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차리는 남자의 음식 이야기

밥상 차리는 남자의 음식 이야기

지영호 기자
2010.03.26 10:11

[머니위크 커버]남자, 女心을 품다/ 12년차 전업주부 오성근씨

다음 카페 ‘밥상차리는 남자’(cafe.daum..net/babsangman)를 운영하며 안방마님의 삶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는 오성근(45) 씨는 벌써 12년차 남성전업주부다. 지난 2000년 <매일 아침 밥상차리는 남자>와 2006년 <Hello! 아빠 육아> 등을 출간했고, 신문사와 자치단체에서 평등부부상, 성평등 디딤돌상 등을 수상한 유명인사이기도 하다.

그는 15년 전 한의원이나 한방병원 컨설팅을 하는 벤처사업을 했다. 아이가 생기자 육아는 원하는 사람이 책임지자는 결혼 전 약속대로 자신이 전업주부로 나섰다.

주변의 시선은 차가웠다. 본가에선 아들에게 앞치마를 두르게 했다며 섭섭해 했고, 처가에선 딸만 일시키는 망나니 사위로 의심했다. 친구들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류가 있는 반면, ‘사내자식이 뭐가 모자라서’라며 혀를 차는 무리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의지가 강했다. 가사 역시 매우 중요한 노동이라는 생각이었다. 특히 매일 먹는 음식은 밖에서 벌어오는 수입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최근 딸과 함께 요리대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오씨로부터 그의 요리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제주도 음식도 잘하는 육지 남자

“요즘은 유채나물이 제철이에요.”

자연이 좋아 2006년 경기도 과천에서 제주로 이사 온 오씨는 ‘맛깔 나는 음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유채나물을 추천한다. 유채나물은 유채꽃의 새순을 따서 된장을 무쳐 만드는 제주만의 독특한 음식이다.

“제주에서는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잘 안 써요. 물회도 된장으로 간을 맞추잖아요.”

나지막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오씨는 제주만의 특별식을 설명한다. 그는 제주 특별식을 만들기 위해 4월10일 10살짜리 외동딸인 다향이와 김포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NS홈쇼핑에서 주최하는 ‘2010 우리돼지 요리경연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그쪽에서 전화가 왔어요. 특별부분 요리대회에 참가하라고요. 경쟁부분에 출전해도 자신 있지만 교통비와 체재비를 지원해준다고 해서 특별부분 참가로 마음을 굳혔어요.”

오씨가 양재동 AT센터에서 뽐낼 음식은 제주 토속음식인 ‘몸국’이다. ‘몸이 뭐죠?’하고 물으니 ‘톳과 비슷한 해초’라고 알려준다. 제주도 특유의 돼지고기 육수로 국물을 우려내면 담백하고 깔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자녀를 위한 전담 요리사

그는 다향이를 위해 간식도 손수 요리한다. 식혜, 잡채, 스파게티, 스테이크 등 못하는 음식이 없다. 감자만 가지고도 볶음, 국, 전, 샐러드, 떡, 칩까지 딸의 간식거리를 뚝딱 만들어낸다. 감자칩까지 손수 만드냐는 질문에 기름에 튀기지 않은 유명 과자의 이름을 대며 ‘똑같이 만든다’고 답한다.

그의 요리의 주재료는 친환경 농산물이다. 덕분에 다향이는 아직도 콜라나 사이다 등 탄산음료를 먹지 못한다. 대신 매실을 설탕에 버무려 만든 효소가 다향이의 음료수다. 그는 가족을 위해 아카시아, 쑥, 미나리, 포도, 선인장 열매 등을 재료로 다양한 음료를 만들어 마신다. 심지어 막걸리도 손수 만들 정도로 요리에 능통하다.

그는 한때 산굼부리 근처의 해발 500m 산중에서 살았다. 딸이 경쟁사회에서 인생을 소비하기보다 자연을 벗 삼아 착하게 자라달라는 바람이었다. 전교생 20명에 불과한 시골분교에서 오씨는 최고의 인기남이었다.

“이곳 부모들이 모두 낮에는 일하러 나가서 저밖에 없었어요. 아이들이랑 같이 놀아주고 간식도 해주니 인기 최고였죠.”

그는 폭설로 딸이 학교에 가지 못하자 서귀포로 이사를 했지만 학교의 권위주의와 교육의 한계를 느껴 결국 홈스쿨링(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하는 교육방식)을 택했다.

“아이의 행복을 저당 잡아 무한경쟁체제에 떠밀기 싫었어요. 주로 시를 외우고 피아노를 치고 바다에 가거나 수영장에 가요. 때로는 배낭을 메고 캠핑을 가기도 하죠.”

바깥양반 아내, 주방에선 기 못 펴

그는 요리를 배우는 기술에 특별함은 없다고 말한다. 그저 ‘먹어보면 대충 뭐가 들어가는지 안다’는 것이 비밀의 전부다. 요리책을 봐도 음식 맛을 못 내는 여자들이 수두룩하다고 하자 한국음식 특유의 감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레시피에 등장하는 서양요리는 계량화된 재료들로 만들지만 한국음식은 어머니 특유의 손맛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음식을 조리할 때 간을 보지 않는 편이다. ‘적당히’의 의미를 깨달아서다. 최근 다이어트를 위해 1주일간 단식을 한 적이 있는데 간을 보지 않아도 아내와 딸이 모두 맛있어했다고 자평한다.

“간을 보면 음식을 먹고 싶어지잖아요. 그래서 입도 안대고 적당히 만들었는데 만족하더라고요. 단식요? 이따금씩 장을 깨끗하게 비워주기 위해서 하는 편이라 바깥양반이 놀라거나 하지 않아요.”

바깥양반은 오씨의 아내인 이정희 씨를 일컫는 말이다. 이씨는 제주도 공무원으로 집의 수입을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바깥양반의 요리실력이 궁금했다.

“가끔 음식을 만들겠다고 나설 때마다 제가 충고를 하죠. 이번에는 재료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요.”(웃음)

일본의 한 소설가가 출간한 <남성독신보감>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남성들이여,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으면 요리의 즐거움을 배워라’라고. 한박자 늦은 그의 너털웃음이 갓 밥상을 내온 시골 아낙의 수줍은 미소처럼 느껴졌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지영호 산업2부장

'두려울수록 맞서라' 처음 다짐을 잊지 않는 기자를 꿈꿉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