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 별세
기업가 정신과 리더십, 그리고 한 시대를 이끈 인물의 삶과 업적을 조명합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도전과 성장, 사회에 남긴 영향과 유산을 다양한 시각에서 깊이 있게 다룹니다.
기업가 정신과 리더십, 그리고 한 시대를 이끈 인물의 삶과 업적을 조명합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도전과 성장, 사회에 남긴 영향과 유산을 다양한 시각에서 깊이 있게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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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마지막 남은 '창업 1세대'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장례 사흘째인 21일 시민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이날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신 명예회장의 빈소에는 그의 타계를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잇따랐다. 이날 오전 11시40분쯤 송파구에 거주하는 주민 신모씨(72)는 눈물을 글썽이며 신 명예회장의 빈소 근처를 맴돌았다. 신씨는 "타계한 신 명예회장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찾아왔다"고 말했다. 신씨는 "빈소에 들어가서 신 명예회장의 얼굴을 보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며 "그냥 이 근처에서 절만 하고 갈 것"이라고 밝혔다. 신씨는 "소위 '한강의 기적'을 이룬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에 이어 신 명예회장까지 모두 돌아가셨다"며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분들 덕에 얼마나 우리가 잘 살게 됐는지 모른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 명예회장 등의 공로가 없었다면, 지금도 남자들은 사우
"뉴욕에 롯데월드를 만들고 가셨어야했는데…" 지난 19일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향년 99세로 타계한 가운데 '50년 지기' 쇼 오쿠노 오쿠노디자인연구소 회장이 신 명예회장을 회고했다. 쇼 회장은 21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고인의 업적과 고인과의 인연 등에 대해 설명했다. 쇼 회장은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롯데월드와 소공동에 위치한 롯데호텔을 비롯해 롯데 산하의 40여개 건물 설계 디자인을 담당했다. 그는 "돌아가신 신 명예회장과는 50년 정도 서로 알고 지냈다"며 "50년 전 내가 도쿄 롯데에서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인연이 시작됐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신 명예회장은 인간적 친밀감이 넘치고 따뜻함이 있으면서도, 슈퍼맨 같고 위대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쇼 회장은 그러면서 '소공동 롯데호텔'이나 '잠실 롯데월드' 등이 그 위대함의 사례였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롯데는 '반도호
재계의 마지막 남은 '창업 1세대'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장례 사흘째인 21일에도 각계 인사들의 조문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11시10분쯤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신 명예회장의 빈소에는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 명예회장이 한정후견 판결을 받은 후 사단법인 선에서 그의 간병과 재산권 행사 등 의사결정을 맡았는데, 강 전 장관은 사단법인 선의 이사장을 맡은 인연이 있다. 강 전 장관은 신 명예회장 타계에 대한 소감 등을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이 같은 인연으로 빈소를 찾았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갈음했다. 이어 구광모 LG 회장이 재계의 마지막 남은 '창업 1세대'였던 신 명예회장의 타계를 애도하는 차원에서 이날 오후 12시15쯤 빈소를 찾았다. 구 회장은 권영수 LG 부회장과 함께 빈소에 들어가 10분쯤 머물렀다. 담담한 표정의 구 회장은 "마지막까지 일선에서 활동한 성공한 경영자인 신 명예회장에 대한 특별한 소회가 있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모자가 '유통 맞수'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 회장과 정 부회장은 21일 오후 2시쯤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신 명예회장의 빈소를 방문했다. 이 회장과 정 부회장은 신세계 그룹의 대표급 임원 10여명과 함께 빈소로 들어가 조문하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임원들은 조문을 마치고 금방 빈소를 빠져나왔지만 이 회장과 정 부회장은 45분간 장시간 빈소에 머무르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유가족을 위로했다. 이 회장과 정 부회장의 이번 조문은 롯데와 신세계라는 라이벌 구도 속에서 그동안 한국 유통산업의 발전을 이끌어온 고인에 대한 예우를 나타내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롯데와 신세계는 국내 '2대 유통 대기업'으로 그동안 백화점, 대형마트, 아울렛 등 유통업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해왔다. 