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승7패 늦깍기 복서 겸 세일즈맨의 행복

3승7패 늦깍기 복서 겸 세일즈맨의 행복

배현정 기자
2010.04.20 11:39

[머니위크 커버]샐러리맨의 이중생활/ 권투선수 영업맨 신상현 씨

1982년 1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WBA 라이트급 챔피언전. 당시 경기 14라운드에서 맨시니에게 턱을 강타당한 한국인 선수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비운의 복서' 김득구(金得九)였다. 당시 그가 쓰러지는 장면은 텔레비전으로 생생히 중계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큰 충격과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

그때 초등학생 꼬마였던 어린 신상현은 그런 김득구 선수를 가슴에 깊이깊이 새겼다. "김득구 선수, 그냥 멋있어 보였어요. 꿈을 위해 생을 바친다는 것.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간다는 그 정신이…."

밤이면 권투선수로 변신하는 AIA생명 선릉지점 마스터 플래너인 신상현(38) 씨의 이중생활은 그렇게 오래 전 가슴에 소중하게 뿌린 열망에서 비롯됐다.

밥벌이도 못하는 권투선수의 외로운 꿈(?)

신씨는 교육열이 뜨겁기로 유명한 '토박이' 강남 8학군 출신. 게다가 집안의 장남이었다. 막연히 "운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집안의 반대가 컸다. 감히 운동을 해볼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권투 글로브는커녕 남자아이라면 누구나 갖고 노는 야구방망이도 못 들게 했죠."

할 수 없이 부모님의 기대에 따라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갔다 복학한 1995년. 그는 뒤늦게 용기를 내 권투체육관을 찾아갔다. 하지만 한두달도 못돼 스스로 운동을 포기하지 말았다. "취업에 대한 압박이 컸죠. 프로선수로 뛴다고 해도 약값도 못 버는 정도이니까요."

대학을 졸업한 뒤 1999년 마라톤협회에 취업했다. 직무는 웹디자이너. 그러나 운명의 질긴 끈 때문이었을까. 마라톤대회 현장진행을 하게 되면서 다시금 뛰는 가슴을 느꼈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달리는 이봉주 선수를 보면서 '과연 왜 사는가'에 대한 물음을 다시 던지게 됐어요. 이렇게 연봉만 생각하고 사는 건 아니지 않나 회의가 일었죠."

비로소 용기를 내 권투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1년 여 구슬땀을 흘린 끝에 생애 최초의 시합도 치러냈다. 서른한살의 늦깎이 도전이었다.

"승패를 떠나 링에 선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그건 링에 서 본 사람밖에 알 수 없는 희열입니다."

그러나 주위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미쳤다고 하죠. 나이도 있고, 유망주도 아니니까요."

실제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시합을 나가야하기 때문에 안정된 직장도 다닐 수 없었다. 생계를 위해 아파트 경비 일을 하면서 고된 권투선수생활을 했다.

"딱 10년만 뛰어보자 결심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권투선수생활이지만 그는 즐거웠다. 꿈을 위해 고생하는 것이니만큼 생계수단인 경비 일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현재의 직장인 AIA생명(당시 AIG생명)에 입사하게 된 건 2006년. 늘 웃고 친절하게 인사하는 그를 눈여겨본 아파트 주민이 보험사에 취업할 것을 권했다. "그 아파트 주민이 지금의 제 직장 팀장입니다. 그분만 믿고 일단 시작했죠."

말수도 적고 숫기도 없는 그가 보험 영업을 한다는 것은 사실 또 하나의 모험이었지만, 그는 그의 방식대로 묵묵히 영업 일을 수행하고 있다.

"지금도 누구를 만나서 먼저 보험 가입하라는 말은 못 꺼내요. 그냥 잘 인사드리고 대화를 나누는 식이에요. 그러다보면 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때가 있더라고요." 다소 느리더라도, 꿋꿋이 간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4년간 보험판매 '권투체육관 사장님'으로 변신

거북이의 통쾌한 역전?

요즘 그를 한심하게만 바라보던 세간의 시선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가 '어엿한 사장님'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162m²짜리 권투체육관 '방배ss복싱짐'(http://blog.naver.com/sytel?Redirect=Log&logNo=70074901032)을 냈다. 지난 4년간 AIA생명에 다니면서 알뜰하게 모은 돈이 밑거름이다. "100만원을 벌면 10만원만 쓰고 전부 저축하는 식으로 돈을 모았어요."

과연 권투체육관이 잘 될까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그는 가능성을 믿었다고 했다. 강남의 젊은층을 타깃으로 삼았다.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고집했다.

12월, 창업한지 한달 만에 회원들이 몰려들었다. 겨울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부터, 다이어트를 원하는 20대 젊은 여성들이 속속 체육관을 찾고 있다. 낡고 칙칙한 권투체육관의 이미지를 뒤집은 것이 주효했다.

신 씨는 "11월 첫달만 제외하면 계속 흑자 행진"이라고 귀띔했다. "보험에선 흔히 월(급여) 1000만원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할 때가 많은데 머지않아 체육관의 순수익도 그러한 수준이 가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렇다면 이젠 고생 끝? 직접 운영하는 체육관에서 돈도 벌면서 운동도 할 수 있으니 보험 일은 그만 접어도 되지 않을까. 아침(오전 7시~오후 6시)에는 보험 일을 하고, 퇴근 후 오후 11시까지는 체육관에서 근무하는 몸이 고될 법도 한데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최소한 20년은 더할 생각입니다. 제가 평생 관리하겠다고 약속한 고객들이 있으니까요."

더 나아가 그는 다중생활(?)을 꿈꾸고 있다는 고백도 들려준다. "체육관이 좀 더 자리를 잡으면 다시 경비일도 나가려고 합니다." 고급 아파트 경비로 근무하다보면 그의 네트워크가 더욱 풍부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권투선수로는 내년에 우리나이로 마흔이 돼서 은퇴(?)하기 전에 '챔피언 벨트'를 꼭 한번 차보는 게 소원. 원래 체중은 75kg이지만 경기가 있으면 미들급도 뛰고 라이트급도 뛰고 있다. 시합을 앞두면 무조건 열흘 또는 일주일씩 무조건 굶어서 살을 뺀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경기 성적은 3승7패. 챔피언 목표를 이루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제가 하는 일이 '일관성이 없다' '너무 (결실이) 늦다'고 하지만, 저는 이게 제 길이라고 확신해요. 여러 일을 한다고 해도 '중심'이 있다면 그것을 보고 가면 된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지난 10년, 앞만 보고 달려온 탓에 그 흔한 연애 한번 못해 본 것은 개인적으론 아픔. 그러나 이도 조급해하지 않고 때를 기다릴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이중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마음이 있다면 일단 시작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상황이 갖춰진 다음에 시작하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가는 재미를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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