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제재기간 이란 지킨 韓기업에 "中·日 보다 낫다" 한목소리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테헤란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항공편은 자정이 막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거의 만석이었다.
지난 1월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금융제재가 해제된 이후 주요국의 ‘이란 러쉬’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승객들의 국적은 다양했다. 경제사절단에 포함된 한국 기업 관계자들은 물론 중국과 유럽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항공기 통로를 두고 나란히 앉은 무함마드(57)씨는 기자를 보자 “중국에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답하자 무함마드씨는 “한국 사람은 오랜만에 본다”며 “최근 테헤란을 찾은 아시아계는 대부분 중국인이고 간혹 일본인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란 대형건설업체에서 구매업무를 총괄한다는 그는 테헤란으로 이동하는 내내 한국의 건설 기자재 업체에 대한 정보를 물었다.
2시간여를 날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도착해 시내의 숙소로 이동했다. 매캐한 매연 냄새가 차 안까지 파고 들어 왔는데 인상을 찌푸리며 연거푸 기침을 하자 운전기사는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석유제품 품질이 좋지 못한 데다 테헤란에 낡은 차가 많아 배출가스로 인한 공기가 나쁘다”고 말했다. 숙소는 테헤란 북부에 위치한 페르시안아자디호텔. 테헤란 시내에 위치한 유일한 특급호텔이다. 호텔 체크인을 맡은 직원은 “이란에 사업을 하러 왔냐”며 “(핵협상이 타결되던)지난해 말부터 예약이 꽉 차 있다”며 “방을 얻은 것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여장을 풀고 테헤란의 대표적인 부촌인 벨렌자키로 갔다. 시내를 달리는 동안 골조만 마친 앙상한 건물들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제재 여파로 공사가 중단된 건물들이 테헤란에만 짓다가 수백개가 방치돼 있는데서 제재기간 동안 사실상 경제는 마비상태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벨렌자키는 한국으로 치면 청담동과 같은 곳으로 한가운데 자리 잡은 팔라디움몰은 각종 명품 브랜드가 몰려 있는 이란에서 가장 호화로운 쇼핑몰로 꼽힌다. 팔라디움몰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매장이 텅 비어 있었지만 유럽계 명품브랜드의 입점이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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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매장을 운영하는 오미트(29)씨는 “아직은 (제재 해제로 인한) 큰 변화를 체험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제재 해제 이후 기대감이 높아졌는데 장기적으로는 나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가전매장이 밀집한 좀후리의 ‘철수쇼핑몰’로 갔더니 쇼핑몰 1층의 ‘명당’에는 삼성전자의 직영 휴대폰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10여명의 직원이 분주히 오가며 고객들을 맞아 최신 삼성 제품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었다.
매니저인 아하 마디(31)씨는 “삼성 휴대폰은 이란에서 75%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며 “예전에는 구경만 하고 가는 손님이 다수였는데 지금은 제품을 사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옆에 있는 삼성가전 제품매장에서는 수천달러에 달하는 TV가 배달을 위해 잇따라 차에 실리고 있었다.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테헤란무역관 직원인 후리 타바콜리씨(여·28)는 “쇼핑몰에 예전에 없었던 새로운 브랜드가 요즘 속속 들어오고 있다”며 “토요타의 전기차도 시판되고 거리에서 외국인의 모습도 부쩍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쇼핑객을 붙잡고 삼성전자, LG전자, 현대·기아차 등 한국제품에 대해 물으니 대다수가 “정말 좋은 제품”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이란의 ‘국민드라마’로 불렸던 대장금을 비롯한 한류 덕분인지 한국에 대한 인식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작년 핵협상 타결을 기점으로 유럽계 기업들이 몰려 들면서 우리 제품의 매출이 줄고 점유율도 낮아지고 있다.
이란가스공사의 하미드 나자피 구매총괄은 “중국은 품질에 문제가 있고, 일본은 제재 기간 교역을 완전히 중단한 경험이 있어 한국 기업과 제품에 대한 이미지가 가장 좋다”면서도“ 하지만 유럽 국가들이 투자를 늘리면서 상황이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한국기업은 유럽기업들과 경쟁하는 구도가 고착화될 것”이라며 “경쟁에서 이기려면 한국기업들이 더 빠른 서비스와 더 높은 가격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란 정부에서 투자를 동반하지 않은 단순 소비재 판매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우리 기업들의 이란 진출에 걸림돌이다. 이란 정부는 다른 국가가 이란에서 상품 전시회 같은 판촉전을 하는 것은 허가하지 않기로 내부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투자와 합작 없이 단순히 물건만 파는 것에 이란 정부가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우리 정부도 이런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며 “멀리 내다 보고 동반자적 경제협력의 기반을 다지면서 우리 기업들이 이란 시장에 보다 원활히 진출할 수 있도록 이란 정부와 함께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