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責任)'의 한자 풀이는 흥미롭다. '책'(責)의 본래 뜻은 '진 빚을 갚기 위해 일한다'는 의미다. 회초리를 본뜬 상형에 재물(貝)을 합한 글자로 재물을 빌렸다 제때 갚지 못하면 채찍질하고 꾸짖는다는 옛 풍습에서 나왔다고 한다.
'임'(任)에서 임(壬)은 베틀의 모습을 본뜬 상형으로 백성들의 베짜기를 감독하는 관리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 앞에 인(人)이 붙은 '임'(任)은 옛날 중국 은나라 때부터 중앙 관리나 지방수령의 의미로 쓰였다.
관료사회에서 '임지'(任地) 혹은 '부임(赴任)한다'라는 말이 쓰이는 배경이다. 결국 '책임'은 본래 의미가 관료사회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고, 그래서 관료들에게는 유독 엄격하고 도덕적인 책임의 잣대가 적용되는 지 모른다.
최근 국민주택기금의 근로자·서민 주택구입자금 대출 중단 사태를 보면 과연 '책임'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이 기금을 관리하는 건설교통부 측은 대출을 중단토록 한 적이 없고, 심사 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한 것을 금융기관이 확대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직 자금도 남아있고 내년에도 예산이 잡혀 있으니 걱정 없다는 입장이다. 한술 더 떠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제대로 해 줬는지 살펴봐야겠다며 금융기관들에 '책임'을 떠넘기는 분위기다.
정작 금융기관들의 설명은 이와 다르다. "정부 돈을 위탁받은 사람들이 무슨 권한으로 마음대로 대출을 중단할 수 있느냐"고 항변한다. '돈이 남아 있다'는 대목에선 "뭐, 정부야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겠죠"라며 "은행 두 곳에서 대출해 줘야 할 것만 해도 남은 한도를 초과했는데…"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90년대 은행장을 지냈던 A씨는 휴일에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 집무실로 쓰는 서재를 갈 때 항상 양복을 차려입었다고 한다. 문턱 하나 차이지만 '은행장'으로서 책임감이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서란다. 서민들만 엉뚱한 피해를 보게 된 이번 사태에 "내 책임이요"라고 나서는 관료는 아마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