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노무현 전대통령 10주기
故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를 맞아, 그의 삶과 철학, 남긴 정책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합니다. 시민의 기억, 동료들의 증언, 그리고 그가 남긴 가치와 정신을 함께 되새깁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를 맞아, 그의 삶과 철학, 남긴 정책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합니다. 시민의 기억, 동료들의 증언, 그리고 그가 남긴 가치와 정신을 함께 되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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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454일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시민 노무현' 시사회 현장엔 그리움이 가득했다. 노 전대통령이 농담을 던질 땐 그리운 웃음이, 노 전 대통령의 유서가 나올 땐 그리움의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극장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22일 저녁 서울 종로구 CGV대학로에서 열린 영화 '시민 노무현' 시사회에는 노 전 대통령의 생애 마지막 모습을 보러 온 관객 120여명이 자리를 채웠다. 영화 '시민 노무현'은 노 전대통령이 2008년 퇴임 후 김해 봉하마을에서 여생을 보낸 454일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노 전대통령의 정치 동지와 지지자, 봉하마을에서 노 전대통령과 함께 지낸 자원봉사자의 인터뷰도 담겼다. 현장은 노 전대통령을 그리워하는 관객들이 발걸음했다. 직장인 김모씨(43)는 "노 전 대통령을 못 지켜드렸다는 죄송함에 늘 마음 아프고 그립다"며 "마지막 모습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아서 관련 영화는 다 본다"고 말했다.
"서민 대통령", "바보 대통령", "누구보다 따뜻한 대통령", "시대를 앞서간 대통령"…. 22일 서울 종로구 CGV대학로에서 열린 영화 '시민 노무현' 시사회에서 만난 관객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을 어떻게 기억하세요?'라고 물었다. 각기 다른 답이 돌아왔지만 같은 감정이 묻어났다. 10년 전 세상을 떠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그리움이었다. ◇23세 대학생 박민정·오모씨="노 전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12살 초등학생이었다. 임기 때 기억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이후 대통령들에 대한 실망이 커서인지 좋게 기억한다. 대통령이라고 하면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노 전대통령은 친근한 이미지로 남아있다."(오씨)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되고 나서도 공격하는 세력이 많아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수소경제처럼 지금 생각해도 선진적인 정책을 많이 펼치셨는데 괜히 이유없이 욕을 많이 드셨던 것 같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셔서 너무 안타깝다."(박씨) ◇41세 음악인 신도영씨="투표권을 갖게
[노무현 10주기]불덩어리에서 별빛으로..盧의 가치 재조명 [the300]민주주의·평화 추구하며 금기에 도전…"통합 지향" "진짜 불덩어리네." 1988년 인권변호사 노무현, 운동권출신 이해찬은 각각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초선의원이 됐다. 13대 국회다. 두 의원은 나란히 노동상임위에서 활약했다. 이해찬 의원의 대학 후배이자 보좌관이던 유시민도 그렇게 노무현 의원을 접했다. 31년이 지난 2019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뒤를 이어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된 유시민 전 장관은 그를 "불덩어리"같았다고 회고했다. '약자'의 편에 섰던 상임위 활동은 물론, 5공청문회 등 열정적 의정활동은 다른 정당, 다른 방(의원실) 소속 보좌관의 마음도 움직였다. ◇손해 봐도 금기에 도전, 지금도 미완성=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23일 서거한지 올해로 10년. 노 전 대통령만큼 재임기간 내내 강렬한 논쟁을 일으켰던 대통령도 드물다. 현직 대
"1981년 9월 전두환 정권이 소위 '부림사건'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이것이 내 삶을 바꾸었던 바로 '그 사건' 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후 자서전 '운명이다' 속 한 대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부림사건은 삶의 전환점이었다. 부림사건을 시작으로 그는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 국가가 국민에게 누명 씌운 '부림사건'…노무현을 만나다 영화 에서도 소개된 부림사건은 5공화국 군사정권 초기 통치기반을 확보하고자 조작된 사건이다. 부산지검 공안부는 당시 부산 지역에서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회사원 등 총 22명을 국가보안법, 계엄법, 집시법 위반 혐의로 불법 체포했다.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반국가단체 행위에 해당한다며 누명을 씌운 것이다. 체포 이후 구타와 고문에 시달리던 22명은 결국 재판에까지 넘겨졌다. 부산에서 활동 중이던 변호사 노무현은 이 사건을 맡게 된다. 자원한 게 아니었다. 선배인 김광일 변호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노무현 사료관 자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김경수 경남지사가 '노무현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됐다. 올해 추도식은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지 10년째 되는 날에 열려 여느 때보다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유 이사장은 모친상을 당했다. 노무현재단 관계자는 "유 이사장이 모친상 빈소를 지켜야 해서 추도식에 참석하기 어렵다"며 "추도식에서 예정했던 이사장 인사말 등은 다른 분이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 이사장은 편지글을 남겼다. 그는 "제 어머니가 여든 아홉해를 살고 세상을 떠나셨다"며 "병상에 계셨던 지난 2년 반 동안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과 자부심을 여러차례 표현하셨다. 다시는 목소리를 듣고 손을 잡을 수 없게 된 것은 아쉽지만, 저는 어머니의 죽음이 애통하지 않다"고 전했다. 김 지사는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불린다. 그 역시 추도식에 참석하지 못한다. 23일 서울고법에서 열릴 '드루킹' 댓글 조작사건 항소심 공판에 출석
