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영' 신화 김우중 회장 별세
한국 경제 발전과 세계 경영의 신화를 이끈 故 김우중 회장의 삶과 업적, 그리고 그를 기억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추모와 평가를 통해 한 시대를 조명합니다.
한국 경제 발전과 세계 경영의 신화를 이끈 故 김우중 회장의 삶과 업적, 그리고 그를 기억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추모와 평가를 통해 한 시대를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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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장례 이틀째인 11일에도 고인을 추모하는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등이 이날 오전 빈소를 찾았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은 오전 8시50분 쯤 재계 인사들 중 가장 먼저 조문을 했다. 아들 박준경 금호석화 상무와 딸 박주형 상무도 함께했다. 금호석유화학그룹과 대우그룹은 사돈지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박 회장의 친형인 고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장녀 박은형씨가 김우중 회장의 차남 김선협 포천아도니스 사장과 결혼했다. 박 회장은 조문 후 ""(고인을)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라면서도 "형님과 사돈지간이라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김 전 회장은)우리나라 재계의 큰 인물이었는데 (돌아가셔서)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의 친형인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아직 빈소를 찾지 않았다. 다만 박삼구 회장의 아들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이 전날 장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연맹 회장은 10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대해 "과거 압축성장 시기를 대표하는 경영인"이라고 회고했다. 손 회장은 이날 오후 경기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 전 회장의 빈소를 찾아 "우리 경제를 오늘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하셨다"며 이같이 말했다. 손 회장은 김 전 회장과의 인연에 대해 "(김 전 회장이) 고등학교 2년 선배"라며 "(재학 당시) 완장을 차시고 지각하면 야단도 치고 하셨다"고 전했다. 손 회장은 또 "(김 전 회장이) 젊은 시절 일할 땐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박력있게 일하셨는데 이제는 가셔서 쉬셔야 할 것 같다"고도 말했다. 손 회장은 대우그룹을 재평가해달란 취재진의 요구엔 "좋은 회사들이 (대우그룹에) 많았는데 일시적으로 어떻게 되는 바람에 무너져서 마음이 참 안됐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손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증인 신문에 대한 질문엔 "그것에 대해선 말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한국 자동차사(史)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옛 대우차의 전신은 1955년 설립된 신진자동차공업이다. 미군 차량을 개조하던 신진자동차공업은 1963년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하고 신진자동차로 사명을 바꿨다. 미국 GM과 합작해 GM코리아를 설립한 신진자동차는 경영위기로 1976년 산업은행 관리 아래로 들어갔다. 1978년 김 회장의 대우그룹이 이 회사를 인수하며 대우차 역사가 본격 시작됐다. 르망과 티코, 누비라로 대표되는 사명 대우차는 1983년부터 사용했다. 대우차는 협력 관계에 있던 GM 산하 오펠이 개발한 카데트 E를 기반으로 1986년 르망을 생산·판매했고 현대차 포니 시리즈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88 서울올림픽 이후 '마이카 시대'가 열리자 국민차를 목표로 한국 최초 경차인 티코를 1991년부터 판매해 파란을 일으켰다. 라노스(소형), 누비라(준중형), 레간자(중형)는 1996년 이후 모두 개발·출시됐고 그즈음 건립된 군산 공장은 '세계경
'세계경영'을 기치로 한때 대우그룹을 재계 2위까지 올려놓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장례는 고인의 뜻을 따라 소박하고 차분하게 진행됐다. 10일 오전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엔 김 전 회장의 가족과 옛 대우그룹 관계자들이 아침 일찍부터 나와 조문객을 맞을 준비를 했다. 장례는 천주교식 가족장으로 진행됐으며, 유족들은 조의금도 받지 않았다. 빈소엔 고인과 함께 동시대를 풍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비롯해 각계에서 보내온 근조화환이 속속 도착했다. 영정 옆으로는 김 전 회장이 다녔던 성당에서 보낸 근조기가 걸렸으며 위패에는 김 전 회장의 세례명인 '바오로'가 함께 쓰였다. 이날 오전부터 재계와 정계 등 사회 각계의 조문이 이어졌다. 첫 조문객으로는 박형주 아주대 총장이 다녀갔으며, 장영수 전 대우건설 사장,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 추호석 전 대우중공업(현 대우조선해양) 사장, 김석환 전 대우자동차 사장 등 전현직 '대우맨'들이 일찍
