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 커버]랜드마크 신기루/ 용산개발을 바라보는 전문가 4인의 눈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사업으로 불리는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용산역세권개발(AMC)의 최대 주주였던 삼성물산이 보유지분 45.1%를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에 양도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사업을 주도했던 건설사가 사실상 사업 포기를 선언한 셈이다.
용산역세권사업 무산의 발단은 삼성물산을 포함한 17개 건설컨소시엄이 일방적인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계약 변경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사업부지를 제공한 코레일 측은 이 제안을 거절하면서 갈등은 증폭됐다.

코레일 측은 삼성물산에 공문을 보내 계약서상에 합의한 대로 2차 토지 대금 6437억원을 납입하라고 통보했고, 이에 대해 삼성물산은 6.4%애 불과한 지분을 보유했을 뿐인데 모든 금융부담을 떠안는 것은 모순이라며 재계약을 요구했다.
사업 주체인 드림허브는 최근 이사회를 열고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에서 삼성물산을 제외키로 합의했다. 사업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포기하라는 압력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표면적으로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삼성물산과 코레일의 갈등으로 보이고 있지만만 대규모 공모형 PF사업의 구조적 문제들로 야기된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난항에 빠진 원인과 사업 재개를 위해 풀어야할 문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전문가 4인의 의견을 정리해 봤다.
한국형 PF방식을 찾자

이상영 명지전문대 부동산경영과 교수는 용산 개발의 좌초 위기를 국내 PF사업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단계에 있다는데서 찾는다.
“사상 유래가 없는 규모다보니 생각보다 컨트롤하기 쉽지 않은 프로젝트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 상황입니다. 외국처럼 PF의 역사적 경험이 길지 않고, 참여 주체들이 그런 사업들을 자주 경험해본 것도 아닙니다. 이제 막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죠. 조율에 있어 미숙한 점이 드러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가까운 일본만 보십시오. 사업규모가 크다 하더라도 경험이 오래되다 보니 조율을 통해 사업 진행을 해나가지 않습니까.”
부동산 개발 붐에 휩쓸려 사업을 지나치게 낙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가에 토지를 수용했다는 점이다. 부동산 경기침체를 예견하지 못한 사업주체들이 지금에 와서 사업 진행이 부담스러운 결정으로 돌아온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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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성 평가부터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합니다. PF의 현실 보증 문제라던가, 자금 분담 책임문제 등 원칙적인 부분에서 다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공적기관이 땅만 팔고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용산개발의 해결책은 없을까? 이 교수는 “문제점을 알아도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고개를 젓는다. 사업 변경을 하려고 해도 법적 근거로 인해 변경이 쉽지 않고, 중앙정부나 서울시가 개입한다면 특혜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다.
대신 공모형 PF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역할 구분을 충분히 논의한 후 한국 스타일의 PF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속전속결 식의 전형적인 국내 PF 방식을 피하자는 것이다. 대신 민관 합동의 협의체를 만들고 하나씩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고 봤다. 물론 늘어나는 사업 기간을 충분히 감안한 계획이다.
보험상품 만들어 리스크 분담해야

