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계 맏형이 말하는 그들의 세계

애널리스트계 맏형이 말하는 그들의 세계

정영화 기자
2009.11.05 11:36

[머니위크 커버]한국의 머니메이커/ 신성호 우리투자증권 상품전략본부장

[편집자주] 금융계의 꽃이자 핵이라 불리는 머니메이커(Moneymaker) 3총사 PB,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 한국 금융계를 쥐락펴락하는 미다스의 손들인 이들 3총사가 우리의 투자시계를 맡고 있는 것이 현실. 대중의 선망 받는 인기 직업군에 속하는 이들의 세계. 하지만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그들의 진짜 맨 얼굴이 어떠한지 궁금하다. 겉으로 화려한 만큼 속도 화려할까? 연봉은 정말로 많이 받을까? 이들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받을까? 현장에서 발로 뛰는 스타급 PB,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를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담아봤다.

신성호(54) 우리투자증권 상품전략 본부장(전무)은 애널리스트 계의 산 역사다. 1981년 삼보증권 조사부로 입사해 20년 넘게 리서치 일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국내 애널리스트 사관학교라 불리는 대우증권 리서치센터(구 대우경제연구소 증권조사부)에서 투자전략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홍성국 대우증권 홀세일 사업본부장, 윤세욱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종승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등이 대우증권 시절 신 본부장 밑에서 일했던 후배들이다.

신 본부장은 지금은 애널리스트 업무에서 약간 벗어난 상품전략본부장 일을 맡고 있다. 지난해엔 금융투자협회 본부장도 역임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과 직함은 여전히 애널리스트 쪽에 훨씬 친숙하다.

증권가 애널리스트계의 생리상 마흔이 넘으면 점차 퇴출되기 시작하고 쉰을 넘긴 사람을 찾기 어렵다. 그런 풍토 속에서도 신 본부장은 30년 가까이 애널리스트계에 근무했으니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장수(?)의 비결에 대해 물었다.

“투자전략은 특별한 것에서 찾기 보다는 상식선에서 판단하는 것이 좋지요. 요즘엔 투자전략을 말할 때 갖가지 기법을 많이 동원하지만, 기본에 충실한 것이 오랫동안 이 바닥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닌가 싶네요.”

그때그때는 튀는 의견이 주목을 받는 듯해도 결과적으로 평범한 상식에 귀의하는 것이 증시의 원칙이었다는 얘기다.

또 하나는 솔직함이다. 그는 IMF 외환위기 직전 주가예측을 잘못해 잠시 지점에 나가 귀양살이(?)를 간 적이 있었다. 그리곤 1999년 다시 애널리스트로 컴백했는데 자신이 당시 예측을 잘못한 것에 대해 언론에 공개적으로 사과한 적도 있었다.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해서 솔직히 시인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애널리스트에게 필요하다 봅니다. 투자자와 애널리스트간의 신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자신이 잘못 예측했을 때 끝까지 고집하고 수습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솔직히 잘못을 시인하는 자세가 투자자에게 오히려 신뢰감을 준다고 봅니다.”

◆1세대, 2세대, 3세대로 이어지기까지

그는 현직 리서치센터장들의 맏형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오랜 경험을 가졌지만 여전히 스승으로 여기는 사람이 한명 있다. 바로 심근섭 전 대우증권 전무다.

심근섭 전 전무는 당시 '애널리스트계의 카리스마’라고 불렸을 만큼 유명했다. 증권가에 오래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만큼 리서치 업계의 대부였다. 그가 애널리스트계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심근섭 전 전무가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부임하던 시절 신 전무는 애널리스트에 첫발을 내딛은 지 얼마 안된 신출내기였다.

“당시 그 분 밑에서 일했을 때 야근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추석이나 설날조차도 당일 이외에는 쉬어보지 못할 정도로 정말 빡빡한 근무의 연속이었습니다. 일요일은 물론이고 토요일도 회사에 나왔을 정도로 일을 많이 했죠. 야근도 보통 새벽 2~3시였으니 집에 들어가는 것은 그저 와이셔츠를 갈아입기 위해 들어갔을 정도였죠.”

이같은 빡빡한 근무와 한국 리서치업계 특유의 교육방식인 도제식 교육이 업계에 유명 애널리스트를 많이 양산해낸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의 ‘파워’를 만들어낸 원동력이었다. 도제식 교육이란 선배인 사수가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부사수인 후배를 1대 1로 가르치는 방식을 말한다.

이런 1세대 애널리스트인 심근섭 전 전무가 국내에 리서치 기반을 닦았고 그 계보를 열었다. 2세대 애널리스트로는 강창희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소장과 정종열 전 동부증권 사장이자 현 솔로몬투자증권 부회장을 들 수 있다.

3세대 애널리스트는 현재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하는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조홍래 한국투자증권 전무, 김영익 하나대투증권 부사장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신성호 본부장이 가장 맏형격이다.

지금처럼 리서치센터가 일반화되고 본격적으로 골격을 갖추기 시작한 때가 바로 3세대로 넘어오면서부터라는 것이 신 본부장의 설명이다.

◆고수가 후배 애널리스트에게 전하는 훈수

신 본부장이 증권가에 발을 내딛은 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처럼 오랜 세월동안 이 바닥은 얼마나 변했을까.

"2000년 IT버블 당시 주가가 반토막이 나서 난리가 아니었는데 여기에서 또다시 주가가 반토막이 날 수 있다고 전망했었거든요. 그때 투자자들의 각종 협박전화 때문에 회사를 하루 결근했었던 기억도 나네요. 정말 그땐 투자자들의 반응이 과격했죠."

애널리스트 업계에서 가장 큰 변화라면 비록 애널리스트가 전망한 것이 틀리더라도 과거만큼 공격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투자자들의 자세를 들었다. 투자자들이 많이 성숙해져서 투자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것과 의견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분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애널리스트들이 기본에 충실하려는 자세가 과거보다 못하다고 지적했다.

"예전보다 애널리스트 인력도 많아지고 하다 보니 너무 빨리 튀려고 하는 마음들이 앞서는 것 같아요. 기업가치가 단 번에 변하는 것이 아닌데 목표 주가를 일주일에 두 번씩 바꾸는 일도 있을 정도니까요. 애널리스트는 기본 논리에 충실해야 오래 살아남습니다. 기교는 그 이후의 일이죠. 순간적인 느낌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기본 분석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을 곤궁에 빠뜨리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후배 애널리스트들이 스타성에 연연하기 보다는 기초 실력을 향상시키고, 논리력을 기르는 기본에 충실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특히 기업을 분석하는 것은 기업이익(PER) 등 펀더멘털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 력>

1982년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통계과

1987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통계과(경제통계 전공)

1981년~ 삼보증권 조사부

1984년~ 대우경제연구소 증권조사부

1997년~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 부장

2002년~ 우리증권 리서치센터장

2005년~ 동부증권 법인본부장

2006년~ 동부증권 리서치센터장

2008년~ 금융투자협회 본부장

2009년 7월~현 우리투자증권 상품전략 본부장(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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