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디폴트위기 파장] 베이너 하원의장, 공화당내 강경파 '쿠데타' 직면
미국의 채무한도 협상 마감시한이 6일 앞으로 다가오며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정치권의 채무한도 협상은 현재 교착상태. 이런 상황을 보며 드는 가장 큰 의문은 2가지일 것이다.
첫째는 미국의 운명이 디폴트 위기 앞에 풍전등화의 신세인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무얼 하고 있나 라는 것이고 둘째는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왜 저렇게 고집을 피우며 민주당과 타협하지 않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주도권 잃은 오바마, 지켜볼 밖에...

우선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부터 살펴보자.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5일 채무한도 협상과 관련한 대국민 연설이 사실상 마지막 사태 해결 노력이었다. 현재로선 오바마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채무한도 조정은 법률 개정 사항이다. 결국 의회에서 합의해 법률 개정안을 만들어 통과 여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지난 7일부터 지난 23일까지 2주일 이상 베이너 하원의장을 비롯한 공화당 지도부와 백악관에서 연쇄 협상을 가지며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셈이다.
하지만 결국 지난주말 백악관에서 열린 베이너 하원의장과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채무한도 상향을 위한 협상의 주도권은 완전히 오바마 대통령의 손을 떠나 의회로 넘어갔다.
오바마 대통령과 베이너 하원의장은 올 초여름 함께 골프 회동을 가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우의가 다져져왔든 지난주말 협상 결렬로 관계는 상당히 훼손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베이너 의장과 협상이 타결됐다고 생각한 순간 두 번이나 베이너 의장이 자리를 떠 홀로 남겨지는 신세가 됐다며 공화당과 협상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뜻을 표현했다.
◆정치 생명 건 베이너,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이제 공화당 지도자 베이너 하원의장의 입장을 돌아보자.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그를 '꼴통'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미국의 채무한도 상향 협상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에 전혀 타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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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기업적인 성향으로 다소 보수적인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채무한도 증액안과 관련, 오바마 대통령안이 공화당안보다 10%포인트 가량 더 많은 지지를 얻었다.

그럼에도 왜 베이너 의장은 꿋꿋하게 독자적인 채무한도 증액안을 만들어 하원 표결을 강행하려는 걸까.
일단 알아둬야 할 사실은 베이너 의장이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보수적인 시민운동 모임인 티파티의 적극적인 지지에 힘입어 하원의장에 올랐다는 점과 그가 공화당 하원의원들 사이에서는 그나마 합리적인 편에 속한다는 점이다.
사실 베이너 의장은 지금 자신의 정치 생명이 걸린 도박을 하고 있다. 그는 하원의장이다. 공화당을 대표해 채무한도를 높여 미국의 디폴트를 피해야할 책임이 있다. 만약 8월2일까지 채무한도를 올리지 못해 미국이 디폴트된다면 아마도 가장 큰 비난을 받을 사람도 베이너 의장일 것이다.
◆공화당 강경파, 베이너 방안에도 반대
하지만 베이너의 또 다른 고민은 자신이 민주당과 합의해 채무한도 증액안을 만든다 해도 이 안이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하원에서 전혀 통과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상당수 티파티 지지자들과 강경파 공화당 의원들은 왜 또 다시 미국 연방정부의 빚을 늘려 재정을 쓰게 해줘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채무한도를 늘린다는 것은 연방정부가 돈을 더 빌릴 수 있도록 만들어 돈을 더 쓸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인데 이들은 이러한 발상 자체에 반대한다. 쓸 돈이 없으면 빚을 얻지 말고 지출을 줄여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들은 지금도 연방정부가 너무 크다며 정부 기능을 줄이고 지출을 대폭 삭감해 정부 부채를 대대적으로 축소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빚이 결국 미국을 몰락의 길로 몰아넣을 것이란 점이 이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이들은 베이너 의장이 마련한 재정적자 감축 및 채무한도 상향 법안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재정지출 감축 규모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베이너 의장은 밖으로는 오바마 대통령 및 민주당과 대치하는 동시에 안으로는 같은당내 강경파 의원들의 비난에 직면해 있다. 사실 베이너안은 28일 하원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지만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의 반대로 하원 통과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친위 쿠데타에 몰린 베이너, 진퇴양난
공화당 하원의원들과 티파티 지지자들 사이에선 베이너 의장이 자신들이 원하고 기대했던 바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한다며 하원의장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베이너 의장으로서는 공화당내 쿠데타 위기까지 몰린 셈이다.
이날 미 의회 의사당인 캐피털 힐에 몰려간 40여명의 티파티 지지자들 가운데 한명으로 퇴직 공무원인 데일 취사노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베이너는 하원의장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며 "그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달성하지 못했으며 무능력하다"고 비판했다.
오죽했으면 에릭 캔터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가 "공화당원들이 다른 공화당원들을 비난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는데 질려 버렸다"며 베이너 하원의장을 공격하는 동료 의원들에게 신물이 난다는 뜻을 표현했을까.
베이너 하원의장은 미국 의회 지도자의 위치에서 공화당 강경파와 티파티의 주장에 끌려 다니며 민주당과 타협을 거부할 수도 없다. 이런 안팎의 압박에서 베이너 하원의장의 고육지책이 28일 하원에 상정할 독자적인 채무한도 증액안이다.
◆베이너안 28일 하원 통과하면 그 다음은?
베이너 의장은 의회예산국(CBO)이 자신의 채무한도 증액안에 대해 기대보다 재정지출 감축 규모가 적을 것이라고 지적하자 향후 10년간 재정지출 감축 규모를 650억달러 늘렸다. 당초 향후 10년간 1조2000억달러의 재정지출을 줄이는 계획에 대해 CBO가 실제 감축액은 8500억달러뿐이라고 분석하자 일부 내용을 수정해 재정지출 감축액을 9170억달러로 새로 제시한 것이다.
베이너안은 채무한도를 재정지출 감축 규모와 같은 9000억달러 올린 뒤 내년 초에 의회에서 1조8000억달러의 추가 재정지출 감축에 합의하면 채무한도를 다시 1조6000억달러 추가 상향하는 내용이다.
일단 베이너 의장은 공화당 강경파를 설득해 28일 이 방안을 하원 표결에 부친다. 이 방안이 하원을 통과하면 상원에서는 의무적으로 이를 검토해야 한다.

베이너안이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원에서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 이 경우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마련한 별도 채무한도 증액안이 상원에서 새롭게 논의되거나 베이너안에 대한 수정이 가해진다. 리드안은 채무한도를 한번에 2조7000억달러로 올리고 같은 규모로 재정지출을 감축하는 내용이다.
◆베이너안 부결되길 기다리며 기회 엿보는 리드
어쨌든 리드 원내대표는 베이너안이 하원 표결에서 아예 좌절되든 상원에서 통과가 안 되든, 베이너안이 실패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야 자신이 제안한 방안에 대해 상원 논의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방안이 아니더라도 베이너안이 상원을 통과하지 못하면 베이너안에 자신의 안을 대폭 포함시켜 수정하는 쪽으로 상원 논의를 진행시킬 수 있다.
결국 미국의 채무한도 협상은 베이너안의 하원 표결이 끝난 이후에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된다. 만약 베이너안 뿐만 아니라 리드안 또는 베이너안의 수정안 중 어떤 것도 상원에서 60명 이상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8월2일까지 채무한도를 높이기 위한 초당적 협의가 다시 시도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면 일단 며칠간이라도 연방정부가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채무한도를 소폭 올린 뒤 협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