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사망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망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적 반응, 정치권 인사들의 입장, 언론 보도, 그리고 역사적 평가 등을 다룹니다. 각계각층의 시각과 논란, 그리고 남겨진 과제까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망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적 반응, 정치권 인사들의 입장, 언론 보도, 그리고 역사적 평가 등을 다룹니다. 각계각층의 시각과 논란, 그리고 남겨진 과제까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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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씨가 끝내 5·18 유족들에 대한 사과 없이 23일 사망했다. 민간인 유혈사태를 일으킨 주범이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는 면에서 정치권은 한 달 전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때와 다른 반응을 내놓고 있다. 전씨를 주축으로 한 하나회는 10·26 사건 직후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하나회는 시국이 혼란해지자 수습을 명목으로 비상계엄을 전국 확대했다. 이때 구금된 학생·정치인·재야 인사 등이 총 2699명이다. 이에 맞서 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펼쳐졌고 전씨는 유혈진압에 나섰다. 5·18 민주유공자유족회가 2005년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5·18로 인한 사망자는 총 606명이다. 그해 8월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된 전씨는 개헌으로 12대 대통령까지 역임했다. 전씨는 1987년 '4·13 호헌조치' 발표 이후 다시 국민적 공분을 샀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 후인 1988년 11월23일 전씨는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고 내설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윤상원 열사와 함께 최후 항전을 결의했던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씨가 등장했다. 박 전 실장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의 유족을 만난 뒤 "이제 지역·계층·정치세력들이 대한민국을 위해서 화해하고 화합하고 용서했으면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박 전 실장은 23일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조문도, 애도를 표할 뜻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박 전 실장은 이날 머니투데이에 "본인이 잘못을 깨닫고 사죄를 구한 노 전 대통령과 전씨는 상황 자체가 다르다"며 "절대로 슬픔을 애도할 뜻이 없으며 조문을 할 생각도 전혀 없다"고 밝혔다. 박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의 조문에는 전씨를 비롯한 다른 5·18 유혈진압 관련 인사의 참회를 기대하는 측면 역시 있었다"며 "반드시 5·18 유혈 진압의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고 했다. ━"수차례 사죄한 노태우와 말 없이 숨진 전두환은 달라"━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운구 차량이 23일 오후 3시쯤 서울 연희동에 있는 자택에서 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출발했다. 이날 오전 9시쯤 전 전 대통령이 사망한 지 6시간 만이다. 전 전 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상조회사의 검은 운구 차량은 이날 오후 3시쯤 서울 연희동에 있는 전 전 대통령의 자택을 빠져나갔다. 시신은 빈소가 차려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진다. 빈소는 일찌감치 신촌 세브란스로 정해졌으나 신촌 세브란스에 이날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병원 직원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문제 때문에 운구가 늦어졌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55분쯤 자택에서 숨졌다. 전 전 대통령은 최근 건강 상태가 악화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8시55분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90세. 12·12 군사 반란을 통해 정국을 장악하고 계엄령을 선포한 전 전 대통령은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하는 등 대한민국에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했다. 하지만 1980년대 '경제성장', '물가안정'을 동시에 이뤄내는 등 경제 성과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집권 기간 매년 10% 이상 경제 성장률 기록...국보위 출신 김재익 발탁━실제 1980년 한국의 연간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1.6%였다. 이후 전 전 대통령 집권 기간(1980년9월~1988년2월) 동안 대한민국은 81년(7.2%), 82년(8.3%), 85년(7.8%)을 제외하고 매년 10% 이상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인 것은 맞다. 1981년 21.4%에 달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83년에는 3.4%까지 떨어졌다. 이 때 최저임금법 제정에 이은 최저임금위원회 설립,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을 통해 '중산층'이 대거 등장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정확한 사인(死因)에 관심이 쏠린다. 공식 발표가 나지 않았지만 숙환인 다발성 골수종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5년 상대 생존율이 약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위험한 질병이다. 12·12 군사 쿠데타 동지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장기간 소뇌위축증이라는 희소병을 앓다가 별세했다. ━전두환이 앓았던 '다발성 골수종'… 5년 생존율 약 절반━경찰에 따르면 전씨는 23일 오전 8시55분쯤 자택에서 숨졌다. 부인 이순자씨가 화장실에서 쓰러진 전씨를 발견했고 경호팀이 이를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시신은 현재 자택에 안치 중이며 이날 오후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송될 예정이다. 