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 커버]남자 남자 남자/ 젠더 마케팅
2000년대 초반, 축구선수 안정환과 배우 김재원이 광고모델로 등장하며 큰 인기를 모았던 남성 화장품 컬러로션. 이 화장품은 메트로섹슈얼 열풍에 힘입어 수년간 자신을 가꾸고 싶어 하는 남성들의 필수품으로 여겨졌다.
이어 몇 년 전부터 컬러로션의 인기를 누른 비비크림이 등장했다. 컬러로션이 얼굴색을 조금 더 밝게 하는 역할을 했다면, 비비크림은 얼굴색뿐 아니라 트러블까지 가려줄 수 있는 '착한 화장품'으로 남성들에게 인식된 것이다.

비비크림의 등장과 함께 조금 더 적극적인 화장의 개념이 남성들 사이에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물론 일부 남성들은 비비크림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피부 및 주름 관리를 비롯해 다양한 기능성 화장품으로 떳떳하게 화장을 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남성과 여성의 벽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메트로섹슈얼에 이어 최근 여성성을 함께 갖고 있는 남성을 지칭하는 초식남, 그루밍족 등의 신조어도 생겼다. 이런 트렌드에 맞춰 관련 업계도 남심(男心)을 잡기 위한 남성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
화장품업체 태평양에서 18년간 조향사(調香師)이자 마케팅 담당자로 근무하고, 지난 2007년 화장품 및 향수 전문업체 '아뜰리에'를 창업한 송명철 대표는 이런 트렌드와 관련해 캘빈클라인의 향수 'ck1'을 떠올렸다. ck1에서 시작해 컬러로션, 비비크림 등에 대해 생각한다면 화장품뿐 아니라 다양한 남성마케팅의 핵심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단절이 아닌 '쉐어'
1990년대 중반 출시돼 지금까지 남녀 구분 없이 인기를 이어오고 있는 ck1. 이 향수는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명확히 구분돼 있던 향수 시장에 쉐어(share)의 개념을 끌어들인 제품으로 평가받았다. ck1 출시를 '센세이션'이라고 표현하는 업계 관계자들도 있었을 정도다.
이 향수가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다. 남녀공용 향수를 대중들은 여전히 낯설게 느끼던 시기였다. 신제품을 소비자들이 알아서 사용해 줄 것이라 믿는다면 큰 코 다칠 수 있다. 당연히 회사 측의 적극적인 마케팅이 수반돼야 한다. 당시 ck1의 홍보 전략은 이른바 '샘플 마케팅'이었다.
송명철 대표는 "매장에서 ck1 샘플을 고객들에게 많이 증정했고, 서서히 ck1의 향기에 적응하도록 도왔다"고 설명했다. 여성향수가 개성이 없다고 느꼈던 여성들, 남성향수가 지나치게 자극적이라고 느꼈던 남성들이 차츰 여성도 남성도 아닌 중성의 향기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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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있는 검은 피부의 남성이 광고 모델로 등장, ck1의 폭넓은 사용자층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ck1의 인기에 힘입어 남성과 여성의 단절이 아닌, 쉐어 마인드가 확산됐다"며 "이와 유사한 개념의 향수 및 화장품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감성자극과 세분화
화장품과 향수 시장에서 쉐어가 마케팅의 중심에 자리 잡자, 남성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여성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남성들의 마음을 확실하게 사로잡기 위해선 차별화되고 체계적인 마케팅 전략이 필수다.
우선 남성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흔히 남성은 여성보다 감성적인 면이 부족하다고 여겨지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다. 송 대표는 "컬러로션이 처음 출시됐을 때 월드컵으로 큰 인기를 끌며 메트로섹슈얼의 대표로 꼽히던 안정환이 광고모델로 등장한 것도 안정환처럼 되고 싶다는 남성들의 심리를 자극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남성들은 제품의 기능만 중시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며 "아이폰을 비롯한 IT 제품을 고를 때도 디자인 하나까지 꼼꼼히 따지는 남성들의 감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상을 세분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성보다 남성의 경우 세대 차이가 더욱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10대에서 40대, 또는 그 이상에 이르기까지 세대별로 남성들의 성향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 송 대표의 지적이다. 그는 "연령, 직업군 등에 따라 타깃을 명확히 하는 것이 남성마케팅의 핵심이다"고 강조했다.
