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故 배상면 국순당 창업주 60년 외길인생

"누룩연구와 술 빚는 일은 내 일생의 즐거움이다. 나는 이 길에서 고뇌하고 방황했으며 인생의 가르침을 얻었다."
지난 7일 89세의 일기로 타계한 고 배상면 국순당 창업주가 남긴 자서전 <도전없는 삶은 향기없는 술이다>에 실린 글의 일부다. 60년 전통주 외길인생을 사는 동안 전통주와 누룩에 대한 고인의 사랑이 듬뿍 담겨 있다.
고인은 '누룩 대가', '누룩 박사'등의 칭호를 받지만 전통주에 뛰어들게 된 건 우연이었다. 경북대학교 화학과에 재학하던 시절, 양조장을 운영하던 삼촌이 관련된 질문을 하자 체면상 대답을 하기 위해 양조공부를 시작한 게 계기가 돼 60년 세월이 흐른 것이다.
◆ 전통주 향한 60년 외길 인생
고 배상면 창업주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진 우리나라 전통주시장을 개척하고 거대 주류회사들 틈에서 '백세주 신화'를 이뤄냈다.
1924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0년 경북대 농예화학과를 졸업하고 통역장교로 복무했다. 대학 재학시절, 미생물연구반을 조직하면서부터 누룩연구에 몰두했다.
1952년 대구에 기린 주조장을 경영하며 기린소주를 개발해 대성공을 거두고 1955년 '이화'(梨花)라는 약주를 생산했다. 1960년에는 쌀을 원료로 한 '기린소주'를 만들었다. 1960~70년대만 해도 전통주제조에 각종 규제가 많았다. 고인은 "옛날에는 600종에 이를 만큼 술이 다양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며 늘 안타까워했다.
◆ 필생의 역작 백세주
고 배상면 창업주는 척박한 전통주 복원사업을 위해 후학 양성에도 매진했다. 2009년에는 78억원어치의 주식을 전량처분하고 양조학교 설립에 투자하는 등 전통주시장 활성화에 열정을 바쳤다. 배 회장은 노환으로 병석에 눕기 전까지 9시 출근, 6시 퇴근을 지켜가며 주류연구소에서 술 빚는 연구에 매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60년 외길 인생은 후세에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백세주는 필생의 역작이다. 나는 이 술을 만드느라 숱한 날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연구에서 연구로 이어진 날들 동안 누룩이 술이 되고 술이 인생이 됐다. 백세주를 통해 성취의 기쁨도 맛보았다. 경이적인 매출 기록으로 성공의 문턱에도 가 보았다."
고인의 자서전에 나오는 대목이다. 백세주가 세상에 나온 건 1991년. 이미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뤄낸 업적이다. 백세주 이후 배한산업이라는 상호명은 현재의 국순당으로 교체된다. 장남 배중호 대표에게 대표직을 맡긴 것도 이때부터다. 백세주의 히트는 국순당을 한걸음 더 도약하게 만들었다. 매출액 20억원에 불과하던 회사가 2012년에는 115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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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백세주 신화'를 이룬 것이다. 이때부터 백세주는 맥주·소주로 대별되던 대중주시장에 전통주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백세주 연구를 향한 고인의 열정은 젊은이 못지 않았다. 부족한 실험도구를 손수 만들어 쓰는가 하면, 누룩이 발효되는 최적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연구를 계속하기도 했다.
배 창업주는 2000년 경영일선에서 손을 뗐지만 오히려 전통주 연구는 심화됐다. 전통주연구소, 배상면 주류연구소 등을 설립하고 병상에 눕기 전까지 매일 아침 9시 출근, 6시 퇴근을 지켜 연구에 매진했다.

◆ 아버지 가업 잇는 3남매
고 배상면 창업주의 세 자녀는 모두 전통주 업체를 일군 것으로 유명하다. 장남인 배중호 국순당 대표를 비롯해 장녀인 배혜정 배혜정도가 대표, 차남인 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까지 세 자녀가 모두 개성있는 전통주를 제조하며 일가를 이뤘다.
자녀 모두가 전통주업체에 몸담게 된 건 생전 고인의 바람이 컸다. 배 창업주는 자신의 자녀가 모두 전통주사업에 뛰어든 것에 대해 생전 '든든한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고인은 자서전을 통해 "두 형제는 때로는 경쟁하면서, 때로는 서로를 격려하고 고무하면서 성장 발전하고 있다. 여기에 나의 딸이 운영하는 배혜정누룩도가의 건강기능성 고급탁주 '부자'가 가세해 또 하나의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며 "나의 두 아들과 딸이 우리 민족주 개발에 진력하는 모습을 보니 든든한 마음이다"고 밝혔다.
장남인 배중호 대표는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무역업체인 롯데상사에 입사했다가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배한산업(현 국순당)에 돌아와야 했다. 배 대표는 당시 누룩제조 연구원으로 입사해 아버지를 도와 백세주 연구에 매달렸다. 배 대표는 백세주를 비롯해 생막걸리 등을 히트시키며 국순당을 궤도에 올려놓았다.
차남 배영호 대표는 형 배중호 대표와 함께 국순당에 몸 담았다가 1996년 배상면주가로 독립했다. 배영호 대표는 형과 마케팅 방향에 이견이 있다며 다른 길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상면주가는 백세주를 잇는 '산사춘'과 '대포'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형의 아성을 위협할 만한 경지에 오르기도 했다.
장녀인 배혜정 사장은 가장 늦게 전통주사업에 뛰어든 케이스.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던 배 사장은 마흔의 나이에 아버지의 조언으로 전통탁주사업을 시작했다. 배상면 회장은 평소 "나 죽으면 탁주를 누가 책임지려나"라고 말해왔고 외동딸인 배 사장이 고인의 뜻을 받들었다. 2000년 배혜정도가를 연 배 사장은 '부자', '새색시', '우곡주' 등 고급 전통탁주를 잇따라 시장에 내놓았다.
하지만 고인은 자녀 모두가 가업을 잇게 하면서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평했다. 아직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명주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코냑, 중국의 마오타이, 일본의 청주처럼 외국인에게 '이것이 우리의 술'이라고 내세울게 없다며 아쉬워했다. 전통주에 대한 애정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