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속 화사한 얼굴을 보며 CG 효과를 꽤 주지 않았을까 했는데, 실제로 마주하니 그것은 CG가 아니었다. 뚜벅뚜벅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부터가 마치 드라마 한 장면 같았다. 마흔을 넘긴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비주얼은 왜 그가 ‘요아정’(요즘 아저씨의 정석)으로 불리는지를 알게 했다. 애초 유치원생 딸을 둔 아빠가 이토록 안방극장에 진한 설렘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건, 실제에서도 판타지 같은 비주얼의 이준혁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당사자는 “노안으로 유명했다”라며 매우 수줍어했다.
이준혁은 지난 14일 인기리에 종영한 SBS 금토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에서 얼굴도 일도 모든 게 완벽한 남자 유은호를 연기했다. 이준혁은 그간 장르물 위주로 비열(‘좋거나 나쁜 동재’, ‘비밀의 숲’)하거나 악랄(‘범죄도시3’)한 역할을 주로 소화하다가 ‘나의 완벽한 비서’로 분위기를 180도 바꾸고 꽃미모를 만개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로맨스물에서 이토록 빛이 나는 배우인데, 이준혁은 왜 그동안 피비린내 넘실대는 작품만 해왔는지 궁금했다.
“한 세대는 자신의 윗세대를 보면서 자라잖아요. 생각해 보면 제가 한창 연기에 입문한 시대에서는 깊고 진한 장르물로 통일이 됐어요. 저도 그런 걸 추구했고요. 그래서 진지하게 따라 하려고 했고, 또 원했어요. 저 자체도 다양한 장르에 취향이 있는 편이고, 크리스찬 베일을 유독 좋아하기도 했어요. 작품을 봤는데 배우는 없고 캐릭터만 기억에 남는 판타지를 꿈꿨죠(웃음). 그리고 사실 당시에 크리스찬 형님이 ‘멜로는 안 하겠다’라고 말을 해서 그게 좀 멋있어 보였어요(웃음). 그런 영향을 좀 받았죠.”

그렇다면 제목부터 진한 로맨스를 향기를 풍기는 ‘나의 완벽한 비서’는 어떤 이유로 출연하게 됐는지도 궁금해졌다.
“멜로를 해야겠다고 해서 ‘나의 완벽한 비서’를 선택한 건 아니었어요. 제가 독특한 인물상을 선호하다 보니 더 이상 악랄하고 센 캐릭터가 독특하지 않게 다가오더라고요. 오히려 은호라는 캐릭터가 독특해 보였어요. 제 주변 인물 중에서 은호 같은 사람이 없어서 더 판타지 같았어요. 그런 부분의 판타지가 커져 있던 상황에서 ‘나의 완벽한 비서’ 대본이 받아들여졌어요. 은호를 연기하고 나서 지난 커리어를 보니까 제 취향이 정말 마이너했구나 느껴요.(웃음)”
이준혁이 ‘나의 완벽한 비서’로 빛났던 이유는 단지 눈부신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준혁은 비서이기에 늘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은호를 너무 튀거나 동적이지 않은 선에서 극의 흐름을 탁월하게 잡으며 자연스러운 흐름을 완성했다. 작품 전체를 받쳐주는 이준혁의 은은하고도 섬세한 연기는 마치 물처럼 부드럽게 흘렀고, 그 안에 감정의 깊이까지 꽉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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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은호를 표현하는데 가장 힘들었던 지점은 초반부터 왔어요. 2회부터 주인공으로서 목적을 상실해요. 은호는 아이가 아파서 일을 그만두고, 그다음 목표로 일을 찾는 데 2회 만에 찾아버리잖아요. 그때부터 은호라는 캐릭터의 목적이 상실돼서 좀 어려웠어요. 그 이후부터 은호에게서 느낀 건 모든 신에서 조연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배경이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저라는 존재는 이 작품의 베이스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앞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은은하게 작품에 젖어있어야 한다고요.”

이준혁은 극에서 딸 역할을 맡은 아역 배우 기소유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부녀지간의 호흡이 중요한 작품이었지만, 이준혁은 아이와의 호흡이 처음이었기에 “두려웠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별이 역의 소유와는 일단 묵찌빠로 가까워졌다. 묵찌빠 내기로 아빠 호칭을 부르기로 했다. 어느 날 별이랑 대화를 나눴는데 정말 놀랐다. 아이가 아니라 프로페셔널한 배우더라. 별이의 배우로서 그 숙련된 모습에 정말 감사했다”라고 말했다.
“배우는 드라마를 만들어서 대중에게 선보이는 일을 하잖아요. 그래서 정확하게 등가교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은호가 시청자분들로부터 잘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제가 제일 신경 쓴 부분은 장면 브릿지 사이의 리듬과 유머였어요. 클리셰로 가져갈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브릿지는 변칙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신경을 썼어요. 그런 재미를 시청자한테 줘야 이 로맨스가 뻔해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상대역으로 호흡한 한지민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이준혁은 한지민에게 “깊은 존경심”을 느끼며 현장에서 뜨겁게 호흡했고, 한지민을 자신의 “든든한 버팀목”이라고도 했다. 그는 “현장에는 어마어마하거나 사소한 리스크가 동시에 존재한다. 작고도 큰 많은 문제가 존재하는데 (한)지민 씨는 엄청난 프로라서 그런지 든든한 지점이 많았다.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고, 멋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작품에서 완벽한 비주얼로 나온 것에 대해서 부담감은 없었는지 묻자 “압박감은 당연히 느꼈다”라며 “집 밖에도 안 나가는데 고개 어떻게 들고 다니지 하는 부담감을 느꼈다. 그런데 이것은 나 혼자 한 게 아니다. 팀들이 도와줬다. 세상에 없는 걸 만들어준 팀”이라고 함께하는 스태프에게 공을 돌렸다. 그러면서 외모에 관한 ‘웃픈’ 과거의 기억을 하나 들려줬다. 입담까지 재치가 넘치는 여러모로 실제가 더 매력적인 배우다.
“저는 정말 노안으로 유명했어요. 당시 기억에 남는 기사가 ‘노안 배우 2위’였어요. 늘 나이보다 나이가 많은 배역을 연기했어요. 노안인 덕분에 일이 들어왔죠(웃음). 감독님들이 눈썰미가 좋았던 거죠(웃음). 그때 제가 수염을 기르고 있었거든요. ‘조강지처클럽’도 수염이 있다고 캐스팅이 됐어요. 그때 수염은 자랑이었죠. 시대를 따라간 것뿐인데 그게 안 어울렸나 봐요.”
이준혁은 앞으로의 대해 “그대로 성실히 해나갈 것 같다. 다음 작품이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좋은 동료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다음에 좋은 연기가 나오는 것 같다. 사실 그런 다음엔 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처럼 대기만성할, 비슷한 지점에 있는 후배들이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라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