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하고 싶어서 한 것보다는 하기 싫어도 한 게 많았죠.”
타고나길 노래를 잘하던 ‘한 여자’는 꽤 오랜 기간 스스로를 위해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잘 하면 더 잘하라고 혼이 났고, 못하면 왜 못하냐고 구박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의 노래에 열광했지만 정작 자신이 부를 음악을 “고를 권리나 거부할 권리” 자체도 없었다. 25년 전 백지영에게 음악은 “뭔지도 모르”지만 잘하는 것이었고, 오늘날 백지영에게 음악은 “진심을 다해 부르지 않으면 창피한” 사력의 행위다.
백지영이 오늘날까지 노래하게 된 것은 자신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어느 순간 마음에 스며든 음악에 대한 사랑이었다. 백지영이 애달프게 노래하던 ‘사랑 안해’는 사실 ‘격렬하게 사랑한다’는 반어법으로 쓰인 노래고, 노래에 담긴 정서처럼 그에게 노래는 미워도 했지만 결국 사랑할 수밖에 없던 존재였다. 때문에 자신이 가수 데뷔 25주년을 맞은 것에 “숫자 자체는 알겠는데 의미가 뭔지는 실감이 나지 않는” 그저 삶에 굳어버린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 버렸다.
때문에 최근 새롭게 꺼내든 새 음반은 25주년을 특별히 기념한다거나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 냈다기보다는, 늘 그래왔듯이 자연스럽게 노래했고 누군가가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앨범이다. 원래 정규로 제작하려고 했던 이번 앨범에는 수록하려 했던 댄스곡을 빼면서 미니 형태로 내게 됐다. 나름 25주년이기에 “으리으리한 앨범을 내”보자는 마음도 먹었던 그지만, 과감하게 트랙을 축소하고 톤을 정돈했다.

“올해 중반쯤 ‘오디너리 그레이스(Ordinary Grace)’ 송캠프를 진행했어요. 그때 타이틀 곡 ‘그래 맞아’를 처음 들었죠. 듣자마자 정말 강하게 하고 싶었어요. 선곡을 실수하기 싫어서 다시 들었어요. 다시 들어도 좋았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이때 이미 가사까지 완벽하게 나온 상태였어요. ‘이윽고’라는 마지막 가사에 꽂혀서 ‘꼭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녹음하면서 정리를 해나가니까 훨씬 더 훌륭한 곡이 됐어요. 이번 앨범은 수록곡들도 정말 다 좋아요. 원래 정규로 나올 예정이었거든요. 으리으리한 앨범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웃음). 모든 가수가 앨범을 낼 때마다 ‘새롭습니다’라고 하지만 정말 새로워요.”
백지영이 꽂혔던 “이윽고”라는 단어 뒤로 “더는 바라지 말기로 해”라는 가사가 뒤따르는 것은, 그리고 “더는 아프지 않기로 해”와 같은 말이 보태지는 것은 ‘그래 맞아’에 매료됐던 그의 순간을 헤아리게 한다. “더는 바라지 말기로 해”라는 가사처럼 더는 바랄 것 없이 완벽한 가창과 감성으로 한 글자씩, 한 음정씩 떠낸 백지영이 25년 동안 어떻게 노래할 수 있었는지를 깨닫게도 한다.
“저는 사실 25년 전에 가지고 있던 뭔가를 지키려고 한 건 별로 없어요. 대신 변한 건 엄청 많아요. 그때의 저는 음악에 대한 이해도도 굉장히 낮았거든요. 당시 시스템상 제가 부를 노래를 고르거나 거부할 권리 자체도 없었어요. 스케줄도 그랬고요. 실은 하고 싶어서 한 것보다는 하기 싫어도 한 게 많았죠. 그때는 피곤하고 불만스러운 게 많았어요.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활동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 경험들이 앞으로 30주년, 그리고 그 이상 동안 노래할 수 있도록 신체적, 정신적 체력을 길러주고 동력이 되어 줬죠. 그때와 변하지 않은 건 노래를 대하는 마음이에요. 어쩌다 보니 가수가 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노래를 대하는 마음은 늘 신기했고 정성스럽고 벅찼거든요. 그건 지금도 그래요.”

25년을 노래하며 백지영은 ‘선택’, ‘새드 살사(Sad Salsa)’, ‘사랑 안해’, ‘총 맞은 것처럼’, ‘내 귀에 캔디’ 등의 수많은 히트곡을 내놨고, 그중에서도 발라드에 특히 강한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목소리는 동요를 불러도 슬프게 들리고, 이는 타고났다고밖에 할 수없는 그의 영역이다. 때때로 이것이 그의 음악을 틀에 가두는 느낌이 들어 “거슬리는 순간”도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장점”으로 여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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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불러도 슬프게 들리고 비슷하게 들리는 제 목소리를 고민한 시기는 있었어요. 제 얼굴을 보고 저라는 걸 알아채시는 분들보다 제 목소리를 듣고 알아채시는 분들이 적지 않았거든요. 처음에는 이 목소리가 굉장히 좋은 장점으로 작용했지만 호흡이나 발성을 바꾸지 않고서야 뭘 해도 변화를 알아채 주지 못하시더라고요. 좋은 발라드인데도 언젠가부터 듣는 걸 지쳐한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그걸 바꾸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어요. 자연스럽지 않았거든요. 제가 가지고 있는 색깔이 오래갈수록 익숙함을 넘어서 스며들 날이 올 거로 생각했어요. 조급하지 않게 기다려보고 있어요.”
백지영은 어느 날 TV를 보다가 이미자의 50주년 빅쇼를 보게 됐다. 이미자의 모습을 지켜보며 “대단하다”는 마음을 먹었고, 어느 순간부터 이미자의 모습이 계속 떠오르며 자신도 “저 나이까지 노래하고 싶다”는 각오가 생겼다.
“이미자 선생님의 빅쇼를 보면서 ‘나도 저 나이에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그러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25년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잘 모르겠어요. 바쁘게 많은 일들이 한 것 같긴 해요. 만약 50주년을 맞게 된다면 정말 영광일 것 같아요. 사실 직업 가수다 보니까 어떤 상황에서 노래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있었거든요. 지금은 자다가 막 일어나서 정신 차리지 못했을 때도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많아요. 그런데 무대에 집중이 떨어지면 죄책감이 있어요. 어느덧 일반인으로 산 것보다 연예인이 산 세월이 더 길어졌어요. 세월을 통해 얻은 큰 교훈은 거짓말은 언젠가 들통난다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들키는 순간 창피하다는 거요. 그러니 노래에도 거짓이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