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 커버]올 겨울 뜨겁게

'이대도강'.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해 쓰러진다는 고사성어다. 중국의 고대 병법서인 손자병법 36계 중 11번째 계책으로, 적전계(敵戰計)에 속한다. 싸움에는 반드시 손해가 따르기 마련이니 큰 이익을 거두기 위해서는 부분적인 손해를 감수하라는 것. 즉 중요성이 적은 것을 희생해 큰 이득을 거두는 전략이다.
◆청담동 명품거리에 줄선 그녀들
요즘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 양재동 AT센터에서는 이대도강이란 말이 어울리는 풍경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글로벌 패션브랜드 본사들이 몰려있는 청담동 한복판에 이른 아침부터 수백명의 사람이 줄을 서 있다면 그 줄은 100% ‘패밀리세일’에 입장하기 위한 줄이다. 대형 패밀리세일이 주로 열리는 양재동 AT센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패밀리세일이란 일정판매기간이 지나도록 남은 재고를 처분하거나 백화점, 아울렛을 거치고도 해소하지 못한 물량을 소진하기 위해 임직원, VIP고객들에게 50~90% 싸게 파는 행사다.
그러나 최근 불황으로 소규모, 비공개로 진행해오던 패밀리세일이 인터넷 정보공유와 함께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쇼핑 고수들이 패밀리세일을 찾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패밀리세일은 반차 또는 휴가를 내고 새벽 5시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득템'이라는 큰 이득을 챙기려는 팸셀녀(패밀리세일을 이용하는 실속파 여성 쇼핑족)들의 치열한 이대도강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섹스앤더시티>의 주인공 캐리브래드쇼가 열광하는 지미추 킬힐을 12개월 할부로 벌벌 떨며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10만원대에 장만할 수 있다면 몇시간 줄서는 것쯤은 사사로운 수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팸셀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비록 몇년 묶은 이월 재고이긴 하지만 정가보다 최대 90%까지 저렴하게 명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유혹은 쉽게 뿌리칠 수 없다. 먹이를 노리를 매처럼 날카로운 눈의 소유자라면 운 좋게 올 신상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특히 연말이 다가오면서 업체들이 재고를 털어내기 위한 패밀리세일을 많이 열고 있다. 패밀리세일이 올 겨울을 뜨겁게 달구는 명품 쇼핑의 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머 저 구두 명품관에서 봤는데"
독자들의 PICK!
크리스찬디올, 펜디, 불가리, 페라가모, 셀린느, 발리 등 백화점 명품관에서 볼 수 있었던 하이브랜드부터 MCM, 지오다노, 폴로, LG패션, 갭, 비비안, 톰보이, 신원, 롱샴, 겔랑, 워킹온더클라우드 등 다양한 패션브랜드들이 암암리에 패밀리세일을 진행하고 있다.
백화점에서 한벌 구입할 수 있는 돈으로 여러벌 '득템' 할 수 있는 패밀리세일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도 패션업계의 한 트렌드로 볼 수 있다.
패밀리세일은 비단 패션업계뿐만 아니라 와인, 침구 등 의식주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열리고 있다.
얼마 전 3년 만에 패밀리세일을 진행한 워킹온더클라우드(수입 워킹슈즈 브랜드)는 일정보다 하루 일찍 세일을 종료했다. 예상보다 많은 고객이 몰려 더 이상 팔 신발이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뤘기 때문이다.
워킹온더클라우드 송정호 씨는 "직원가족, 지인과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초대장을 보냈으나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고객이 방문해 놀랐다"며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패밀리세일 초대장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더니 입소문을 타고 많이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판매 가격대도 2만~7만원대로 저렴해 고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회사는 사람들이 몰리자 1인당 5켤레로 구매제한을 두기도 했다.
매년 봄, 가을에 패밀리세일을 진행하는 비비안은 지난 10월 열린 4일간의 행사기간동안 제품 1만1000개를 판매했다. 금액으로는 무려 1억여원.
이정은남영비비안(367원 ▼7 -1.87%)홍보실 사원은 “매년 두번에 걸쳐 실시하는 행사인데 전혀 홍보를 하지 않아도 지역주민들이 많이 찾아 온다”며 “재고물량을 지역사회 주민들과 좋은 취지로 함께 나누고자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패밀리세일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패션브랜드도 있다.LG패션(21,600원 ▲50 +0.23%)은 바네사부루노, 블루마린, 이자벨랑, 조셉 등 자사브랜드를 50~90% 할인하는 패밀리세일(12월3~5일)을 연다는 내용의 초청장을 홈페이지 회원들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악성재고 털기? 변질된 패밀리세일
패밀리세일이 인기를 끌다보니 재고확보도 없이 무리하게 행사를 진행해 원성을 사는 경우도 있다.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아 패밀리세일에 종종 다닌다는 변주현(방배동) 씨는 “지난 10월 마크제이콥스 패밀리세일에 2시간이나 기다려 입장했는데 악성재고만 잔뜩 있는걸 보고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패밀리세일이 쇼핑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이를 악용해 우롱당한 느낌이었다"며 "평소 좋아했던 브랜드였는데 이미지까지 나빠졌다”고 지적했다.
직원 및 지인들을 중심으로 열렸던 행사가 일반인들에게까지 오픈되면서 ‘패밀리세일’의 의미가 변질되고 할인폭도 줄어들어 일반 세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패밀리세일에서 승자되는 7가지 전략>
이대도강의 책략을 구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득실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잘 획책하는데 있다. 무슨 일이든 역전의 짜릿함이 있는 것. 최후의 승리를 누가 쟁취하는지는 끝까지 봐야 알 수 있다. 패밀리세일에서 실패하지 않는 법을 알아보자.
1. 일등 입장이 아니라면 마지막 날을 공략하라. 어떤 세일이든 첫째날 가장 먼저 입장하는 것이 선택의 폭이 넓다. 정성스레 진열된 다양한 상품 중에서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행사 마지막 날에는 남은 물량을 처분하기 위해 추가세일을 하는 곳이 많다.
2. 하자가 없는지 꼼꼼히 살펴라. 패밀리세일은 교환ㆍ환불ㆍAS 불가라는 단서가 붙는다. 우왕좌왕한 분위기에 휩쓸려 이것저것 무턱대고 구입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3. 맘에 드는 물건은 꼭 붙잡아라. 내손에 집었다고 내 물건이 아니다. 먹이를 낚아채듯 가로채가는 손들이 사방에서 몰려든다.
4. 싸다고 무조건 구입하지 마라.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1만원쯤이야 라는 생각에 구입한 카드값이 쌓여 목돈이 될 수 있다. 마지막 계산대에 서서 심호흡을 하며 이 상품이 백화점에서 봤어도 구입했을 디자인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것이 좋다.
5. 최근 패밀리세일이 인기를 끌면서 무늬만 ‘패밀리세일’인 행사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홍보전단이라면 일단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6.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 패밀리세일은 많이 알려질수록 '득템'의 기회가 줄어든다. 친한 친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조용히 혼자 가는 것이 좋다.
7. 무엇보다 당신의 인사고과를 조심하라. 명품을 싸게 구입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차를 낸다면 당신의 상사는 낮은 인사고과를 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