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원칙과 현실사이

[기자수첩]원칙과 현실사이

정영일 기자
2008.09.30 09:50

#1. 검찰이 A씨를 폭행 혐의로 기소했다. 그런데 검찰은 폭행사건임에도 A씨에 의해 누가 폭행을 당했는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한다. 변호인은 무엇을 변호해야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2. B씨는 조직폭력배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주먹을 휘두른 폭력배를 신고했더니 B씨에게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하라고 한다. 법정에는 폭력배의 동료들이 진을 치고 있을 게 분명하다. B씨는 그 동료들로부터 '제 2의 폭행'을 당할까 두렵다.

가상으로 만든 얘기지만 비슷한 일이 지금 법정에서 벌어지고 있다. 29일 열린 조중동 광고중단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에 대한 2차 공판 준비 기일에서다. 검찰은 피해업체들의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피해업체를 밝히지 않았다.

지난 17일 검찰이 피해업체들을 공개하겠다고 한 이후 업체들에서 항의가 끊이지 않고, 심지어 진술을 번복하겠다는 협박(?)도 있었다는 뒷얘기다. 검찰에 협조한 업체가 공개되면 네티즌들이 또 한 번 '융단폭격'을 퍼부을 것이라는 우려다.

변호인 입장에서는 도대체 누구를 때렸다는 것이 특정이 돼야 '안 때렸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고 한다. 피고인의 방어권이다. '피고인의 방어권'이라는 원칙론과 2차 피해 예방이라는 현실론이 충돌하는 순간이다.

'실체적 진실을 발견한다'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검찰과 변호인이 합법적으로 채택된 증거에 의해, 양측의 반론권을 충분히 보장해주는 절차적인 합법성을 지켜야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검찰의 '비공개'는 업체들의 반발은 축소시킬 수 있을지언정 피고인과 변호인들의 반발에는 불을 지피는 것이다. 불공정한 재판은 사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역효과로 이어진다. 2차 피해는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과 손해배상을 통해 보상하는 차후의 방법도 있다.

공소 유지를 위한 쉬운 길이 있다. 어렵지만 원칙적인 길도 있다. 국가 사법기관에서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이라면,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이 민주사회에서 사법부가 정의를 지켜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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