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금융강국코리아]⑧-<1>삼성생명 태국법인

15년 전 태국 방콕을 처음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공항에 도착할 때부터 코끝에 닿는 향신료 냄새, 알록달록한 도요타 택시로 가득한 방콕 시내, 편의점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주인 없는 개들까지. 지난달 1일 다시 찾은 방콕의 모습도 첫 방문 때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굳이 변화를 꼽자면 도심 곳곳에서 눈에 띄게 늘어난 중국산 전기차 정도였다.
다른 동남아 국가나 도시와 비교해 다른 점도 있다. 방콕에서는 유난히 국내 기업 광고판이나 한국 브랜드, 한국인들의 모습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에 같은 출장 일정으로 방문한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국내 기업 광고판이나 자동차, 한식당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만큼 태국 시장에서 국내 기업이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실제로 현지에서 만난 삼성생명 임직원들은 태국엔 삼성생명을 제외하면 제대로 규모나 조직을 갖춘 국내 금융회사가 거의 없다고 귀띔해줬다. 태국 금융당국에는 외환위기 당시 태국 법인을 정리한 국내 은행이나 금융사에 대한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사의 태국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살아남은 삼성생명도 태국 시장에선 장기간 고전했다. 삼성생명은 1997년 11월 태국에 법인을 설립해 영업을 시작한 이래 2017년 처음 흑자를 내기까지 무려 20년이 걸렸다. 특히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현지화를 위한 양적 성장 과정에서 손실이 커졌고, 한때는 매각을 추진할 정도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흑자 전환도 단순히 시장 상황이 좋아진 결과가 아니었다. 삼성생명은 개인채널 중심의 질적 성장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텔레마케팅(TM)과 단체영업 등을 차례로 정리하고 설계사 조직 경쟁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며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그 결과 태국법인은 현지 생명보험사 21개 가운데 개인채널 시장점유율을 의미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렸고 이젠 '톱3'를 넘보는 회사로 성장했다.
현지에서 경쟁하는 글로벌 보험사들이 1930년대부터 태국 시장에 진출한 점을 고려하면 초고속 성장이다. 실제 성장 속도도 태국 보험업계 평균을 크게 웃돈다. 최근 5년간 태국법인의 수입보험료는 연평균 14% 증가했다. 같은 기간 태국 생명보험업계 평균이 2%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7배 가까운 성장 속도다. 신계약 APE(연납화보험료) 역시 연평균 16% 증가하며 업계 평균을 크게 앞질렀다. 단순히 시장 성장의 수혜를 본 것이 아니라 경쟁사 점유율을 가져오며 몸집을 키웠다는 증거다.
현지에서의 위상도 달라졌다. 삼성생명 태국법인 2대 주주인 사하그룹은 방콕 킹브릿지타워를 새로 지으면서 지난해 10월 삼성생명에 사옥을 이곳으로 옮겨 달라고 제안했다. 태국 재계에서도 삼성생명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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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법인의 개인채널 기준 시장점유율은 2021년 2.9%(10위)에서 꾸준히 높아져 지난해 3.9%(7위)를 기록했다. 올해는 6.0%(5위)를 목표로 세웠고, 2028년에는 8%(3위)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지 제휴은행을 확대해 방카슈랑스를 통한 점유율을 늘려 전체 채널 기준 점유율도 7위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삼성생명은 태국 보험시장 잠재력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인구 6500만명에 달하는 동남아 경제대국 태국도 어느덧 고령화 시대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송환식 삼성생명 태국법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제 태국도 60세 이상 인구가 22%에 달한다"며 "하지만 태국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건강보험 체계가 없고 보험가입률도 저조해 앞으로 태국 시장에서 민간 보험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태국 의료시장은 국내와 달리 영리기관 중심이다. 공공의료기관도 있지만 서비스 품질 측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미 중산층 이상은 비용이 더 들더라도 민간 의료기관을 선호하는 추세다. 자연스럽게 보험 수요가 증가하다 보니 현지 보험사들 사이에서도 보장성보험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현지 설계사 쟁탈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생명 태국법인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다. 태국법인의 월간 가동 설계사는 2021년 1118명에서 지난해 1787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2712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삼성생명 태국법인은 방콕 본사 외에도 치앙마이와 컨깬, 램차방, 나컨시탐마랏 등 전국 4개 권역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설계사들이 운영하는 에이전트 오피스 120여곳을 두고 전국 영업망을 구축했다. 수도 방콕뿐 아니라 지방 중소도시까지 영업 기반을 넓히려는 전략이다.

하지만 태국 현지 설계사 관리는 국내보다 훨씬 까다롭다. 태국 보험설계사 대부분이 'N잡러'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무원도 설계사 활동이 가능하다. 실제로 삼성생명 태국법인 설계사 가운데 현직 경찰관도 있다. 설계사 대부분이 본업을 따로 갖고 있어 상품이나 서비스 교육이 필요해도 평소 근무시간에는 이들을 한자리에 모으기 어렵다.
이동훈 삼성생명 태국법인장은 "설계사들이 본업을 따로 가진 경우가 많아 교육 시간 등을 정하기가 어렵다"며 "평일에 모이기 어렵다 보니 결국 주말에 교육이 이뤄질 수밖에 없어 저를 비롯한 주재원들도 주말에 출근하는 경우가 잦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현지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면서 삼성에 대한 선호도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삼성생명은 현지에서 경력을 쌓은 설계사들을 한국으로 연수 보내고 있는데 만족도가 높아 앞으로는 젊은 설계사들까지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들은 삼성생명의 지원으로 국내 연수 기간 동안 태국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딸기농장과 스키장, 에버랜드 등을 방문한다.
방콕에서 남편과 함께 설계사 에이전트 오피스를 운영하는 나리다씨는 "한국과 삼성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이 많다"며 "저희도 삼성과 함께한다는 자부심이 크고, 앞으로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