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문제인데 자꾸 건드릴 필요 있나요"
지난해 4월 경만호 대한의사협회장이 가짜 연구자를 내세워 연구용역비 1억원을 따낸 뒤 개인통장에 입금한 사실이 내부감사를 통해 알려지자 보건복지부 당국자가 한 말이다. 복지부는 의협의 사단법인을 인가해 준 기관으로 조직이 잘 운영되는지 정기적으로 감사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문제가 불거지기 한달전 진행한 정기감사에서 이같은 문제를 발견조차 하지 못했고, 억대 횡령의혹이 제기된 후에도 '내부문제'로 치부하고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10개월 후 검찰은 의협을 눈감아주지 않았다. 감사의무를 저버린 복지부를 대신해 의사회원 300여명이 경 회장을 고발하자 검찰은 1억원 횡령의혹 이외에도 3억원에 달하는 공금을 임의로 지출한 혐의 등을 포착해 최근 경 회장을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이 혐의를 입증할 만한 단서를 잡고 법정에서 죄가 있는지를 묻기로 했다는 뜻이다.
유죄 여부는 법원이 최종 판단하겠지만, 검찰도 혐의를 입증할만한 증거를 확보하지 않는 한 기소하지 않는다는 점에 비춰볼 때 경 회장의 '횡령' 의혹이 적어도 단순한 '의혹'에 그치거나 '내부문제'로 치부할 만한 간단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복지부는 매년 의협으로부터 세입세출예산과 사업계획 등을 보고받으며, 3년마다 직접 찾아가 승인해 준 정관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정기감사를 벌이는 감독관청이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장관 지시를 얻어 정기감사와 관계없이 특별감사를 진행할 권한도 갖고 있다.
이처럼 까다롭게 관리하는 이유는 의협이 친목모임이 아니라 9만여 의사들을 대표하는 법정단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협은 복지부를 대신해 전문의 자격시험을 주관하고, 의료광고 심의업무 등을 수행한다. 협회 내부에 자체감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부가 최종 감사권한을 갖는 이유다.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복지부 당국자는 "제보가 있지 않고서야 정기감사를 통해 새로운 문제를 발견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기감사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시인한 셈이다.
역량이 부족하다면 외부 전문기관에 맡기는 방식으로라도 인가해준 법인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번 검찰의 의협회장에 대한 기소와 향후 진행될 재판은 의협 내 횡령만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부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한 '공무수행'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했느냐를 심판받는 자리도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