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집세" 끝까지 사과만…70만원 두고 떠난 세 모녀[뉴스속오늘]

"마지막 집세" 끝까지 사과만…70만원 두고 떠난 세 모녀[뉴스속오늘]

이은 기자
2026.02.26 06:00
2014년 2월26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 살던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머니투데이 DB
2014년 2월26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 살던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머니투데이 DB

2014년 2월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3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숨진 이들은 60대 여성 1명과 30대 여성 2명으로 확인 결과 이들은 모녀지간이었다. 세 모녀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지만 이런 가운데에도 집주인에게 월세 등 공과금을 남기는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더 했다. 이들 죽음은 복지 개선 등으로 이어졌지만 비슷한 사례는 계속 나왔다.

70만원 담긴 봉투에 남긴 마지막 말…"죄송합니다"

모녀들이 발견됐을 당시 집안 창문과 문 틈새는 연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청테이프로 밀봉돼 있었고 출입문은 침대로 가로막혀있었다. 바닥에 놓인 은색 냄비에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밖에 집 안은 비교적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번개탄을 피운 냄비 옆에선 유서가 발견됐다.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글이 적힌 봉투에는 70만원이 담겨있었다.

당시 집주인 임모씨(당시 73세)는 "일주일째 집안에서 인기척 없이 TV 소리가 이어져 빈집에 불이 날까 봐 걱정돼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숨진 60대 여성 박모씨는 남편이 2002년 방광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한 놀이동산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책임져 왔다. 그는 두 딸과 함께 작은 방 2개와 화장실, 부엌으로 이뤄진 33㎡ 남짓한 공간에서 지내며 구형 폴더 휴대전화 1대를 함께 사용할 만큼 생활고에 시달렸다.

큰딸은 1.5형 당뇨와 고혈압을 앓았으나 병원비가 비싸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고 작은딸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보탰지만 생활비와 병원비로 사용한 신용카드 대금을 갚지 못해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고 말았다.

알뜰히 살았지만 잇따른 악재…지원 못 받은 이유는
송파 세 모녀 집에서 발견된 가계부. /사진=MBC '리얼스토리 눈' 방송 화면
송파 세 모녀 집에서 발견된 가계부. /사진=MBC '리얼스토리 눈' 방송 화면

어려운 환경에도 박씨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8만원인 집에 9년간 살면서 월세와 전기 요금 12만원, 건강보험료 4만9000원가량을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납부했다.

생전 세 모녀가 작성한 가계부에는 깻잎 500원, 요구르트 990원, 음식물 쓰레기 스티커 1300원, 싱크대 마개 2000원 등 소소한 구입 내역을 10원 단위까지 적으며 알뜰하게 산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박씨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애썼지만 사건 한 달 전 집주인이 월세를 50만원으로 인상한 데다 빙판길에 미끄러져 팔을 크게 다치면서 결국 식당 일을 그만두게 됐다.

세 모녀는 악재가 겹치면서 생계가 막막해지자 죽음을 결심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데 쓴 돈은 2720원이었고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을 두고 떠났다.

박씨 가족은 복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들은 2011년 관공서에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으나, 대상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재신청을 하지 않고 생활해 왔다.

박씨가 다친 뒤 세 모녀 가운데 실질적으로 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작은 딸뿐이었지만, 큰딸의 당뇨와 고혈압은 근로 능력 부족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에 근로 가능 인원이 2명으로 간주하면서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이다.

당시 정부에선 취약계층을 발굴해 지원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었지만 박씨 가족은 세상에 빚을 지기 싫다며 공과금을 줄곧 내왔기에 관할 구청이 이들 어려움을 인지하지 못했다. 사회안전망과 행정적 배려가 더 촘촘했다면 이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위기가구 발굴 나섰지만…비극 계속
송파 세 모녀의 집에서 발견된 마트 영수증. 큰딸이 마트에서 번개탄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SBS '궁금한 이야기 Y' 방송 화면
송파 세 모녀의 집에서 발견된 마트 영수증. 큰딸이 마트에서 번개탄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SBS '궁금한 이야기 Y' 방송 화면

이 사건 이후 어려운 이웃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한다는 '발굴' 중심의 복지 기조가 강화됐다. 정부는 기초생활 보장제도 등 복지 제도 개선에 나섰고, '송파 세 모녀 법'이라는 이름으로 기초생활 보장법과 긴급복지지원법이 개정되고, 사회보장급여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가난으로 인한 비극적인 죽음은 이어졌다.

2022년 8월 경기도 수원 권선구의 한 연립주택에서 60대 여성과 40대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는 "건강 문제와 생활고 등으로 세상 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가 나왔다. 어머니는 암 투병 중이었고, 두 딸은 희소병 투병 중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다 생을 달리했다. 세 모녀는 채권자를 피해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각종 복지 안내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23년 2월에는 경기 성남시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모녀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들은 유서를 통해 "장사하면서 빚이 많아졌다", "폐를 끼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보증금 500만원으로 (남은) 월세를 처리해 달라" 등의 말을 남겼다. 모녀는 빚에 시달리면서도 10년 넘게 산 집 월세 50만원과 공과금은 밀리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모녀는 소득이 있어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차상위계층이었고, 공과금도 밀리지 않아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위기가구 발굴은 대폭 확대됐지만, 빈곤으로 인한 비극을 멈추기 위해서는 단순한 발굴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실질적인 사회보장 테두리 안에서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09 또는 자살 예방 SNS(소셜미디어) 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에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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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 기자

패션·뷰티·라이프스타일·연예 분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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