옛 대우차(한국GM), 옛 대우인터내셔널(포스코인터내셔널),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등 대우그룹의 유산은 여전히 우리 산업 곳곳에 남아있다. 고(故) 김우중 전 회장이 이끌던 대우그룹은 한때 우리나라 재계 서열 2위까지 올랐지만, 2000년 4월 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우'라는 한 지붕 아래 있던 계열사들은 새 주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대우그룹은 김 전 회장이 1967년 3월22일 설립한 섬유 회사 대우실업에서 출발해 국내 최대 규모급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내쇼날의류 등 섬유회사, 대우증권의 전신인 동양증권 등을 인수하고 대우건설, 대우중공업 등을 설립하며 금융과 전자, 중공업 등 분야로까지 몸집을 불렸다. 이후 대우그룹은 1981년 대우개발과 대우실업을 합병해 ㈜대우를 출범시켰고, 1983년에는 GM이 합작해 설립한 새한자동차를 인수해 대우자동차로 자동차 사업에도 발을 넓혔다. 1990년대 대우그룹의 영토는 해외시장으로 확대됐다. 무
"김우중 회장은 가족이자 스승, 위대한 기업인이었다." 지난 9일 밤 숙환으로 별세한 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옛 '대우맨'들은 이렇게 기억했다.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사장은 10일 오전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에 차려진 김우중 전회장 빈소를 조문해 "김우중 회장님은 가족 같기도 하고 큰 스승이기도 하다"며 "엄격하지만 자상했던 분"이라고 전했다. 김 전사장은 "예전 홍콩 출장을 갔을 때 새벽 4시에 책을 보고 계신 걸 봤다"며 "아침 회의가 8시인데 지금 자면 못 일어 난다고 책을 보셨는데 아마 차에서 5분, 10분씩 그렇게 성실하게 하신 것"이라고 고인을 추억했다. 이어 "고인이 살아계셔서 계속 경영 활동에 나섰다면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한국 사회와 경제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셨을 것"이라며 "그 분만한 위대한 기업인, 애국인은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대우그룹 해체 직전 구조조정본부 상무였던 김용호 한국GM 사외이사(전 GM대우 재무본부장)도 김 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9일 밤 11시50분 숙환으로 별세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김 전 회장의 수행비서로 지낸 정인섭 한화에너지 대표가 추모의 글을 남겼다. 정 대표는 10일 페이스북에 "베트남 하노이에 출장을 나왔는데 새벽 시간 잠이 깨 한국뉴스를 확인해보니 김 전 회장님의 이름이 검색순위 1위인 것이 보였다"며 "회장님이 떠났다는 걸 순간적으로 깨달았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25년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며 "1995년 9월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다른 나라를 와본 것이 베트남 하노이였고, 지금 내가 묵고 있는 이 호텔이 숙소였다. 회장님의 수행비서로 처음 해외 출장을 나와 오늘 내가 묵고 있는 이 호텔에서 숙박을 하기로 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소탈했던 생전 김 전 회장의 일화의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그런데 저녁 식사를 하다 우리 회사 직원들의 숙소로 지은 아파트가 있다는 얘기를 들으시더니 그 숙소에서 자겠다며 숙소를 바꾸라고 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이 10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한국 경제의 산업화와 세계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해체 직전이던 1998년 9월부터 1999년 10월까지 전경련 회장을 맡았다. 다음은 허 회장이 남긴 추도사 전문이다. 대한민국을 세계로 이끄신 김우중 회장님을 기리며 김우중 회장님 먼 곳에서 들려온 애통한 소식에 밀려드는 슬픔을 주체할 길이 없습니다. 늘 재계의 큰 어른으로 남아 계시리라 믿었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한국경제를 지켜 주실 것만 같았습니다. 이렇게 황망히 저희 곁을 떠나시니 애달픔과 안타까움만 남아 허전함이 더해가는 하루입니다. 돌이켜보면 앞날을 먼저 내다보시고 앞서 가신 회장님이 떠오릅니다. 만 30세, 가난이 당연했던 그 시절, 기업을 손수 일구시고 해외를 무대로 글로벌 기업을 키우셨습니다. 