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동쪽ㅣ여성드라마로 거듭난 고전의 진화

에덴의 동쪽ㅣ여성드라마로 거듭난 고전의 진화

정유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6.10.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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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에게도 이유가 있다는 사실 입증하는 플로렌스 퓨의 열연

넷플릭스 시리즈 에덴의 동쪽은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트래스크 가문의 이야기를 여성 드라마로 재해석했다. 조 카잔이 각본과 총괄 프로듀싱을 맡아 원작에서 악녀로 묘사된 캐시 에임스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플로렌스 퓨는 주체적인 캐시 역을 열연했으며 훈 리는 팀셸의 의미를 전하는 하인 리 역을 맡아 깊은 울림을 주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는 시대를 초월한 고전 문학을 최신 영상 콘텐츠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 영화 ‘프랑켄슈타인’(2025), ‘채털리 부인의 사랑’(2022),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를 비롯해 시리즈 ‘초원의 집’(2026), ‘백년의 고독’(2024~2026), ‘표범’(2025) 등이 오래된 문학 작품에 새로운 해석과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최근 공개된 드라마 시리즈 ‘에덴의 동쪽’은 고전 원작 작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고전 문학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작품 가운데 단연 손꼽을 만한 시리즈가 찾아왔다.

‘에덴의 동쪽’은 제임스 딘 주연의 영화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만, 출발점은 1952년 출간된 존 스타인벡의 동명 소설이다. 스타인벡이 자신의 최고 대표작으로 꼽은 이 작품은 구약성서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3대에 걸친 트래스크 가문과 해밀턴 가문의 이야기를 펼친다. 작가의 고향인 미국 캘리포니아 살리나스 계곡을 배경으로, 19세기 중반부터 제1차 세계대전 무렵까지 두 가족의 사랑과 욕망, 선과 악을 둘러싼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대작이다.

소설 ‘에덴의 동쪽’은 1955년 엘리아 카잔 감독이 처음 영화화했다. 할리우드 고전 스타 제임스 딘의 대표작으로 당시 스물네 살이었던 그는 트래스크 가문의 자유분방하고 반항적인 칼을 연기하며 작품의 상징처럼 남았다. 제임스 딘의 연기는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영화는 원작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칼과 쌍둥이 형제 아론, 애브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압축하고, 제임스 딘이 연기한 칼의 내면과 아버지와의 갈등에 집중했다. 1981년에는 티머시 보텀스와 제인 시모어 주연의 3부작 미니 시리즈가 제작되어 골든글로브 TV 미니 시리즈 부문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넷플릭스 ‘에덴의 동쪽’은 원작을 어떻게 재해석했을까. 이번 7부작 시리즈의 각본과 총괄 프로듀싱을 맡은 조 카잔은 원작의 두 가문 이야기를 트래스크 가문 이야기로 재편하고, 트래스크 가문의 2대인 애덤의 아내 캐시 에임스 이야기를 중심에 놓는다. 원작에서 캐시는 첫 등장부터 ‘괴물’로 규정될 만큼 사악한 인물이다. 캐시는 어린 시절 집에 불을 질러 부모를 죽인 전력이 있는 데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애덤을 배신하고 그의 이복동생인 찰스를 유혹한다. 쌍둥이 형제인 칼과 애런을 낳은 후에는 남편과 갓 태어난 자식들을 버리고 집을 나가 창녀로 살아간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에덴의 동쪽’은 존 스타인벡이 자신의 가족사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녹여낸 자전적 요소가 강한 소설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 애덤(크리스토퍼 애벗)의 정착을 돕는 새뮤얼 해밀턴(시아란 힌즈)은 스타인벡의 외할아버지를 모델로 했다. 원작에서 존 스타인벡을 연상시키는 ‘나’라는 화자는 캐시를 단순히 나쁜 여자로 규정하기보다 그녀의 이야기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10대 시절 원작 소설을 처음 접하고 캐시 에임스라는 인물에 매료된 조 카잔은 스타인벡이 캐시를 바라본 시선에 주목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확장했다. 캐시를 전형적인 팜므 파탈이나 안티히어로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이해하려는 조 카잔의 시도와 노력이 이 드라마를 의미 있게 만든다.

