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대가로 비는 소원, 한국 공포의 부흥을 바라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희망이다. 비록 산소나 수분처럼 신체 유지를 위한 필수 요소는 아닐지라도, 내일을 맞이하고 행복을 영유하는 데 있어 희망만큼 중요한 동력은 없다. 우리는 이 희망을 모아 '소원'이라는 형태로 키워나간다. 누군가는 로또 1등 같은 재물운을 바라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와의 연애운을 소망한다.
보통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것들을 바라기에, 타인의 소원에 특별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 일은 없다. 누구나 가벼운 소원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며, 때로는 이를 술안주 삼아 즐겁게 떠들기도 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극본 박중섭, 연출 박윤서) 속 다섯 명의 고등학생 역시 그랬다. 그저 성적이 조금 더 오르길, 혹은 짝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길 바라는, 그 나이대다운 평범한 갈망이었다.

하지만 소박한 소원이 스마트폰의 '기리고' 앱을 만나는 순간 날카로운 칼날로 돌아온다. 성적 때문에 고민하던 ‘형욱’이 수리영역 만점을 받는다. 친구들의 추궁에 털어놓은 형욱의 비법은 바로 소원을 들어준다는 앱 '기리고'였다. 학생이 만들 법한 조약한 앱이었지만 소원은 진짜 이뤄졌고, 이후 24시간의 타이머가 시작됐다. 그리고 소원을 빌었던 형욱이 죽음을 맞이하자 세아(전소영), 나리(강미나), 건우(백선호), 하준(현우석)은 공포에 잠식된다.
'기리고'의 설정은 흥미롭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소원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통해 빈다. 일상에 익숙하게 파고든 소재이기에 줄곧 외치는 "진짜로 이뤄질거라 믿고 빌은 소원이 아니었잖아"라는 변명이 통용된다. 비록 친구의 죽음을 빌었더라도, 그냥 일상에서 친구끼리 던지는 농담 수준이었다. 하지만 장난 섞인 악의가 저주로 진화한 순간 '기리고'의 진면목이 시작된다.

작품은 현실적인 아이템인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저주, 구마, 무속 등 판타지의 오컬트로 시청자를 이끈다. 허나 이 흥미로운 소재는 에피소드가 거듭될수록 그 재미가 희석된다. 선혈이 낭자한 장면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시작은 좋았으나, 이 자극이 거듭 소환된다. 고어 장르에 익숙한 시청자라면 장면의 반복이 지루하고, 거부감이 있는 시청자라면 콘텐츠를 외면할 이유가 된다.
총 8부작이라는 풍성한 분량은 오히려 독이 됐다. 주인공들은 저주의 원인을 찾고, 이를 풀기 위해 노력한다. 다만 이것이 전부다. 무엇보다 다섯 학생에게 얽힌 사연이 얄팍하다. 관계가 얕으니, 죽음도 가볍게 스쳐간다. 특히 ‘기리고’의 저주가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방식이 이간질이기에 서로의 유대가 보다 충만할 필요가 있었다.

덕분에 죽음의 문턱에 선 아이들의 절박한 몸부림은 공감이 아닌 치기 어린 금쪽이들의 행동으로 다가온다. 상대적으로 작품 후반에 등장하는 과거의 인물들에 더 이끌린다. 저주의 원인을 찾아가며 서사를 풍성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인물들의 스토리를 꾸릴 수 있는 공간이 충분했기에 더욱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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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는 긴 시간을 채우는 것은 끊임없는 뜀박질이다. 저주가 만든 가상공간이라는 설정 아래 세아는 시종일관 도망과 추격을 이어간다. 그 과정에서 비장의 한 수를 준비할 법도 한데, 저주의 힘이 워낙 강력해 주인공들의 고군분투가 힘을 잃는다. 일종의 파워 밸런스 붕괴다. 장르의 중심을 잡아줄 오컬트 요소도 빈약하다. 준비는 많이 했지만, 시각적인 표현이 아닌 대사의 설명으로 처리하니 그 신비한 매력을 살리기 힘들다.

주연인 전소영, 강미나, 백선호, 현우석은 무리 없는 연기를 펼쳤다. 이들을 떠받치는 특별출연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무당인 '햇살'과 '방울'을 연기한 전소니와 노재원이 빛을 발한다. '기리고'가 오컬트 장르가 될 수 있는 구심점이며, 더불어 약간의 로맨스와 웃음까지 더할 수 있는 포인트도 제공한다. 나아가 과거를 책임진 권시아와 최주은의 연기도 훌륭하다.
현재 극장가에선 영화 '살목지'의 흥행 바람이 불고 있다. 콘텐츠 불황이 계속되는 이 시점에 공포물이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기리고' 역시 24일 공개 이후 계속 상위권에 자리하며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한국 영화의 부흥기엔 늘 공포 영화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왔다. 신인들의 등용문이 됐고, 장르의 다양성 확보에도 기여했다. 하여 '기리고'의 도전이 반갑다. 장점도, 단점도 있는 작품이지만 이와 같은 시도가 계속돼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래서 '기리고' 앱을 열고 소원을 빌고 싶다. 비록 목숨을 대가로 바치는 "죽도록 빌고 싶은 소원"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리고'와 함께 앞으로도 한국 공포 콘텐츠가, 나아가 더욱 풍성하고 다양한 장르의 K-콘텐츠가 탄생하길 소원해 본다.
권구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