가장 먼저, 가장 멀리 세계로 발을 딛으시고는 몸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별세했다. 김 전 회장은 생전 베트남을 '제2의 고향'으로 부를 만큼 베트남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현재 베트남에선 한국인 축구감독 '박항서 열풍'이 한창이지만 그에 앞서 베트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고 김 전 회장이다. 김 전 회장은 1986년 당시 공산당 일당 체제하의 베트남이 '도이 머이'(개방) 정책을 채택하고 추진하는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베트남의 개방정책 이후 적극적으로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고 대규모 투자를 한 기업이 바로 대우였다. 김 전 회장은 현재 한국 기업의 베트남 시장 진출의 초석을 닦아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베트남은 연 7%대 고성장을 이뤄냈고 이로 인해 위상과 기반을 쌓은 김 전 회장은 베트남 최고위층과 두터운 인맥을 쌓았고 정관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우리은행 호찌민 초대 지점장과 금호타이어 사장을 지냈던 베트남 전문가 한용성 케이프투자증권 고문은 김 전 회장에 대해 "저개발국가에서 백년대계의 구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에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고 10일 밝혔다. 경총은 "김 전 회장은 세계 경영을 내다보는 선견지명과 해외수출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대우그룹을 국내 정상으로 이끌었다”며 "한국이 자동차·조선·중공업 산업 분야에서 고도화의 내실을 다지고, 세계적인 수출국가의 대열에 합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고인은 일선 기업현장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후임 청년사업가 양성에 힘쓰며 기업가로서 모범을 보여 줬다”며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에 대한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전했다. 경총 관계자는 “고인의 기업가정신과 경영철학,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헌신을 이어 받아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산업 고도화를 통한 국가경제 발전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세계 속의 큰 집'을 만들겠다는 꿈을 좇다가 자신이 일궈놓은 대우그룹의 몰락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국민 경제에 많은 기여를 한 점, '세계경영'의 꿈은 실현하지 못했지만 그 정신은 경제발전에 일조한 점, 지금은 비록 죄인의 처지로 법정에 섰으나 국민 대부분이 아직 피고인을 국가 위상을 높인 훌륭한 기업인으로 기억하는 점 등을 감안해 형을 감경했다." ━2006년 11월 3일, 서울고법의 한 법정. 당시 형사4부 석호철 부장판사는 이날 법정에 출석한, 이제는 고인이 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역대 최대 부도를 낸 피고인이지만, 세계경영을 기치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기업인으로서의 업적을 재판부가 감경요소로 인정한 셈이다. 향년 83세를 일기로 지난 9일 세상을 떠난 김 전 회장이 받은 최종 형량은 징역 8년 6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의 회전신용장 보증사기 혐의에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지난해 8월 말부터 건강 악화설이 돌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오후 11시 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김 전 회장의 빈소는 지난해 12월 말부터 장기 입원해오던 경기도 수원 아주대학교 병원에 차려졌다. 김 전 회장은 왜 아주대 병원을 찾았을까. 거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아주대와 김 전 회장의 인연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전 회장은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차원에서 육영사업에 큰 뜻을 품고 학교법인 대우학원을 설립했다. 이후 대우학원은 1977년 3월 아주공과대학을 인수했다. 자신의 사재 53억원을 출연한 말 그대로 사회환원 차원이다. 특히 수원 아주대병원도 대우학원이 1994년 개원한 병원이다. '세계경영'의 상징으로 떠오르는 김 전 회장이 인재육성을 위해 아주대에 공을 들인 만큼 대우그룹과 함께 성장해온 곳이라는 얘기다. 김 전 회장은 이후에도 사회환원 사업에 많은 기여를 하기도 했다. 1980년에는 옥포조선소가 있던 경남 거제에 학교법인 지성학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