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 LG 명예회장 별세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LG그룹을 이끌며 정도경영과 인화상생의 가치를 실천한 한국 산업계의 큰 별입니다. 그의 별세 소식과 함께 각계 인사들의 추모와 업적을 조명합니다.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LG그룹을 이끌며 정도경영과 인화상생의 가치를 실천한 한국 산업계의 큰 별입니다. 그의 별세 소식과 함께 각계 인사들의 추모와 업적을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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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별세 소식에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고 14일 밝혔다. 경총은 "구 명예회장은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 국토는 작지만 기술 경쟁력이 뛰어난 나라)이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그룹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화학·전자 산업의 중흥을 이끌었다"며 "한국경제 성장의 밑거름을 닦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했다. 이어 "고인은 일선 기업 현장을 물러나면서 후대에 경영혁신 정신을 남겼다"며 "은퇴 이후 교육·사회공헌 활동에 힘쓴 모습은 지금까지도 많은 기업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경총 관계자는 "경영계는 고인의 기업가정신과 경영철학,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헌신을 이어받을 것"이라며 "우리 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고 지속적인 국가 경제발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구 명예회장은 이날 오전 10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고(故) 구인회 창업 회장의 장남으로 그룹 2대 회장을 지낸 구 명
14일 향년 94세로 별세한 고(故)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누구보다 소탈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간적인 삶을 살았던 것으로 LG 안팎에서 회자된다. 1925년 경남 진양군(현 진주시)에서 LG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회장 슬하의 6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유가(儒家)의 엄격한 가풍 속에서도 실사구시를 중시한 능성 구씨 집안의 후손으로 자라면서 리더로서의 역할과 책임의식을 쌓았다. 유림에서 존경 받던 증조부 만회 구연호(晩悔 具然鎬) 공과 외유 내강형의 선비로 유교의 전통과 신문화의 합리적 사고를 함께 지녔던 조부 춘강 구재서(春崗 具再書) 공의 가르침을 받으며 유년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당시 구 명예회장의 장래 희망은 교사였다. 지수초등학교를 다닐 때 과학을 접목한 농경법을 가르친 선생님의 영향으로 자연 친화적인 삶이 중요하다는 것과 교사의 길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후 진주중학교의 '희망'을 주제로 한 작문 시험에서 교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것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10시쯤 별세했다. 향년 94세. 1925년생인 구 명예회장은 고 구인회 창업 회장의 장남으로, 1970년부터 25년간 2대 회장으로 그룹을 이끌었다. 구 명예회장은 생전 '강토소국 기술대국' 신념을 갖고 연구개발에 앞장서 화학·전자를 중심으로 한 산업강국으로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한 언론인터뷰에서 "생산기업을 시작하면서 항상 마음에 품어온 생각은 우리 국민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제품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본인이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경영 철학에 대해 "첨단 산업 분야에서 제품 국산화를 통해 산업 고도화를 선도할 것이고, 부단한 연구개발을 통해 기업 활동의 질적인 선진화를 추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 기술로 우리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겠다는 사명을 갖고 1976년 민간기업 최초로 금성사에 중앙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재임기간 70여개의 연구소를 설립해 기술 수준을 도약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4세. LG는 구씨, 허씨로 엮여진 데다 대대로 자손이 많아 국내 재벌 중 가계도가 가장 복잡한 집안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특유의 유교적 가풍을 이어가며 잡음 없는 장자 승계 원칙을 지켜왔다. LG의 장자 승계 원칙은 1970년 당시 고인의 취임에서부터 시작됐다. 1969년 12월31일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났을 당시엔 함께 그룹을 일궈온 구철회 당시 '락희화학' 회장 등 형제들이 즐비했다. 구철회 회장은 구인회 회장 별세 다음해인 1970년 1월 럭키그룹 시무식에서 장조카인 구자경 당시 금성사 부사장을 그룹 회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경영일선에서 퇴진했다. 그룹 '장자승계' 전통의 시위가 당겨진 셈이다. 구자경 회장은 이후 25년간 LG그룹을 이끌며 전자와 화학을 중심으로 성장 기틀을 마련했다. 구 회장은 70세가 되던 1995년 1월 럭키그룹의 사명을 LG그룹으로 바꾸고 그해 2월 그룹 총수
25년 정도경영과 20년의 사회공헌.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사진)은 마지막 순간까지 소박한 여정을 선택했다. 구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10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LG그룹은 이날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구 명예회장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조용하게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빈소와 발인 등 구체적인 장례 일정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조문과 조화 역시 사양하기로 했다. 구 명예회장은 럭키금성그룹을 오늘날의 글로벌 LG그룹으로 이끈 선장이자 조타수로 평가받는다. 25년 동안 전자와 화학을 중심으로 한 LG그룹의 성장 기틀을 마련했다. 경영을 맡았던 1970년 260억원대였던 그룹 매출은 1995년 장남인 고 구본무 회장에게 총수 자리를 물려줄 때 30조원대로 성장했다. 종업원은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늘었다. 누구보다 현장을 잘 알았던 기업가로 불린다. 만 25세 때인 1950년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이사로 취임하면서 경영에 참여해 십수년 동안 주
LG그룹은 14일 오전 10시경 숙환으로 별세한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향년 94세. LG는 이날 "고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최대한 조용하고 차분하게 치르기로 결정했다"며 "유족들이 온전히 고인을 추모할 수 있도록 별도의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하며, 빈소와 발인 등 구체적인 장례 일정도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했다"는 뜻을 전했다. 구 명예회장은 고 구인회 창업 회장의 장남으로 그룹 2대 회장을 지냈다. 1970년 45세로 LG그룹 회장에 올랐으며 25년간 그룹을 이끌었다. 지난해 별세한 고 구본무 회장의 부친이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14일 향년 94세로 타계하면서 1990년대까지 한국 경제를 이끈 재계 거목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구 회장은 이날 오전 10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지난 9일 세상을 떠난 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비보 이후 5일 만이다. LG 창업주 고(故) 구인회 회장의 장남인 구자경 명예회장은 1969년 말 부친이 타계하자 이듬해 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이후 25년간 그룹을 이끌었고 1995년 장남인 고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 총수 자리를 승계한 후 경영현장을 떠났다. 퇴진 후엔 충남 천안 연암캠퍼스 근처 농장 연구소에서 전통식품 개발과 난(蘭)과 분재, 버섯을 재배하며 소탈한 삶을 살았다. 앞서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초석과 함께 남북 민간 경제교류의 발판을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2001년 3월 86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정주영 명예회장과 자웅을 겨룬 창업 1세대 인사들로는 고 구인회 LG 명예회장을 비롯해 고 이병철 삼성
14일 별세한 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명예회장의 6남 4녀 중 장남으로 1925년 태어났다. 1945년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5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다 1950년 LG그룹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이사로 취임했다. 1969년 부친인 구인회 명예회장이 별세하고 다음해인 1970년 그룹 회장을 맡았다. 70세인 1995년 1월 그룹명을 럭키금성그룹에서 LG그룹으로 바꾸고 같은 해 2월 장남인 고 구본무 회장에게 총수 자리를 물려줬다. 25년 동안 LG그룹을 이끌면서 전자와 화학을 중심으로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 2015년까지 LG복지재단 이사장직을 유지하면서 사회공헌활동을 이어왔다. 슬하에 장남인 고 구본무 회장을 비롯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전 LG그룹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 6남매를 뒀다. 부인 하정임 여사는 2008년 1월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