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을 동시에 확대하라고 주문하면서 은행권 여신심사 부서가 딜레마에 빠졌다. 혁신·전략산업을 우선 지원하라는 압력이 커지는 가운데 장기적으로 취약 자영업자를 외면할 수 없다는 부담이 동시에 다가와서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6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의 도소매업 부실대출 잔액은 올해 3분기 기준 1조2958억원으로 집계됐다. 2년 전 8753억원 대비 48.3% 급증했다. 숙박·음식점부문의 부실대출 잔액도 2549억원으로 2년 새 21% 증가했다.
장기간의 경기둔화로 '골목상권' 업종을 중심으로 연체·부실이 빠르게 누적되는 모양새다. 폐업통계도 흐름을 뒷받침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신고 사업자 중 소매업(29.7%)과 음식점업(15.2%)이 절반을 차지했다. 대부분 취약 자영업자고 폐업사유는 '사업부진'이었다.
문제는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을 동시에 해야하는 상황에서 취약 자영업자에 자금을 공급할 여력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자금연결이 끊기면 소상공인 생태계에 부담이 쌓이고 되레 은행도 리스크가 커지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지만 당장은 정책 우선순위가 생산적금융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여신심사담당 고위관계자는 "포용금융을 확대해야 한다는 원칙은 계속 이어졌다"면서도 "다만 실제 심사테이블에 앉아 회의를 하면 생산적금융 쪽으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 섹터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실적이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점도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은행권은 심사조직 재편과 인력배치에서도 포용보다 생산적금융에 우선순위를 둔다. 정부가 발표한 주요 전략산업의 우량기업을 선별하기 위해 전담조직을 신설하거나 외부에서 전문가를 영입하는 식이다. 앞다퉈 '신성장기업' '국가핵심산업기업' 등에 저리로 자금을 공급하는 계획도 내놓았다.
지난달 5대 은행의 전체 기업대출 잔액이 전월 대비 3조1587억원 증가하면서 5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간 것도 무관치 않다. 반면 같은 기간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780억원 늘어나는데 그치면서 사실상 정체됐다. 기업엔 돈이 더 많이 투입되지만 자영업자의 자금통로는 좁아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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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여신심사 부서에선 두 과제가 모두 필요하다는데 이견이 없지만 동시에 추진하기엔 부담이 적지 않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포용금융은 개별 사업장의 상환능력과 회복 가능성을 살펴야 하고 생산적금융은 기술성·사업성 분석 등 또다른 심사역량을 요구한다. 업무의 특성이 달라 두 축에 동시에 투입할 여력도 제한적이다.
은행권은 이런 구조가 고착화하면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지금은 생산적금융이 정책의 중심에 있으나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확대되면 "왜 포용금융을 충분히 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제기될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 모두 중요하지만 한정된 인력과 시간 안에서 두 축을 동시에 늘리는 데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며 "내년 여신전략도 생산적금융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아 두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