◆단순화와 명확화
아무리 특정 계층을 중심으로 감성을 잘 자극했다고 해도, 사용하기 복잡한 제품은 남성들에게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대체로 남성들은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화장품만 따져봐도 여성만큼 복잡하고 체계적인 과정을 거쳐 화장을 하려는 남성들은 여전히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이제 막 그루밍족 대열에 합류하려는 남성들의 마음을 잡고 싶다면 단순화 전략을 빼놓아선 안 된다.
컬러로션이나 비비크림이 남성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화장품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사용법이 간편하기 때문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스킨과 로션을 대신해 사용할 수 있는 편리한 제품인 것이다.
송 대표는 "화장품을 예로 든다면 여성들은 오히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설명과 사용법을 선호하고, 그래야만 전문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남성들에게 그런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오히려 귀찮게 여기기 마련이다"고 말했다.
다만 아무리 단순하더라도 목적은 명확해야 한다. 컬러로션이 얼굴색을 밝게 하기 위한 화장품, 비비크림은 이에 더해 잡티까지 가려주기 위한 화장품이란 콘셉트를 명확히 한 것을 생각하면 된다.
송 대표는 "다양한 기능을 담고 있는 것도 좋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기능을 부각시킬 수 있어야 남성의 눈길을 끌 수 있다"며 "단순화와 명확화 전략이 빠진 남성마케팅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최근 간단히 요리할 수 있는 주방용품이 남성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같은 남성마케팅의 핵심을 엿볼 수 있다.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간단한 요리가 가능한 렌지메이트, 직화오븐, 쿠킹타이머 등 싱글남을 타깃으로 한 이색 요리기구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것을 선호하는 남성의 속성을 잘 반영한 제품들이다.
"소녀시대 노래 담긴 향기 만들어 내겠다"
조향사 송명철의 '아뜰리에' 도전기

조향사, 쉽게 말해 향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 없는 향기를 만들어 내는 향기 디저이너 또는 디벨로퍼라고 할 수 있다. 얼핏 남성보다 여성에게 어울리는 직업으로 느껴진다. 송명철 '아뜰리에' 대표가 처음 태평양에 입사해 조향사가 됐을 당시 가족을 비롯해 많은 지인들의 반응도 비슷했다고 한다.
"무슨 남자가 향수 만드는 일을 하냐고 말하는 분들이 많았었죠. 그런데 사실 저를 포함해 회사 내 10명의 조향사가 모두 남자였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 조향사의 비율이 점차 늘어나긴 했지만요."
그는 9년간 조향사로 일한 뒤 마케팅본부로 자리를 옮겼다. 향기를 찾아내는 일에 그치지 않고, 향기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일련의 프로젝트를 총 지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마케팅 업무를 수행하면서 가장 중요시 한 것은 바로 소비자의 표정과 몸짓 을 하나하나 살피는 일이었다고 한다.
"향수를 상품으로 출시하기 전 품평회 등을 통해 소비자들의 반응을 알아봐야 하잖아요. 그런데 소비자들이 말로 하는 평가를 전적으로 믿어선 안 됩니다. 왜냐고요? 상품개발자가 바로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아도 약간 둘러서 좋다는 식의 평가를 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어떤 제품을 접했을 때 나타나는 순간적인 표정과 몸짓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이다. 마케터들은 바로 이 점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단순히 소비자가 말로 전한 평가, 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얻은 자료 등에만 의존하선 안 된다는 것이 송 대표의 조언이다.
그는 오랜 시간 몸 담았던 회사를 떠나 조향사로서 또 한번의 도전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법인명 '아뜰리에 퍼퓸앤마케팅'을 설립, 세상에 단 하나뿐인 향기와 화장품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중이다.
아뜰리에의 대표적인 제품으로 기능성 화장품 'CPA-II'가 있다. 단백질 성분 펩타이드 세포를 고농축으로 함유해 이마, 눈가, 입가 및 목 부위 주름을 개선시켜 주는 주름개선 화장품이다. 천연갈대를 통해 은은하고 부드러운 자연의 향기를 내는 차량 및 실내 천연방향제 '내추럴가든 천연 디퓨저'와 일본 및 베트남 등에 수출되는 '섹시캔디 비비크림' 등을 만들어내는 데도 성공했다.
물론 회사를 떠나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오랜 시간 연구해 만들어냈지만 실패내지 실수를 한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향기를 만들어내겠다는 그의 열정은 식지 않고 있다.
"최근 음악과 향기를 접목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재즈를 담은 향기, 소녀시대 같은 아이돌그룹의 발랄한 음악을 담은 향기 등 다양한 음악을 향기로 표현하려는 것이죠. 남성과 여성의 벽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듯이 향기가 넘어갈 수 없는 벽도 없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