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5주기, 아물지 않은 상처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아 남겨진 상처와 아픔, 유가족의 삶, 사회적 갈등, 재판의 현재진행형 등 다양한 시각에서 세월호를 조명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숙제와 추모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봅니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아 남겨진 상처와 아픔, 유가족의 삶, 사회적 갈등, 재판의 현재진행형 등 다양한 시각에서 세월호를 조명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숙제와 추모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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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잃은 사람을 물어 뜯었다"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수현군의 아버지 박종대씨는 2015년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악성 댓글을 달고, 아들 사진을 퍼가 조롱 글을 올린 이들을 고발했다. 잡고 보니 수현군 또래 고등학생이 있었다. 부모는 '선처를 부탁한다'고 연락해왔다. 박씨는 "자식 잃은 사람을 말로 물어뜯은 잘못은 가볍지 않다, 어려도 책임져야 한다"고 답했다. 누군가의 삶을 관통할 만큼의 슬픔을 조롱하는 현상은 흔한 것이 아니다. 과연 세월호를 향한 조롱과 혐오는 언제,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2014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가면, 희생자 304명이 타고 있던 세월호가 거의 모든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라앉았다. 국무총리·장관과 새누리당 의원들도 노란 리본을 달고 일정에 참가했다. 모두가 슬퍼했고 다 함께 추모했다. 세월호가 누군가에게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되기까진,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가 시작이었다. 온라인에 퍼지
5년. 누군가는 잊을 법한 세월이다. 하지만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는 지나가는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잡아두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우재(단원고 희생 학생) 아빠' 고영환씨(51)다. 그는 홀로 팽목항에 남아 있다. 팽목항에서 만난 추모객 손봉자씨(64)는 "나 같았으면 이미 죽고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씨가 자식 잃은 고통을 참아낸 건지, 견뎌낸 건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그는 아직까지 그곳에 있었다.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우재 아빠'로만 살았다. 세월호 참사를 알리는 행사를 준비하거나 간담회에 다니고, 목각 리본을 만드는 일이 그의 일상이다. 팽목항을 찾는 추모객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주민 일손을 돕거나 함께 소주 한 잔 기울이기도 한다. 잠시나마 세월호 기억을 잊을 수 있는 일상이다. 팽목항 한켠에 자리한 컨테이너박스는 집이 됐다. 컨테이너 박스 3칸을 이어 만든 식당이다. 꽤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던 10일 고씨는
법정(法廷)은 갈등과 분쟁에 대한 판단을 마무리 짓는 장소다. 서로의 상처가 복잡하게 얽힌 사건일수록 법정 안에서의 다툼도 치열해진다. 4·16 세월호 참사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들이 쉽게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년이 지났지만 법원에는 여전히 많은 '세월호 사건'들이 남아있다. 세월호가 남긴 상처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조작 의논 없었다"…'세월호 보고 조작' 김기춘 등 1심 공판 세월호 참사 당시 국민을 분노케 했던 정부의 대응 방식은 소송전으로 번졌다. 대표적인 게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세월호 보고 조작' 사건이다. 김 전 비서실장 등은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 보고 및 지시 시각을 조작해 국회 답변서 등 공문서를 허위 작성한 혐의로 기소됐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부장판사 권희) 심리로 1심이 진행 중이다. 13회에 걸친 공판을 이어가고 있다. 검찰은 이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실제로 보고하지
"다 끝난 줄만 알았다. 아픈 기억은 진도도 마찬가지다." 이달 10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인근에서 마주친 주민 오모씨(45)는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자 손사래를 쳤다. 팽목항은 세월호가 눈앞에서 물속으로 사라졌던 5년 전 그날처럼 바람이 매서웠다. 바뀐 것은 별로 없었다. 노란 리본이 조금 더 늘어났고, 분향소는 4·16팽목기억관으로 모습을 바꿨다. '진상규명', '전면 재수사' 같은 깃발에 쓰인 문구도 여전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풍경 속에서 무거운 표정의 조문객들이 오갔다. 팽목항과 떨어진 진도 시내도 내려앉은 분위기가 여전하다. 오랜 기간 세월호의 아픔을 함께 해 온 영향이다. 벌써 5년이 다 됐지만 진도에 덧씌워진 슬픔과 추모의 이미지는 선명했다. 변한 것도 있었다. 지난 세월 그렇게 놓지 않으려 애썼던 '기억'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다. 유족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공감해 온 진도 주민들은 '이제 더는…'이라고 나직이 말한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한동안 팽
세월호 참사 이후 5년. 모두가 한마음이던 그때와 달리 세월호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벌어진 간극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제 세월호의 흔적이 남은 경기도 안산과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에 기억공간을 설치하는 문제가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화랑유원지는 안산의 중심" vs "접근성 좋은 곳에 기억 공간 지어야"=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안산시청 앞에는 주민 40여명이 모인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4·16 생명안전공원'이 화랑유원지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이다. 지난해 2월부터 시작한 이 집회는 지금까지 99차례나 진행됐다. 이 집회의 대표격 최창식씨(48)는 "추모공간이 있으면 아무래도 암울한 분위기가 생기기 때문에 주거지 한복판에 있는 화랑유원지가 아니라 시 외곽에 있는 부지를 활용하자는 것"이라며 "시나 정부는 시민 반대 여론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억공간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가 가장 큰 갈등 요
5년 전 오늘(15일) 제주 수학여행길에 오른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4명을 포함,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인천항을 출발했다. 이튿날 오전 8시49분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304명과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세월호는 우리 사회에 커다란 외상을 남겼다. 수색과정 전후에 2명의 잠수사도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단순한 해상사고가 아니다. 18년 된 중고 여객선을 사들여온 이후 무리한 증축을 하고도, 제 기능을 못하는 안전장비를 갖춘 선사. 선사를 감독할 당국은 눈을 감았다. 배가 바닷속으로 향하던 와중에도 선내 스피커에선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가 반복됐다. 아이들이 스스로 구할 기회를 잃는 동안 승객 대피 책임을 진 선장과 선원은 갑판으로 도망 나와 자신들의 목숨만 구했다. 이제는 퇴역했지만 당시 세월호 구조작업에 참여했던 한 제독은 "선장이 배를 버리고 3등 항해사에게 조타실을 맡긴 있어서는 안될 최악의 참사였다"며 5년이 지난 지금도 안타까워했다. 본격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