“민생은 정책에서 나오고, 정책은 정치에서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 2007년 6월 참여정부 평가포럼 강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난지 10주기가 됐지만 그와 함께 정치를 시작하고 꾸려간 이들은 아직 남아있다. 노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서 보좌하며 균형, 통합, 공정으로 대표되는 ‘노무현 정신’을 체화한 이들이다. 훌쩍 성장한 이들은 국회에서, 그리고 기초자치단체에서 법안으로, 정책으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고 실현하고 있다. 대표적인 이가 지금은 국회를 떠난 김경수 경남지사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불린 김 지사는 2016년 4월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처음 당선,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의원이 된지 2년여 만인 지난해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직을 내려놨다.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을 맡아 노 전 대통령의 끝을, 그리고 이후까지 돌본 김 지사다. ‘노무현 정신’을 체화했다. 김 지사가 의원으로 2년간 일하며 대표발의한 53건의 법안들 역시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지 10년. '노무현의 사람들'은 지난 10년 동안 따로 또 같이 '노무현 정신'을 이어 왔고, 그 정신 위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평가가 한결같지는 않지만 2019년 현 시점에서 그들은 분명 국민들로부터 새 '기회'를 얻었다. 노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새로운 기회를 받아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드러내 놓고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를 실현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2017년 5월 대통령 취임 직후 열린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노 전 대통령이 이루고자 했으나 좌절됐던 것을 다시 시작하겠다. 성공한 대통령이 돼 퇴임 후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참여정부에서 총리를 지내며 노 전 대통령과 함께 개혁정책을 펼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현재 친노 좌장으로 노무현의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지내며 노 전 대통령의 사후를 지
"진짜 불덩어리네." 1988년 인권변호사 노무현, 운동권출신 이해찬은 각각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초선의원이 됐다. 13대 국회다. 두 의원은 나란히 노동상임위에서 활약했다. 이해찬 의원의 대학 후배이자 보좌관이던 유시민도 그렇게 노무현 의원을 접했다. 31년이 지난 2019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뒤를 이어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된 유시민 전 장관은 그를 "불덩어리"같았다고 회고했다. '약자'의 편에 섰던 상임위 활동은 물론, 5공청문회 등 열정적 의정활동은 다른 정당, 다른 방(의원실) 소속 보좌관의 마음도 움직였다. ◇손해 봐도 금기에 도전, 지금도 미완성=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23일 서거한지 올해로 10년. 노 전 대통령만큼 재임기간 내내 강렬한 논쟁을 일으켰던 대통령도 드물다. 현직 대통령 최초로 국회가 탄핵을 의결했다. 대통령직은 곧 회복했지만 임기 내내 위기였다. 정책실패도 적잖다. 그는 늘 '통합'을
"문재인 실장님을 보면 노 대통령이 생각나서요." 청와대를 떠나온 지 2년. 교수이자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사무총장으로 살던 양정철이 어느날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10년 가을이다. 양정철은 '그분 대해 갖고 있는 빚, 그 분이 주고 가신 숙제를 하나씩 해 나간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한다'며 블로그의 시작을 알렸다. 스스로에게 '뉴스 셰프'라는 별명을 지어준 뒤 참여정부 인사들을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인터뷰가 바로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직전 양정철은 문 이사장을 만나 직접 정치 참여 의사를 물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후보 언론보좌관이었던 그가 문재인 곁에 서서 다시금 '킹 메이킹'을 시작했다고 평가받는 지점이다. 양정철은 문 이사장에게 "정치적으로 끊임없이 난감한 요청을 받아 왔다. 앞으로도 그럴텐데 여전히 같은 원칙을 갖고 계신건지" 물었고, 문 이사장은 "네"라고 단답형으로 답했다. 짧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난 지 10년. 그의 잔상은 곳곳에 남아있다. 그 당시, 관철되지 않았기에 '실패'로 치부됐던 일부 정책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숨을 얻고 있다. ◇2004년 발의된 공수처법, 15년後=노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검찰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그 방안으로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도입을 적극 추진했다. 공수처는 대통령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과 청와대 고위직, 국회의원, 장·차관, 판·검사 등 고위공직자 권력형 비리를 감시하는 별도 수사기관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등으로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2004년 11월 정부안으로 '공직 부패 수사처' 설치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당시 국회는 이 법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1월27일 삼성비자금 의혹 특검법안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를 지적했다. 그는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하기 어려운 사건도 있을 수 있으므로 공수처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난 대선 때 각 당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이념'보다 '국익'을 앞세웠던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외교' 정책이다. 2003년 2월 참여정부 출범 당시 한반도 외교·안보 환경은 '제2차 북핵 위기'로 먹구름이 가득 했다. 2002년 10월 방북한 제임스 켈리 당시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에게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고 시인하면서 전쟁까지 거론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2001년 9·11 테러 직후인 2002년 취임한 조지.W. 부시였다. 부시 행정부엔 현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을 이끌고 있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네오콘(신보수주의자)과 슈퍼 매파들이 가득했다. 군사력 등 하드파워(hard power)를 동원해야 한다는 '전쟁 불사론'도 들끓었다. '북핵 문제' 해결이 막 출범한 노무현 정부의 최대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대선 후보 시절 노 전 대통령이 "모든 것을 깽판 쳐도 남북관계만 잘 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