최근 수년간은 호텔 부문에서도 경쟁을 펼쳤다. 이 회장은 조문 후 기자들과 만나 "(신 명예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고(故) 신격호 롯데 창업주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며 유가족이자 '영원한 유통 맞수'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위로한다. 정용진 부회장은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장례식 사흘째인 21일 오후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할 예정이다.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은 대한민국 유통산업의 영원한 라이벌이어서 두 총수간의 만남이 주목된다. 신 명예회장이 '유통거인'으로 불리는 만큼 한국 유통업계 경영자 후배들의 조문이 잇따르고 있다. 대외 행보를 자제해 온 총수들도 오랜만에 모습을 비추었다. 전날 오전 '유통 빅3' 중 하나인 현대백화점의 정지선 회장이 먼저 빈소를 조용히 찾아 조문했다. CJ그룹에선 이재현 회장과 손경식 회장이 각각 찾아 고인의 넋을 기렸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하신 거인을 잃게 돼 안타깝다"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 회장 자격으로 찾은 손 회장은 "신 명예회장
경상남도 울산 출신 고(故) 신격호 롯데 창업주가 고향 땅에 잠들게 된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지난 19일 오후 4시 29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신 명예회장은 지난해 12월 18일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했으며 고령으로 인한 여러 증세를 치료하던 중 지난 18일 병세가 급격히 악화해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를 받아오다 영면에 들었다. 빈소에선 신 명예회장의 평생 숙원사업이었던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한 눈에 보인다. 장례는 롯데그룹의 창업주인 고인을 기리고자 그룹장으로 진행됐다. 명예장례위원장은 이홍구 전 국무총리,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장례위원장은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 송용덕 롯데지주 대표이사가 맡았다. 국내외 주요 정·재계 인사들이 잇따라 조문하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오는 22일 오전 6시 발인 후 한 시간 뒤인 오전 7시 서울 롯데월드몰 8층 롯데콘서트홀에서 영결식이 열린다. 장지는 울주군 선영에 마련됐다. 신 명예회장은 경상남도 울산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에서 192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정세균 국무총리가 나란히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빈소를 찾았다. 황 대표와 정 총리는 20일 오후 8시 46분쯤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등장했다. 15분여간 조문을 하고 먼저 나온 정 총리는 "(고인과) 잘 안다. 산업자원부에 있을 때 함께 대화하고 가르침을 받곤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유능한 기업인"라며 "국내가 아니고 외국에서 그런 성공을 거두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존경했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다음 세대도 고인과 같은 의지로 대한민국 미래 산업을 잘 가꿔나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나온 황 대표도 "고인뿐 아니라 고 정주영 현대 회장, 고 이병철 삼성 회장 등 초기에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애쓰신 분들 얘기를 나눴다"며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 큰 기여를 하셨고 이만큼 살게 된데는 기업들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이분들 뜻을 잘 받들어 부
롯데그룹 창업주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 빈소를 사실혼 관계에 있는 세 번째 부인 서미경 씨가 19일 밤 조문하면서 두 사람의 딸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983년 생인 신유미 고문은 신 명예회장의 2남 2녀 중 막내다. 서울 서초구에 주소를 두고 있지만 공식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현재 신 고문이 소유한 롯데 관련 주식은 △코리아세븐 50만7174주(1.37%) △롯데쇼핑 2만5811주(0.09%) △롯데지주 4만2254(0.04%) △롯데칠성음료 770주(0.01%) △롯데푸드 3787주(0.33%) 등이다. 비상장인 코리아세븐을 제외한 나머지 주식을 20일 종가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67억원이다. 코리아세븐의 경우 개인간 거래가 거의 없어 정확한 가치를 따질 수 없지만, 일부 나온 매도 호가인 4만3000원을 보유 주식수로 환산하면 약 218억원에 이른다. 다만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이 지난달 코리아세븐 148만6631주를