백성준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재무적 투자자나 사업 시행자, 자치단체의 책임을 강조했다. 우선 금융권의 전향적인 변화다. 당장 사업의 혈액과 같은 돈이 경색된 것이 사업 악화의 원인인데 금융권이 거의 리스크 분담 없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무적 투자자가 단순 대출 장사를 할 것이 아니라 사업의 지분비율을 높여야 합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지분비율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수월한 쪽은 금융권입니다.”
백 교수는 코레일에게도 양보를 주문했다. 국가채무라는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공공 파트너십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주장이다. 서울시의 책임도 언급했다. 이촌동 등 주변지역을 사업지에 포함시킨 의도가 한강 르네상스 추진과 무관치 않아보이는데 이는 결국 사업을 대규모로 키우는 이유가 됐다고 설명했다. 서로간의 양보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정석으로 가야 한다면 계약 파기가 수순이겠죠. 결국 사업성에 맞게 재조정해야 합니다. 시드니의 명물 오페라하우스도 25년이나 걸렸습니다. 처음 예산의 100배가 들었던 사업이죠. 5년 10년만에 도깨비 방망이 두드리듯 뚝딱 만들어지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백 교수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주식 투자해서 손실이 날 수 있는 것처럼 지분 참여로 손실이 날 수 있는 사업임을 강조한다. 다만 공공의 입김이 들어가는 상황이라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봤다. 사업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백 교수는 용산 개발에 있어 금융권의 책임을 강조한 만큼 해법도 결국 금융권에서 풀었다.
“금융 선진화로 가는 것이 정부의 방향이라면 민관 합동의 대규모 공모형 PF사업을 시행사의 지급보증에 의존하기보다 보증상품이나 보험상품을 만들어 리스크를 사전에 분담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어느 한쪽으로 부담이 몰리다보니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거죠.”
시간 외에 기대할 것이 없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사장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의 본질적인 문제를 부동산 가격 침체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대규모 개발 사업은 부동산 지가의 우상향 법칙을 기대하면서 시작되기 때문에 참여자들의 손실회피경향이 크다는 것. 투자자는 적어도 현상유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상호간 신뢰도의 문제도 거론된다.
“본질적으로 민간사업은 사업성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면 더 이상 개발하려고 하지 않는 속성이 있습니다. 용산 개발사업도 마찬가지죠. 투자자들 간의 신뢰가 무너진 이유는 사업성의 믿음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반면 개인 투자자에 대한 시각은 단호하다. 그들은 하우스푸어가 아니라 투기꾼이기 때문에 이들에 초점을 맞춰 용산 문제를 볼 필요는 없다는 것.
“이들은 개발 사업이라는 장사를 하려고 들어간 사람들이고 리스크 관리에 소홀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오죽하면 도박이라고 하겠습니까. 개인 투자자에게 이번 용산개발 파행은 불나방 투자자에게 경종을 울린 사례입니다.”
박 부사장은 삼성이 사업에서 발을 뺀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다. 국내 최대 기업이 사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상당한 리스크가 부각된 사업이라는 해석이다. 결국 새로운 투자자가 참여를 결정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용산 개발이 진행되기 위한 해답은 뭘까?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시간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투자자가 거론되고 있는데 아마도 참여하는 시점은 부동산 경기가 우상향하는 시점이 되겠죠. 시기는 아직 멀었습니다. 우선 거래가 터져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9월 거래량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9월에도 회복세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더블딥 가능성도 있습니다. 용산개발이 무기한 연기될 수 있다는 의미죠.”
민관 합동 사업, 토지비용 낮춰야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이 좌초 위기에 놓인 이유를 사업구조에서 찾는다. 건설사의 연대보증만으로 사업비를 충당하는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부동산경기 침체 원인도 있고,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업 구조에 있습니다. 재무적 투자자(FI)와 건설투자자(CI)간의 연대보증문제가 핵심입니다. 건설사의 보증으로 자금해결을 하려는 그동안의 관행을 이번 기회에 끊고 가야합니다. 금융기관도 사업에 대한 자기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죠. 사업성을 담보로 책임질 부분까지만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높은 토지가격도 문제로 지적한다. 공모자 선정 시 토지비 경감 등이 현실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것.
“최근 부산항만공사가 유찰을 거듭하던 북항 재개발사업의 민간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토지대금을 낮춘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역현안에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민관 합동사업일 수록 토지 경감의 혜택이 필요합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을 비롯해 대부분의 대형 민관합동사업에 대한 조건들도 유연하게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고 10년에 걸친 사업들이다 보니 조정이나 시비가 발생하게 마련이라는 것. 상황이 바뀔 개연성이 높은 만큼 변경 조건도 충분히 검토된 후 사업진행이 이뤄져야한다는 시각이다. 용산개발에 대한 시각은 어떨까?
“입지적으로나 개발압력으로 봤을 때 그만 둘 사업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과 같은 조건에 참여할 건설사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계획 변경이 불가피한데요. 코레일의 상황을 비춰볼 때 그리 유연하게 나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코레일이 공공기관인데다 부채문제를 안고 있는 터라 유연성을 발휘하기가 그만큼 어려워 보인다는 해석이다. 김 연구위원은 서로의 리스크가 존재하는 만큼 변경 조건에 대한 충분한 토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책임질 부분은 책임지고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재연되지 않도록 정리기구 등을 만들어 공론화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