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예금하지 말라"는 은행원

[기자수첩]"예금하지 말라"는 은행원

변휘 기자
2013.11.04 07:03

지난 1일 서울의 한 외환은행 지점에 방문했다. 몇 차례 해외 출장과 여행 후 모아 둔 외화 현찰이 꽤 불어난 탓에, 예금을 개설해 은행에 넣어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은행 창구 직원은 반대했다. 그는 "국내에서 활발하게 유통되지 않는 통화인 탓에, 미국 달러나 유로와 달리 계좌를 유지하고 입·출금을 할 때마다 수수료가 발생합니다. 고객님은 예금하려는 액수가 많지 않아 이자도 적기 때문에, 통장 개설을 신중하게 판단하시는 게 좋습니다"라며 금리와 수수료율 등을 꼼꼼히 안내했다.

결국 현찰 그대로 서랍에 보관 중이다. 만일 직원이 서류를 건네며 "동그라미 친 곳에 서명하세요. 그리고 이런저런 수수료가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서명하고, 시간이 흐른 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수수료를 물면서 불쾌했을지 모를 일이다.

불완전판매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한 쪽에선 '무지한 고객을 금융사가 속였다'고, 다른 쪽에선 '고금리를 쫓은 고객도 문제'라는 목소리가 엇갈린다. 그러나 금융상품 판매도 사람의 일인 탓에, 무 자르듯 명쾌하게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기 난감한 일이 대부분이다.

최근 동양증권은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논란이 가중되자 판매 당시 녹취록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녹취록에 근거해 불완전판매에 대한 시비를 가리겠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금융권의 한숨은 더 깊어졌다. 한 시중은행 직원은 "손실 위험을 알리는 목소리가 컸는지 작았는지, 발음이 정확했는지 부정확했는지 등 시시콜콜한 사안을 놓고 금융사와 고객들이 멱살을 잡게 될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금융업은 신뢰로부터 출발한다. 돈을 맡기고 돈을 빌리는 관계인 탓에, 금융사와 고객의 신뢰가 기반이 돼야 금융산업이 지속될 수 있다. 금융사는 판매 실적을 먼저 생각한 채, 고객은 조언을 무시하고 수익성만 따진 채 잘못된 결과에 서로 책임만 묻는 방식으로는 결코 신뢰를 쌓을 수 없다.

특히 '정보를 더 많이 가진 자'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 한 전직 은행원은 "쌈짓돈을 갖고 은행에 찾아 온 70대 노인에게 펀드를 권유하는 건 아이러니다. 그저 실적 압박 때문에 고객의 이익을 모른 척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정된 노후 자산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다른 상품을 추천하는 게 상식이라는 설명이다.

수십만원에 불과한 돈이지만 고객의 입장에서 "예금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은행원. 대부분의 금융사 직원이 그와 같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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