조 카잔의 각색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캐시의 내면을 시각화한 방식이다. 죽은 찰스(마이크 파이스트)를 캐시의 환영과 환청으로 등장시켜 캐시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찰스는 캐시의 어두움과 속마음을 꿰뚫어본 인물이자 악마에 비유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캐시와 닮았다. 드라마에만 등장하는 찰스의 환영은 캐시 안에 자리한 과거의 기억과 상처, 죄책감과 두려움 등 복잡한 내면을 끄집어내면서 악의 화신처럼 보였던 캐시를 자신을 지키려고 한 인간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영상화된 ‘에덴의 동쪽’이 남성성이 강한 작품이었다면, 넷플릭스 ‘에덴의 동쪽’은 플로렌스 퓨의 열연으로 여성 드라마로 새롭게 거듭난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2017)와 ‘작은 아씨들’(2019) 등 고전 시대극에서 특히나 돋보이는 연기를 보여준 플로렌스 퓨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캐시를 악마적 인물 그 이상으로 표현한다. 수동적으로 삶을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강인하고 주체적인 인물로 완성한다. 선이 아닌 악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결코 호감 가는 인물은 아니지만, 매섭고도 뜨거운 플로렌스 퓨의 연기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기세로 화면을 집어삼키며 시청자를 매료시킨다. 플로렌스 퓨의 대표작으로 남을 만한 연기인 만큼 주요 시상식에서의 행보도 주목된다.

‘에덴의 동쪽’의 주제를 한 단어로 말한다면 ‘팀셸(timshel)’이다. 구약성서 창세기 4장 6절-7절에 나오는 구절을 스타인벡이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 이 말은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인간은 신이나 과거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고, 카인처럼 죄를 저지른 인간에게도 선과 악 가운데 선택할 힘이 있다는 의미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작품에서 ‘팀셸’의 의미를 두 차례(드라마 5화와 7화) 전하는 인물이 트라스크 가문의 중국인 하인 리(훈 리)다. 한국계 배우 훈 리는 ‘팀셸’의 의미를 전하는 장면은 물론, 삶의 의욕을 잃은 애덤을 대신해 깊은 애정으로 쌍둥이 형제를 돌보는 책임감 있는 인물을 연기하며 울림을 준다. 배우의 연기를 보며 오랜만에 눈시울을 붉혔다. ‘팀셸’의 의미를 삶으로 실천하는 리의 서사를 확장한 조 카잔의 각색도 훌륭하지만, 이 캐릭터를 유독 와닿게 만든 것은 훈 리의 차분하고 지적인 연기 덕분이다. 앞으로 꼭 지켜봐야 할 배우다.

‘에덴의 동쪽’은 영화의 유산을 이어받은 세대가 만들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넷플릭스 시리즈의 각본과 총괄 프로듀싱을 맡은 조 카잔은 1955년 영화를 연출한 아카데미상 수상 감독 엘리아 카잔의 손녀다. 애런 트라스크를 연기한 조 앤더스는 케이트 윈슬렛과 샘 멘데스 감독의 아들이다. 칼 트라스크를 연기한 조셉 자다(Joseph Zada) 역시 배우이자 감독인 아버지와 프로듀서 어머니를 둔 배우다. 영화와 연기의 유산을 이어받은 배우와 창작자들이 스타인벡의 고전을 동시대의 새로운 이야기로 되살렸다는 점도 흥미롭다.

넷플릭스의 고전 작품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이어진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원작으로 한 6부작 시리즈가 오는 12월 공개되며,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도 넷플릭스 시리즈로 제작 중이다.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역시 그레타 거윅의 손을 거쳐 새로운 영화로 돌아온다. 이제는 해외 고전뿐 아니라 한국의 고전 문학도 넷플릭스에서 새롭게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정유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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