쏠림 현상 심한 극장가에서 '왕과 사는 남자' 다음 타자 되나

"나홍진 감독이 충무로의 ‘호프’(희망)가 될 수 있을까?"
요즘 한국 영화 관계자들이 그의 신작인 영화 ‘호프’(HOPE)의 제목에 빗대 농담처럼 주고받는 대화다. 언론들도 이런 뉘앙스의 기사를 쏟아내는 것을 보면 나 감독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혹자는 말한다. "‘왕과 사는 남자’가 호프 아니었어?" 맞는 말이다. 2년 만에 탄생한 1000만 영화이자, ‘극한직업’까지 제치고 역대 흥행 2위에 오른 이 영화는 긴 침체기에 빠진 충무로에 단비와 같았다. 하지만 또 다시 나 감독을 바라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배턴을 이어받을 후속타가 좀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나 감독의 ‘호프’는 충무로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왕과 사는 남자’ 신드롬은 이제 조금 가라앉았다. 이는 열풍을 넘어 광풍이라 부를 만했다. 부진에 허덕이던 충무로에 오랜만에 활기로 돌았다. 집나간 관객들이 극장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반길 일이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2026년 극장가의 성과는 ‘왕과 사는 남자’ 한 편이 일궈 쏠림 현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1월1일∼4월19일 박스오피스를 보면 ‘왕과 사는 남자’가 매출 점유율 44.2%를 차지한다. 이 기간 극장을 찾은 100명 중 44명은 ‘왕과 사는 남자’를 봤다는 의미다. 그 뒤를 ‘아바타: 불과 재’(7.3%), ‘프로젝트 헤일메리’(7.1%), ‘만약에 우리’(6.7%), 휴민트(5.5%)가 잇고 있다.
문제는 2∼5위를 다 더해도 ‘왕과 사는 남자’에 미치지 못한다. ‘왕과 사는 남자’가 1658만 관객을 동원한 반면, 2위인 ‘만약에 우리’의 관객수는 247만 명이었다. 둘의 격차는 무려 1400만여 명이다. "충무로를 지탱할 ‘허리급’ 영화가 없다"는 우려가 가볍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그렇게 때문에 나 감독의 ‘호프’가 허리급을 넘어 ‘왕과 사는 남자’를 잇는 머리급 영화가 될 수 있을 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일단 ‘호프’는 다음 달 12일 개막하는 제7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면서 세계적 주목을 받는 데 성공했다. 한국 영화가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건 2022년작인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이후 무려 4년 만이다. 올해 경쟁 부문은 박찬욱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수상에 대한 기대가 크다.

칸국제영화제는 ‘마일리지 영화제’라고도 볼 수 있다. 여러 차례 러브콜을 받고 칸에 다녀온 감독과 작품에 대한 평가가 후한 편이다. 박 감독의 경우 영화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후 끊임없이 부름을 받으며 ‘깐느 박’이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독자들의 PICK!
그런 의미에서 나 감독은 마일리지를 잘 쌓아왔다. 나 감독은 데뷔작인 ‘추격자’가 2008년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받으며 처음 이 영화제에 입성했다. 3년 후 공개한 차기작 ‘황해’는 2011년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상영됐고, 오컬트물이었던 ‘곡성’은 2016년 비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그리고 10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 처음으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이미 나 감독과 그의 영화에 대한 상당한 호감을 보인 칸국제영화제가 이번에는 경쟁 부문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길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
게다가 ‘호프’에는 다국적 배우들이 참여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인 황정민, 조인성과 ‘오징어 게임’으로 글로벌 시장에 얼굴을 알린 정호연 외에도 할리우드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이 주요 배역을 맡았다. 외신들이 주목할 만한 요소를 고루 갖췄다는 뜻이다.
또한 나 감독은 작품성과 상업성을 겸비한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추격자’는 504만 관객을 동원했고, ‘황해’는 226만 명을 모았다. 게다가 두 영화 모두 관람등급이 청소년 관람불가였던 것을 고려하면 그의 대중적 파급력을 알 수 있다. 아울러 15세 이상 관람가였던 ‘곡성’은 687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의 연출작 중 최고 흥행을 거뒀다.
그렇기 때문에 ‘호프’과 칸국제영화제 진출을 넘어 흥행 면에서도 성공을 거둘 것이란 관측도 무게가 실린다. 게다가 이 영화의 제작비는 최소 500억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영화 역대 최고 수준이다. 그만큼 많은 볼거리를 담고 완성도를 높였다는 의미다.
앞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2019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석권하며 K-무비 전성시대를 열었다. 국내에서도 ‘기생충’이 1000만 영화 대열에 올랐다. 나 감독의 ‘호프’가 그 영광을 재현해준다면, 그 영화의 제목처럼 충무로의 희망으로 거듭날 수 있다.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