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동안 그래 왔으니 앞으로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는 것이 많다. 철도가 그렇다.
오랫동안 철도공사(코레일)가 운영해왔으니 새로운 노선이 생겨도 이를 철도공사에 주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수서발 고속철도(KTX) 신규 운영자 선정문제를 민영화로 주장하는 분들이 앞의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민영화는 '국가가 경영하던 국영기업체 또는 공법인(公法人)의 경영을 생산성 향상을 위해 민간 경영자에게 매각하는 것'(브리태니커)이다. 따라서 민영화가 성립되려면 민영화 대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에는 민영화 대상이 없다. 선로 등 기반시설은 계속 국가가 소유하고 기존 철도공사도 공기업 형태로 존속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민영화라고 주장하는가? 그 사람들은 당연히 철도공사에 돌아가야 할 수서발 KTX 운영권이 민간에 돌아가니 이를 민영화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철도운영권(면허)은 특정 노선에서 철도차량을 운행할 수 있는 자격을 국가가 부여하는 행정행위(특허)다. 국가는 '철도사업법'상 면허기준에 따라 일정한 요건을 갖춘 민간사업자 등에 운영권을 부여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면허행위를 민영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틀린 말이다. 누군가 철도시설은 국가가 소유하고 운영은 민간이 하는 영국 철도도 민영화 사례로 불리는데 이번 우리 정책을 민영화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영국의 철도를 민영화 사례로 언급하는 것은 영국이 1994년 기존 국가가 소유했던 철도시설과 운영사업체를 모두 민간에 매각했을 때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지 단순히 민간이 철도를 운영한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민영화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철도공사가 모든 철도를 운영할 이유는 없다. 기존 철도공사가 철도 운영을 독점한 이유는 논리적·경제적 이유보다 정치적·역사적 이유가 컸다. 이제부터는 보다 효율적인 사업자가 있다면 그에게 철도 운영을 맡겨 보다 합리적인 가격과 질 높은 서비스 혜택이 일반국민에게 돌아가게 해야 한다.
더욱이 지금까지 정부 측 철도구조 개혁 노력에도 철도공사의 부채가 계속 늘어나는 현실을 볼 때 철도구조조정의 완성을 위해서도 신규사업자의 진입은 꼭 필요하다. 철도공사는 신규사업자와 경쟁을 통해 스스로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경영개선을 도모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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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철도공사에 기회를 주자는 동정어린 주장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년간 철도공사에 경영개선의 기회를 줬으며 간절한 우리의 기대는 번번이 실패로 끝나곤 했다. 또한 독점시장은 잠깐 잘할 수는 있겠지만 언제든지 독점의 늪에 빠져 국민과 국가에 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잠재적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경쟁체제 전환이 필요하다.
이번 신규면허 발급은 113년 만이다. 따라서 일반국민이 이를 낯설게 느끼고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조선·IT(정보기술)·자동차 등 우리 주력 수출산업 모두 경쟁환경 속에서 성장해나갔다는 점에서 우리 철도산업의 발전을 위해 경쟁체제 도입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동안 철도는 독점체제가 당연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다수의 사업자가 경쟁하는 체제가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전환하는 것, 즉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전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모두 "아니오"라고 할 때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