'유통 거인'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빈소에 국내 유통업계 총수들이 대거 모였다.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장례식 이틀째인 20일 오전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이 먼저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CJ그룹 손경식 회장도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 회장 자격으로 조문했다. 손 회장은 "고 신 명예회장을 원래 존경해왔다며 "우리에게 전설적인 기업인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두 유통 거물에 이어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박근희 CJ그룹 부회장 등 주요 경영진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이 회장은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부축을 받아 빈소에 들어섰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하신 거인을 잃게 돼 안타깝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도 허진수 SPC그룹 글로벌BU장 등과 함께 빈소를 찾아 “경제 성장과 산업 발전에 헌신한 신격호 명예회장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고인은 국내 식품과 유통산업의 기반을 닦고 세계적인 기업으
"첫째 현장을 많이 둘러봐라. 둘째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 책임은 내가 진다."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이 "저에게 항상 하시던 말씀"이라며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을 추억했다. 황 부회장은 20일 오전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창업자께서는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기업을 일으킨 굉장히 훌륭한 분"이라고 말했다. 황 부회장은 "(고 신 명예회장이) 저한테 항상 하시던 말이 '너 가봤어?'였다"고 했다. 그는 "인도 시장이 장래성이 있고 빨리 진출하고 싶은데, 저희가 느리니까 가봤느냐고 물어봤다. 그러면서 인구가 많으니 빨리 진행하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또 "사업을 하다보면 머뭇거릴때도 있는데, 끝까지 해보자. 잘할 수 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황 부회장은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 잘 안 된 것에 대해선 본인이 다 책임을 졌다"고 했다. 황 부회장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기업이 어려워질때도 본인이 돈을 내서 어려운 기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의 타계로 롯데그룹 주가가 요동쳤다.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상속세 마련을 위해 지주사 등 주요 계열사들의 배당을 늘리고 사업을 본격 확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롯데 유족들 입장에선 상속세가 주가에 따라 변동되는 만큼 주가상승이 부담스러울 것이란 시각도 제기된다. 20일 유가증권시장에서 롯데그룹 계열사 대부분은 주가가 크게 요동쳤다. 롯데지주(우선주)는 전일 대비 1만7300원(29.88%) 오른 7만52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 마감했다. 롯데지주 보통주는 장 중 19% 이상 올랐다 주가가 크게 밀리며 전일 대비 2050원(5.14%) 오른 3만77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주사를 제외한 계열사들은 장 초반 크게 오른 뒤 급락하는 등 변동 폭이 심했다. 롯데제과는 이날 오전 장 중 8.28%까지 올랐으나 이후 급락해 전일 대비 500원(0.34%) 하락한 14만4500원에 마감했고, 롯데칠성은 10.23%까지 올랐지만 상
"관광산업의 외화가득률은 90%가 넘습니다. 제조업만 좋은 것이고 호텔이나 음식점을 하면 좋지 않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관광업이나 유통업도 농사나 수출에 못지 않게 필요한 사업입니다. 잘못된 편견은 버려야 합니다." 단돈 83엔으로 시작한 껌사업으로 롯데를 재계 서열 5위까지 끌어올린 고(故)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은 유통산업의 거목으로 불리지만 관광 불모지 서울의 수준을 끌어올린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기업을 통해 고국 근대화에 일조하겠다는 소신을 가졌던 신 명예회장의 보국안민 정신은 유통 뿐 아니라 관광개발사업에서도 꽃을 피웠다. ━①"한국을 찾도록 만드려는 노력 하자"━197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신 명예회장에게 호텔 사업을 맡겼다. 제조업 같은 무게감 있는 산업과 달리 전망이 불투명한 분야였지만 신 명예회장은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든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시 우리나라를 찾도록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호텔진출을 선언했다. 1973년 롯데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