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환란이 낳은 '백수 세대' 이젠 경제위기로 취업빙하기
# 이모씨(40)는 외환위기(IMF구제금융체제) 15주년이라는 소식에 감회가 남달랐다.
서울소재 사립대 91학번인 이씨는 재학중 '세계화 바람'에 편승해 캐나다 어학연수까지 다녀왔다. 하지만 대학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97년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백수가 됐다. 그 해 여름부터 채용 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지만 '설마' 졸업 후 집에서 놀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전까지 '학생운동'을 열심히 하던 선배들이나 조기 졸업 동기들은 대기업에 버젓이 취업해 학교를 자랑스럽게 드나들던 모습을 봐 왔던 터. 그러나 처음 듣는 IMF니 구제금융이니 하는 단어가 절망으로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씨는 98년 졸업 후 3개월을 허송세월하다 7급 공무원 시험으로 가닥을 잡았다. 공무원 시장도 언제 뽑을지 모르는 형편이지만 '노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 때문. 그는 백수로 1년 넘게 세월을 보내다 99년 5월 공무원 수험생활을 접고 출판관련 기업에 입사했다. 대학 동기 일부는 여전히 외환위기 후유증으로 마흔이 넘어서까지 직장생활을 해 보지도 중년을 맞았다.

#본격적인 하반기 채용 열기도 한 풀 꺾인 지난 19일. 고려대학교 경력개발센터의 문을 열고 나오는 이모씨(고려대 01학번)은 "하반기 채용이 끝나가는 단계인데 아직 한 군데도 합격한 곳이 없어서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사회학과에 재학중인 조모씨(고려대 05학번)는 "워낙 취업이 힘들다보니 채용 공고가 나오면 무조건 다 쓰고 봤다"며 "80군데 이상 업종과 기업을 따지지 않고 다 썼다"고 말했다. 80여군데 원서를 썼지만 조씨가 합격한 기업은 단 한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업종.
조씨는 자신의 고민이 '배부른 고민'이라는 생각도 든다. 취업 스터디를 하고 있는 '고대 친구' 8명 중 4명만이 겨우 취업이 결정됐다. 4명은 취업 미확정 상태. 경영학과와 영문학과를 비롯해 '빵빵한' 스펙이지만 한 군데도 합격한 곳이 없어 내년을 기약하고 있다. 취업준비생 모두 '심각하다'는 반응이다.
한국사회를 뒤흔들어 놓은 외환위기가 15년이 지났지만 '데자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취업시장은 '제 1 IMF세대'가 고통을 겪은 당시에 버금가는 한파가 불어닥치고 있다. 상당수 기업들은 내년 경영환경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고 투자 축소를 계획하고 있어 채용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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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그룹은 대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올해 신입사원 모집에서 빠져나가는 인원을 고려해 예비합격자를 선정하던 제도를 없앴다. 하반기 공채로 500명을 선발할 예정이지만 중복합격으로 빠져나가는 인원에 대해서는 후순위 합격자를 뽑는 대신 내년에 보충하는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다른 대기업들도 2013년 채용을 최대한 줄여 잡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제2 IMF세대'는 발버둥을 치지만 탈출구가 없는 상태.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당시에 비해 오히려 '제2 IMF세대'가 겪을 구직 고통이 더 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산업구조조정과 저성장 등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든 데다 재정위기 등으로 향후 3~4년간 세계경제 성장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고용에 대한 특단의 사회적 합의와 조치가 없으면 '제 3 IMF세대'와 '제 4 IMF세대'의 발생은 필연적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88만원 세대'를 공저한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는 "지금 대한민국은 공평하게 취업이 되지 않는 사회"라며 "한·중·일 3국이 산업화 이후 새로운 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어 일자리 공포가 구조적으로 쉽게 사라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경기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일자리 공포는 지속적인문제"라며 "그동안 사회와 기업 정치권 등 전반적으로 고용 자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금까지 시간이 흘러 이제는 되돌리기 힘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경제도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성장 잠재력은 추락하고 있다. 1990년 6%대였던 잠재성장률은 2000년 이후 4%대, 2010년 이후로는 3%대로 하락했다. 해마다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4%대 성장이 요구되지만 3%대 성장률도 낙관하기 힘든 처지가 됐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일자리 시장에서 보이는 경향은 장기적으로 보면 세대로 전해져 속칭 '제3, 제4의 IMF세대발생'이라는 악화가 불가피하다"며 "여기에 경기가 좋지 않아 발생하는 일시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경제전반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강 연구원은 "청년 취업 문제는 경험을 쌓고 생산력을 키워야 하는 시기에 실업상태로 있으면 생산성을 높일 기회를 잃게 된다"며 "이런 현상이 이어지면 숙련 노동자의 은퇴 시 자리를 대체할 만한 생산력을 갖고 있지 못하게 돼 전반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저하시키게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