼성그룹 비서실장(현 전략기획실장)을 맡으면서 총수 일가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그룹 내부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의중을 헤아릴 줄 아는 몇 안되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 이수빈 회장은 이건희 회장과 고교(서울사대부고) 동문(이수빈 회장이 4년 선배)이기도 하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회장 취임 후 비서실장으로 이수빈 회장을 발탁했고 손발을 맞춰왔다.
이수빈 회장은 합리적인 리더십으로 정평이 나있다. 제일모직 경리과와 삼성전자 재무팀 등을 거친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 '재무통'이라면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 관리과장을 지낸 이 회장은 '관리통'으로 꼽힌다. 이 회장은 모나지 않은 리더십으로 X파일 사건 등 1990년대 부터 이어진 삼성그룹의 크고 작은 스캔들에서도 한발 빗겨나 있다.
이수빈 회장은 삼성그룹 총수보다는 외형상 대표를 맡는 상징적인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이 내놓은 쇄신안에서 이수빈 회장의 역할에 대해 "대외적으로 삼성을 대표할 일이 있을 경우"라는 조항을 붙여놓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실제로 4월28일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의 청와대 간담회에는 이수빈 회장이 삼성을 대표해 참석한다.
일각에선 이수빈 회장이 관리형 회장으로 퇴임한 이건희 회장의 친정 체제를 간접적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에서 "자신도 차명계좌 보유자로 1999년 이재용씨의 삼성투신 지분인수 당시 삼성생명의 임원이었던 이수빈 씨가 대외적으로 삼성을 대표하는 인사로 지목된 것에는 친정체제 유지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무튼 이병철 회장의 창업과 타계 이후 신현확-김준성 회장 등이 이건희 회장으로 상징되는 글로벌 삼성의 밑거름이 됐다면 이수빈 회장이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와 특검으로 이어지는 격랑을 거치며 이건희 회장-이재용 전무로 넘어가는 고비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