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씨티은행 박진회 행장은 은행에 몸담은 지난 30년간 딱 한 해만 '갑'의 위치에 있었다고 말한다. 일부러 '갑'이 되려한 게 아니라, 그 해만큼은 금액불문, 기간불문, 이자불문 3불(不)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어쩔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기업들이 자금난에 내몰렸던 이 해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경제가 마지막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1994년이었다.
1994년은 지난해 복고풍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응사'(응답하라 1994)의 배경이 되었던 해이기도 하다. 경제성장률이 8%를 넘었고,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선에 도달했으며, 종합주가지수는 당시로선 사상 최고치인 1138선까지 상승했다. 외환위기에 빠져든 응칠(응답하라 1997) 시절이라면 몰라도, 외견상 호황을 구가하던 '응사'를 배경으로 기업들이 고비를 맞았다는 게 언듯 이해가 되지 않는다.
1994년 연말엔 하루짜리 콜금리가 법정 상한선인 25%까지 치솟았다. 한국통신 주식 입찰과 중소기업은행 주식 공모를 위한 자금 수요가 과열 양상을 띤데다, 당시 문민정부의 '신경제100일'에 편승한 기업들의 투자가 확대되면서 자금난이 더욱 가중됐다. 한국경제는 이듬해에도 8%대의 고도성장을 이어갔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후에나 '응사' 자금난이 방만한 경제운용에 대한 경고였음을 알게됐다.
사실 1994년은 대외적으로 불안한 기운이 감돌던 시기였다. 이 해 1월 중국은 달러당 5.8위안이던 공정환율을 시장환율이던 달러당 8.7위안으로 상향 조정하는 환율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한국경제가 반도체호황과 엔고, 증시 활황에 취해있었지만, 위안화값 폭락으로 당시 중국과 경쟁하던 동남아 국가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중국은 그 해 총수출이 30% 이상 폭증한 반면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상황은 악화됐다. 설상가상, 1994년엔 미국의 금리인상 여파로 멕시코 페소화 폭락사태까지 터져 아시아 신흥국은 1997년 파국으로 내몰리기 시작했다.
을미년 새해가 밝았지만 한국경제는 과거처럼 다양한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이전과 달리 대기업의 자금 사정만은 풍부하다. IMF(국제통화기금)사태를 겪으면서 부채비율에 신경을 쓰기도 했지만, 대외 환경이 불확실한 가운데 국내적으로 저성장과 내수활성화를 막는 각종 제약 등으로 대기업들이 돈을 쌓아놓고만 있는 까닭이다.
지금은 가계부채 문제나 미국의 임박한 금리인상, 유가급락에 따른 러시아 위기, 일본 엔저의 고착화,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우려 등 메가톤급 리스크가 즐비하다.무엇보다 우리를 긴장케 하는 건 중국경제 둔화다. 한국경제는 중국이 기침을 하면 몸살을 앓을 정도로, 중국 의존도가 높아졌다. 중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멈추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생산기술 우위를 상실한 한국 기업들이 중국시장에서 대규모로 밀려날 수 있다. 일부에서는 1997년처럼 한국의 은행 위기가 재연된다면, 대기업이나 가계부채가 아닌 중국경제 성장 둔화와 관련한 중소기업발 문제가 원인이 될 것이란 때이른 지적도 나온다.
한국씨티은행의 박진회 행장은 우리 경제가 지금 당장 큰 위기에 빠져들 이유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다만, 지금이야 말로 '좀비' 중견·중소기업을 솎아내기 위해 시장의 정화기능이 강화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은행들이 '싹수' 있는 기업들을 더 지원하기 위해서도 '좀비' 기업의 구조조정을 요구해야 한다는 논리다. 경쟁력 있는 중소·벤처기업 육성이 우리 경제의 당면 과제란 점에서 공감이 가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