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하는 남자, 프로주부 뺨치다

살림하는 남자, 프로주부 뺨치다

이정흔 기자
2010.03.24 09:28

[머니위크 커버]남자 남자 남자 / 남자, 여심을 품다

#1. 지난 주부터 엄마아빠가 옆에서 뭐 먹고 있으면 혀를 낼름낼름 입맛을 다지는 알콩이. 말로만 듣던 10배 미음이라는 녀석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 나중에 초보 아빠들 보고 따라 하시라고 사진 찍어 봤습니다.

#2. 저는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합니다. 씻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쉴 틈이 없는 일이라 생각하면 힘들겠죠. 그러나 저는 심심할 틈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3. 고무장갑이 양쪽 다 구멍이 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럴 때 저는 성한 한쪽을 그냥 보관해 둡니다. 그러면 나중에 서로 짝이 안 맞는 두짝을 같이 사용할 수 있잖아요.

‘알뜰살뜰’한 살림 노하우가 ‘프로주부’ 뺨치는 솜씨다. 그러나 이 글들의 주인공은 모두 남자. 맞벌이 아내를 위해 살림과 육아를 도맡고 있는 ‘알콩아빠’ 이상우 씨의 카페와 ‘독신남의 생존전략-오늘은 무얼 해머글까?’라는 대문글부터 인상적인 독신남 나물이네 블로그, 그리고 12년차 베테랑 전업주부 '밥상차리는 남자' 오성근 씨의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요즘 남자들에게 집안 살림은 필수가 되고 있다. 혼자 살아남기 위해 살림을 익혀야 하는 독신남부터 고소득 아내의 외조를 위해, 혹은 더욱 행복한 가정을 가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주부 역할을 자처하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

♦블루슈머, '홈대디’의 마음을 잡아라

프렌디, 홈대디, 트로피 허즈번드, 둥지남…. 모두 '살림하는 남자'들을 칭하는 신조어다.

육아에 소극적이었던 예전의 아빠들과 비교해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를 ‘프렌디(friend+daddy)’, 아내를 외조하는 남편을 ‘트로피 허즈번드(trophy husband)라 한다. ‘둥지남’은 똑소리나는 살림살이로 자취남 같지 않은(?) 안락한 보금자리를 가꾼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통계적으로도 일하는 아내의 뒷바라지를 위해 본격적으로 집안 살림을 도맡는 남성전업주부의 비중은 크게 늘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0년 2월 비경제활동인구’ 중 남성 가사 인구는 17만9000명에 이른다. 2003년 10만6000명이었던 전업남편이 3년 만인 2007년 40%가 넘는 증가율을 보이며 15만명을 넘어서더니, 올해만 하더라도 작년 동기대비 2만4000명(15.3%)이 증가한 것이다.

물론 이들 중 상당수는 실직에 의해 전업 주부가 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예전과 비교하자면 남녀의 성역할을 구분짓는 대신, 부부 각자의 경제적 능력이나 상황을 고려해 ‘자발적’으로 전업 주부를 택한 경우 역시 적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살림하는 남자’들의 활약은 인터넷 블로그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할인마트나 백화점 등에서도 남자 혼자 카트를 끌고 장을 보는 장면이 어색하지 않고, 아내가 장을 보는 동안 남편이 아이의 기저귀를 가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포착된다.

온라인쇼핑몰에서도 육아에 서툰 초보아빠들을 위한 ‘온도 측정 젖병’ ‘ 남성 전용 기저귀 가방’ 등을 따로 판매하는가 하면 아기가 울면 엄마의 심장 박동소리가 들리고 은은한 불이 켜지는 아이 달래기 용품 ‘크립 라이트’ 등도 인기 상품군에 이름을 올렸다. 초보자들도 쉽게 작동할 수 있는 전기밥솥은 초보 아빠는 물론 독신남들에게도 인기다.

온라인종합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주방 가전제품을 구매하는 남성의 비율은 2007년 40%, 2008년 49%, 그리고 2009년 53%까지 올랐고 올해는 55%에 이른다.

홍윤희 옥션 홍보팀 차장은 “특히 20~35세 남성들의 육아 용품이나 주방 용품 구매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며 “젊은 남편들일수록 가정살림을 남녀 성역할로 구분 짓는 경계선이 모호해지면서 최근에는 살림에 서툰 초보 아빠들을 위한 아이디어 제품도 많이 판매되고 있다”고 밝혔다.

"힘은 절반, 절약은 두배…재미도 있어요"

‘살림하는 남자’ 알콩아빠 이상우 씨

“주변 사람들이 저더러 ‘공공의 적’이래요. 하하. 그래도 저는 집안일 하는 게 재미있어요. 힘든 거야 아내도 마찬가지인데 아내한테만 떠넘길 순 없잖아요?”

홍보대행사에 근무하는 결혼 3년차 이상우 씨. 카페와 블로그에 아이에게 만들어 준 이유식부터 집안살림 노하우까지 꼼꼼하게 기록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 그는 ‘살림하는 남자’의 대표주자다.

“결혼 전에 특별히 약속을 하거나 설거지, 청소 등 당번을 따로 정해 놓는 건 아니에요. 그냥 집에 돌아오면 집 치우고 설거지하는 건 당연하니까, 아내가 설거지를 하면 제가 청소기를 돌리고 자연스럽게 일을 찾아서 하는 편이죠.”

부부가 함께 살림을 하니 아끼는 돈도 적지 않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아내랑 저랑 수시로 냉장고 열어보고 남은 음식 뭐가 있나 확인하고, 뭐 해먹을지를 고민하니까요. 아무래도 냉장고 정리라든지 요리 재료 하나라도 더 알뜰하게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또 남자는 힘이 있으니까 우리집 이사 올 때만 해도 부부가 페인트칠을 같이 해서 꽤 많이 아꼈거든요.”

사위가 부엌에 들어가면 좋아해도 아들이 집안일 하면 못마땅해 하는 게 다반사. 하지만 이씨의 경우는 어려서부터 곧잘 ‘남자도 집안일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던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그는 “지금도 요리할 때 모르는 점이나, 살림 노하우를 엄마한테 물어서 도움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제 막 9개월 된 딸 수빈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살림과 육아하는 재미가 더 늘었다. 그리고 그만큼의 부담도 더 늘었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

“수빈이 태명이 알콩인데, 지금도 알콩이 목욕은 꼭 제가 시키려고 해요. 이유식을 만들어 주는 것도 재미있어요. 아이한테 먹일 건데 더 깨끗하고 좋은 음식이면 좋잖아요. 애 키우는 데 힘든 거 많죠. 아빠, 엄마가 이렇게 같이 해도 힘든데 이걸 엄마 혼자 하려면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이씨는 “지금도 둘이 같이 아이를 돌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모유 수유 등 엄마만 할 수 있는 역할이 많다 보니 아내가 부쩍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한다.

'집안 살림은 남편이 아내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라는 게 이씨의 기본적인 생각. 그는 육아휴직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당장 수입이 줄어들게 되는데다 경력을 2~3달 동안 비우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고민 끝에 부부가 둘다 일을 계속하기로 논의했다.

“실제로 알콩이를 키우고 블로그가 유명해지면서 이렇게 주목을 받으니까 ‘살림하는 남자’가 드물구나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어요. 저는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내 할 일을 하는 거고, 아내도 똑같이 힘드니 같이 집안을 돌보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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