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펀드는 ‘위험’인식 팽배…“무얼 보고 투자하라고?”
미국식 투자은행을 모델로 도입한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이 시행 초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제대로 준비를 갖추지 못한 채 시행돼 일반 고객들의 불편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고객들뿐만 아니라 지점 직원들도 입이 나와 있기는 마찬가지. 고객들과의 상담시간만도 최소 한시간이다. 이처럼 자세하게 상담해주는 일은 과거 VIP들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고객 한사람 한사람을 모두 VIP처럼 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직원들은 털어놓는다. 말 많은 자통법, 지난 4일 시행된 이후 어떻게 지점 풍경이 달라졌는지 11일 직접 찾아가 보았다.
◆“펀드는 위험하니 채권투자 하세요”
명동에 있는 D증권사 지점. 오전이어서인지 한산했다. 5분 정도 기다리니 내 차례가 돌아왔다.
“무엇 때문에 오셨나요?”
“1000만원 정도를 투자하려고 하는데 좋은 상품이 있을까요?”
“요즘 채권투자가 괜찮습니다. S그룹 채권 중 괜찮은 것이 있는데 수익률이 연 6%대여서 추천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위험도도 별로 높지 않은 우량 채권입니다.”
지점 직원은 우선적으로 채권투자를 권유했다.

“펀드는 가입이 안 되나요? 전 펀드에 가입하고 싶어서 왔는데요.”
“펀드는 요즘 위험하다는 인식이 커서 많이들 안하고 있어요. 특히나 자통법 시행 후 가입절차도 까다로워졌어요. 아시죠? 설문지 작성해야 하는 거. 그래도 펀드가입 하시게요?”
직원은 펀드상품을 추천하는데 매우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펀드상품을 보여 달라”고 강하게 요구하자 그제야 투자성향 분석을 해야 한다며 설문지를 꺼내 주었다.
설문지 안에는 ▲투자권유 희망여부 ▲투자하고자 하는 자금의 투자가능 기간 ▲투자경험과 가장 가까운 금융상품 ▲금융상품 투자에 대한 지식수준 ▲투자원금에 손실발생 시 감내할 수 있는 수준 ▲파생상품 투자 경험 등 10가지 항목을 체크하도록 했다.
‘투자원금 중 일부의 손실을 감수할 수 있다’라고 답변해서인지 투자성향이 적극투자형(65점)으로 나왔다. 적극투자형이면 투자성향 5단계 중 4단계로, 파생상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펀드에 가입할 수 있다.
◆도대체 무얼 보고 펀드에 투자해?
독자들의 PICK!
“고객님은 투자성향이 적극투자형으로 나와서 펀드에 가입하실 수 있네요.”
“요즘 괜찮은 펀드 상품이 어떤 것들이 있나요?”
상품들 좀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설명해주기 어렵다”고 직원은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펀드상품목록이 적혀있는 프린트물 한장을 내밀었다. 그 프린트물 만으로는 펀드에 대한 설명이 턱없이 부족해 ‘도대체 뭘 보고 투자를 하란 말이야?’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혹시 펀드 수익률을 분석해놓은 자료가 있다든지, 펀드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볼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만 자료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여기 몇개 보여드릴게요.”
직원이 자료를 몇개 꺼내놓았지만 상품에 대한 간단한 개요만 적혀있을 뿐 어떤 주식에 주로 투자하는지 과거 수익률은 어땠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객이 쉽게 볼 수 있도록 펀드 수익률 비교표라든지, 펀드의 성격에 맞춰 개별 소책자를 만들어 읽을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가치주펀드 ▲인덱스펀드 ▲블루칩펀드 ▲업종대표주펀드 ▲성장주펀드 ▲원자재펀드 ▲해외펀드 등을 성격별로 나누어서 각각의 수익률과 특징, 편입된 주요 종목들에 대한 설명이 덧붙여 있는 자료 말이다.
당장 증권사 지점을 찾아가 펀드에 가입하려고 해도 자료가 몹시 부족해 결국 지점 직원의 권유로밖에는 투자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제대로 펀드상품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고객들이 따로 공부를 하고 오는 수밖에 없다.
