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note]M&A 사기 연루된 전 한기투 부회장… 평생 명예 '물거품'
이 기사는 09월26일(09:28) 머니투데이가 만든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수십년간 재계에 몸담으며 명성을 쌓은 한 원로급 기업인이 M&A 브로커의 사기 행각에 연루돼 평생 쌓은 명예를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조정호 전한국기술투자(638원 0%)부회장. 1946년생으로 환갑을 넘긴 조 부회장은 대우그룹기조실장, 현대중공업 이사 등을 역임하며 성공가도를 달려온 기업인이다. 올 3월까진 고교 동창인 서갑수 회장이 이끄는 한국기술투자의 부회장직을 맡아 왔다.
한기투 부회장직을 사임한 후 그는 올 8월 영화제작사로 유명한 태원엔터테인먼트의 경영권 인수자로 나서며 재계 복귀를 선언했다. 에이치씨파트너스라는 기업과 공동 인수하는 형태였으나 전면에 나선 것은 조 부회장이었다.
시장은 즉각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경영권 인수를 발표한 후 태원엔터테인먼트 주가는 50% 가까이 급등했다. M&A 발표라는 호재에다 그 주체가 믿을만한 유명 기업인이라는 사실이 주가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하지만 태원엔터테인먼트의 M&A를 주도한 인물은 따로 있었다. 창투사와 코스닥 기업 몇 곳에 몸담은 이력이 있는 김덕수 씨가 그 주인공. 그는 에이치씨파트너스의 대리인 자격으로 딜 전체를 주관했다.
문제는 김 씨가 '머니게임'을 전문으로 하는 M&A 브로커에 가까운 인물이었고, 태원엔터테인먼트와의 딜도 자기자본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른바 '무자본 M&A'를 추진했다는 점이다.
사채업자 등으로부터 단기자금을 조달한 뒤 이를 통해 회사 주식과 경영권을 인수하고 M&A를 재료로 주가가 오르면 이를 시장에 되팔거나 제3자에게 매각하는 방법 등을 통해 단기차익을 노리는 수법이다.
의도가 순수하지 못해서일까, 결국 딜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겨 계약금 일부만 넘기고 중도금과 잔금을 지불하지 못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사채업자에게 빌린 돈의 일부를 상환하기 위해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예금 33억여원을 무단 인출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잠적했다.
딜은 결국 승자 없이 패자만 남긴 채 깨졌다. 태원 측은 회사 자금을 잃어버렸고, 강남과 명동의 유명 사채업자들도 돈을 떼였다. 계약 당사자로 이름을 내걸었던 조 부회장도 자칫 김 씨의 공범으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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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부회장은 현재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그는 "평생을 쌓아온 명예를 한 순간에 날려버렸다. 내 스스로가 바보스럽다"며 자책했다.
그는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겠지만, 일이 벌어지기 직전까지 딜의 방법과 목적 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인수자 명의가 내 이름으로 돼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김 씨가 단순한 고문 역할을 부탁해 와 젊은 후배 사업가를 도와준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름을 빌려줬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하지만 조 부회장은 "신중한 판단을 못 한 내 탓이 크다"며 "몰랐다고 회피할 생각은 없으며,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이번 일과 관련해 재계 관계자들은 대체로 조 부회장에 대해 동정어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창투사 대표는 "조 부회장은 매우 점잖고 진중한 분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쩌다 이런 불미스런 일에 연관됐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피해자인 태원 측도 "인수자가 조 부회장이기에 신뢰를 갖고 경영권 양도 계약을 맺은 것은 사실이나, 사기 공범으로 생각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런 평가에도 불구, 앞으로 조 부회장의 재계 활동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연세가 지긋한 임원급 인사들의 경우 대외적인 이미지와 공신력이 가장 중요한데, 사기 등의 범죄에 연루된 경험은 이미지에 치명타"라며 "앞으로 조 부회장과 함께 일하려는 기업은 찾기 어려울 것"이라 전망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평생 쌓은 명예와 이미지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셈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매 선택마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함을 교훈으로 보여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