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미 한 스푼 더한 진구표 악역
미워할 수 없는 페이소스 유발

JTBC 토일드라마 '신입사원 강회장'에서 진구는 최성물산의 사장이자 최성그룹의 장남 강재성을 연기한다. 첫 회, 이마 라인을 타고 깔끔하게 쓸어올린 올백 머리에 야망으로 들끓는 두 눈빛, 거침없는 말투를 장착하고 등장한 그는 전형적인 최종 빌런의 아우라를 풍겼다. 후계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뺑소니와 증거 조작도 서슴지 않고, 친동생 강재경(전혜진)을 밟고 올라서기 위해 광기 어린 탐욕을 드러내는 그런 악의 전형.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강재성의 악행은 묘하게 비틀린다. 순간의 욱하는 성질을 이기지 못해 번번이 섣부른 행동을 저지르고, 영혼이 바뀐 황준현(이준영)의 덫에 걸려 3,000억 원의 비자금을 날린 뒤 악에 받쳐 초조해하는 그의 모습은 서늘함보다는 어딘가 짠한 허당미를 자아낸다. 악랄한 음모의 한복판에서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 지질하게 무너지는, 그 요상하게 인간적인 진구의 연기는 이 악인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게 만들고 있다.
진구의 대표작으로 데뷔작 '올인'(2003)과 듬직한 매력으로 설렘을 안긴 '태양의 후예'(2016)의 서대영을 빼놓을 수 없지만, 그의 또 다른 진면목은 악의 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입체적인 얼굴에 있다. 주인공 곁을 지키며 우직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비열한 얼굴을 드러냈던 '비열한 거리'(2006)의 종수, 야성미 넘치는 적폐였지만 은근한 정으로 뭉클함을 안겼던 '감사합니다'(2024)의 황대웅, 그리고 광기 어린 카리스마로 화면을 장악했던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2025)의 김한철까지.

이러한 궤적을 거쳐 강재성을 만난 진구는 한층 단단해진 내공으로 맵고도 단 캐릭터를 빚어냈다. 묵직한 카리스마로 극의 긴장감을 이끌다가도, 찰나에 드러나는 지질함과 짠한 인간미로 인물의 결을 유연하게 비튼다. 위압감과 허술함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완급 조절은 진구가 캐릭터의 양면성을 얼마나 영리하게 다루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나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태도는 강재성이라는 인물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치트키다. 험상궂은 표정과 거친 말투로 상대를 위협하면서도 결국 제 꾀에 제가 넘어가 당하고 마는 허술함이 묘한 페이소스를 유발한다.
무엇보다 감정신에서 드러나는 진구의 힘은 강재성의 서사에 애틋함을 더한다. 명백한 아내의 배신 앞에서도 현실을 억지로 부정하는 처절한 순애보, 옥살이 중 새엄마 조선희(윤유선)가 싸 온 도시락을 향해 툴툴거리면서도 이내 맛있게 먹는 모습들에서다. 급기야 아버지를 죽음으로 몬 재경을 향해 "어떻게 아버지를 네 손으로 죽이냐"며 핏대를 세우고 울부짖으며 악당에게도 끝내 끊어내지 못한 일말의 천륜을 절절하게 토해내며 화면을 압도했다.
때문에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짠하게 당하기만 하는 그가 차라리 황준현과 손잡고 뭔가 한 번쯤은 제대로 반격하길 바라는 마음까지 품게 될 정도다. 묵직함과 경쾌함, 잔혹함과 애처로움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악역의 새로운 묘미를 보여주고 있는 진구. 그의 노련한 변주가 '신입사원 강회장'의 치열한 승계 전쟁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