자료도 자료지만 더 큰 문제는 시간이었다. 투자성향을 분석하고 어떤 펀드가 있는지 간단한 상담을 했는데도 1시간가량 걸렸다. 현실적으로 각각의 펀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질문하는 데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였다.
직원들도 각각의 펀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 않아 고객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직원의 목소리도 약간 쉬어 있었다. 긴 시간 동안 고객들에게 일일이 설명해주느라 그런 듯 보였다.
◆은행은 더 보수적…직원 “펀드 잘 몰라요”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종로에 위치한 K은행 지점창구였다.
“매월 20만원씩 적금을 들고 싶은데 어떤 상품이 있나요?”
지점 직원은 ‘자유적금’을 추천했다. 연 이율이 3%대 초반이었다.
“너무 금리가 낮은데 좀 더 금리가 높은 상품이 없나요?”
“요즘 대부분 금리가 낮아도 자유적금을 들고 있습니다. 일단 안전하니까요.”
혹시 적립식펀드는 없냐고 물었다. 그러자 지점 직원은 놀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요즘 적립식펀드 찾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자통법이 시행된 이후 펀드에 가입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근데 왜 펀드를 찾으시죠?”
지난해 여름만 해도 은행에 적금을 들러 가면 다들 적립식펀드를 추천하곤 했었는데, 그때와는 정반대 분위기였다. 펀드하면 고수익 상품인 것으로 얘기하던 직원들이 이제는 완전히 펀드를 고위험 상품으로만 몰아갔다. 적립식펀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직원은 몇번이고 펀드의 위험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고도 펀드 상품에 가입하고 싶다고 하니까 그제야 투자성향 분석 설문지를 꺼내놓았다.
설문지는 10개 항목으로 증권사와 약간 차이가 있었지만 거의 유사했다. 역시 투자원금 중 일부의 손실을 감수할 수 있다는 답변 덕택인지 적극투자형(69점)으로 나왔다.
“적극투자형으로 나왔으니 펀드 가입은 가능하시겠네요. 하지만 그래도 파생상품은 안돼요.”
어떤 펀드가 있는지 좀 보여 달라고 했더니 목록이 몇개 적힌 것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목록만으로는 이 펀드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과거 수익률이 어떠한지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가치주펀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업종대표 우량주만을 모아놓은 펀드가 있나요?” “원자재펀드는 무엇이 있어요? 수익률은요?”
기자의 질문에 직원은 빠르게 답변을 하지 못했다. 관련 자료도 거의 없었다. 결국 제대로 된 정보를 얻는데 실패했다. 겨우 그 은행에서 발행한 적립식펀드에 관한 자료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그렇게 대충 상담을 했는데도 시간은 1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다.
◆인프라 미비…투자자 보호 취지 무색
자통법 이후 달라진 풍경들을 취재하면서 반년 만에 참 많은 것들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난 여름 증권사나 은행 지점을 방문하면 직원들은 무조건 ‘펀드에 가입하세요’라고 권유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미래를 보장해주는 장밋빛’ 상품 펀드가 어쩌다 이렇게 ‘천덕꾸러기’로 돌변했나 생각하니 씁쓸했다.
그만큼 글로벌화된 세계 경기구조속에서 한국 금융시장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서였다. 또 투자자들이나 직원들이 지나치리만큼 쉽게 끓었다가 쉽게 식는 냄비형 근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지난 몇년 동안 대세상승장이 펼쳐지면서 증권사나 은행이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여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 교육에 참으로 인색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직원들 가운데 펀드에 관해 상세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또 본사 홍보자료를 제외하곤 펀드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제대로 구비해놓은 지점이 거의 없었다.
자통법이 실시되면서 많은 금융상품이 나오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겐 '그림의 떡'이나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좋은 금융상품이 나와도 복잡해서 이를 제대로 설명해 줄 직원이 별로 없고, 그럴 시간도 충분치 않아 보였다.
고객들의 수준이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창구 직원들의 권유에 약한 것이 사실이다. 자통법 시행으로 첨단금융상품을 출시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에 앞서 직원들이 관련 상품들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는 전문성을 갖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시급해보였다.
또 자사 상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타사 상품들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소책자나 프린트 자료를 보강하는 작업이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선진적인 법과 제도를 만든다고 해서 갑자기 금융이 선진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에 맞는 충분한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는다면 '빛 좋은 개살구'격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