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 커버]1억의 벽/세금 37%, 잡히는 건 절반
1억원 안팎의 연봉을 받는 증권사 PB 김모(남 35세)씨. 그는 요즘 자신의 고객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있다. 회사에서 의례적으로 고객들을 위해 마련하는 평범한 선물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자신이 VIP 고객으로 대우받는다는 것이 선물 하나에서도 느껴져야 하기 때문에 고가의 선물을 고를 수밖에 없다.
김씨가 우선적으로 생각한 선물은 명품 만년필. 한자루당 가격이 30만~50만원대다. 10명의 고객에게 선물한다면 300만원. 30명의 고객을 챙기려면 900만~1000만원은 족히 든다. 물론 이 돈은 모두 김씨 자신의 지갑에서 나가야 한다.
자영업자나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 아닌 샐러리맨들에게 연봉 1억원은 어쩌면 꿈의 숫자, 직장생활과 삶의 목표일 지 모른다. 하지만 연봉 1억원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금물이다.
연봉 1억원을 받는 샐러리맨이 되기 위해선 자신의 삶 중 포기해야 할 부분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 자신의 손에 쥐어지는 돈도 1억원이 아니다. 그리고 1억원 수준의 연봉을 몇 년이나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다.
◆연봉의 절반은 내뱉어라?
30대에서 40대 중반의 연봉 1억원 샐러리맨 중에는 금융권 영업사원이나 수입차 딜러가 상당수다. 대기업 및 공기업 등에서 근무하는 일반 사원들도 1억원의 연봉을 받긴 하지만 대체로 고객을 유치하고 그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세일즈맨들이 대표적인 억대 연봉자다.
이들은 업무 특성상 버는 만큼 써야 한다. 한 보험설계사는 "연봉이 1억원이라면 그 중 최소 40%는 재투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보험설계사가 고객 800명에게 2만원짜리 생일케이크를 선물한다고 해도 1년에 1600만원이 든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고객을 만나고 접대하기 위해선 교통비, 식비를 비롯한 기타 영업비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든다. 버는 만큼 세금도 내야 한다. 그나마 보험사는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기 때문에 소득세가 3%로 낮은 편이다. 하지만 증권사 PB 김씨의 경우는 다르다.
김씨는 "보통 연봉의 10%를 세금으로 계산하지만 소득이 8800만원 이상 되는 부분에 대해선 37%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며 "세금을 비롯해 마케팅, 영업비 등을 떼고 나면, 실제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연봉의 절반 수준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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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행여 업무상 차질이 생길 경우 자신의 돈을 털어 고객의 자산을 채워줘야 한다"며 "이런 일로 한 동료는 1500만원을 내뱉은 적이 있고 그 금액이 수천만원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소위 보험 판매왕으로 불리는 억대 연봉 설계사들도 부실계약으로 보험이 해지될 경우 보험금을 대납하기도 한다. 설계사의 실수가 아니라 고객들이 이중계약을 한 후 의도적으로 해지를 요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 수입차 딜러는 "연봉 1억원을 돌파하면 그때부터 시간이 부족하다. 자신이 한 회사의 영업사원이지만 별도로 몇명의 직원을 고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무업무를 맡아 줄 비서뿐 아니라 고객들의 차에 문제가 생길 때 신속히 처리해 줄 정비직원까지 고용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자신도 연봉을 받으면서 일하는 샐러리맨이지만 누군가에게 월급도 줘야 하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연봉 1억원의 유효기간은?
상당수 연봉 1억원 샐러리맨들에겐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이 잘 들어맞는다. 현 소득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가며 고객을 관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 해도 연봉 1억원을 꾸준히 유지하는 할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5년 이상 유지할 수 있다면 상당히 뛰어난 사원으로 평가 받는다. 연봉 1억원을 달성하기보다 그 자리를 지키기가 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 보험사의 SM(세일즈 매니저)은 "억대 연봉을 받는 설계사 10명 중 7명은 2~3년 안에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며 "겨우 3명 정도만이 꾸준히 억대 연봉을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소득의 재투자가 비효율적으로 이뤄지게 되면 설계사 본인만 손해를 보고 롱런하지 못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난해 금융위기 전에는 보험 설계사 15%가 억대 연봉자였지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7~8%까지 급격히 떨어졌다"며 "당시 고객관리를 잘한 사람과 못한 사람이 극명하게 양분됐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시중은행 PB팀장은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다보니 세일즈맨의 연봉 1억원, 2억원이 마냥 화려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낀다"며 "소득만큼 지출도 커 오히려 많은 빚을 진 판매왕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영업의 생명력은 길어야 5년이다"고 말했다.
◆삶의 질은 책임 못 진다?
돈을 많이 버는 만큼 삶의 질이 좋아질까? 대개는 그 반대다. 모든 생각과 시간을 일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해당 업계에서 버티기 힘들다.
물론 일에 대한 성취감과 즐거움을 느끼며 자발적인 워크 홀릭이 되는 것이지만 보통 샐러리맨들이 누릴 수 있는 정도의 시간적, 정신적 여유까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한다.
증권사 PB 김씨는 "머리를 감다가도 샴푸를 했는지, 안 했는지 깜박깜박 잊곤 한다"며 "평소 관심사와 걱정거리가 회사업무 및 고객관리 등에 온통 쏠려있기 때문이다"고 털어놨다.
치열한 경쟁에서 개인 역량을 높이고 고소득을 유지하기 위해선 기꺼이 '일의 노예'가 돼야 한다는 것이 김씨를 비롯한 억대연봉자들의 하소연이다.
한 6년차 보험설계사는 "물론 목표한 바가 있고 일이 즐겁기 때문에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남들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포기해야 한다. 많이 얻는 만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는 몇배 이상이다"고 토로했다.
그는 "소위 억대연봉자, 세일즈왕 등을 돈을 많이 버는 사람으로 바라볼 뿐 그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노력과 고충은 가려져 있는 것 같다"며 "연봉 1억원의 화려함을 누리고 싶다면 그늘에 대해 먼저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