고인의 사인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지병으로 앓았던 다발성 골수종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전씨는 고(故) 조비오 신부 명예 훼손 관련 재판에 출석한 지난 8월 수척한 모습으로 나타나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다. 이후 전씨는 세브란스 병원에 입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23일 별세한 고(故) 전두환씨의 상가를 조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조문하지 않겠다고 밝혀 국민의힘은 대선 후보와 당 대표 모두 전씨 상가를 찾지 않는다. 윤 후보 측은 이날 오후 기자들에게 "전직 대통령 조문과 관련해 윤석열 후보는 조문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공지했다. 이는 윤 후보가 앞서 밝힌 입장과 배치되는 결론이다. 윤 후보는 이날 오후 12시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들과 오찬을 하기로 한 서울 여의도의 모 음식점 앞에서 기자들로부터 전씨 조문 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고 "아직 언제 갈지는 모르겠는데 전직 대통령이시니까 가야 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공개적으로 조문을 하지 않겠다고 못 박는 등 당내 기류가 조문을 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자 윤 후보도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2시쯤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글을 올려 "저는 전두환 전 대통령 상가에 따로 조문할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한 가운데 온라인에서는 여러 인사와 매체들의 다양한 평가가 쏟아졌다. 여권에서는 고인이 끝까지 5·18 등에 대해 사과나 해명이 없었다고 비판 일색이다. 해외 언론에선 "한국의 전직 군사 독재자"란 수식어로 그의 생애를 표현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전 전 대통령이 "자연사"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1979년 12·12 쿠데타에 맞서다 숨진 군인들과 1980년 5·17 쿠데타와 5·18 학살에 대해 저항권을 행사하다 숨진 시민들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고 전했다. 고인의 명복을 빌기보다는 당시 고초를 겪고 희생된 이들을 생각하자는 취지다. 강기정 전 정무수석도 "광주의 수많은 죽음에 대한 아픔과 서러움은 여전히 진행중"이라며 "전두환이 죽었다고 진실까지 묻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자신이 다녔던 전북군산 제일고 교사들이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로 고문 당했던 '오송회 사건'을 언급했다. 당시 전 대통령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3일 별세한 고(故) 전두환씨의 상가를 조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글을 올려 "저는 전두환 전 대통령 상가에 따로 조문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당을 대표해서 조화는 보내도록 하겠다"며 "당내 구성원들은 고인과의 인연이나 개인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조문 여부를 결정하셔도 된다"고 말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전두환씨가 사망했습니다"며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이에 대한 정의를 세우는 길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따. 송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그의 사망소식에 끝까지 자신의 죄의 용서를 구하지 못한 어리석음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두눈으로 목격한 5·18과 이후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면서 "쿠데타를 시작으로 통치기간 동안 숱한 죽음들과, 그보다 더 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겪었던 형극의 삶을 기억한다"고 회고했다. 그는 "아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5.18의 진실을 밝히고 진심으로 사죄하길 간절히 바랐다. 민주주의를 지켜낸 5월 영령들을 위해, 그 민주주의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 반드시 짚어야 할 일이었다"며 "하지만 그 간절함마저도 이제는 이룰 수 없게 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송 대표는 "그의 생물학적 수명이 다하여 형법적 공소시효는 종료되었지만 민사적 소송과 역사적 단죄와 진상규명은 계속 될
23일 사망한 전두환씨 조문을 두고 정치권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민감한 대선 정국에서 전씨에 대한 조문이 자칫 여론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고인이 군부 독재정권의 장본인이자 5·18 민주화 운동을 유혈진압한 것에 대해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기에 정치권 반응도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이날 전씨의 사망 소식을 듣고 조문 계획에 대해 "현재 상태로는 조문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최하 수백명의 사람을 살상했던, 자신의 사적 욕망을 위해서 국가권력을 찬탈했던,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에 대해 마지막 순간까지도 국민께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 소식에는 "노 전 대통령은 우리 현대사에 빛과 그늘을 함께 남겼다. 고인의 자녀가 5·18영령께 여러 차례 사과하고 참배한 것은 평가받을 일"이라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하기도 했다. 송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향년 90세로 숨졌다. 지병을 앓던 전씨는 이날 오전 8시 40분쯤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출동한 경찰은 오전 9시 12분쯤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12·12 군사쿠데타를 함께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전씨의 사망에 대해 오월단체와 광주 시민사회는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유혈 진압을 사과하지 않은 채로 숨졌고, 전씨 사망으로 '헬기사격' 진위 여부를 다투는 재판도 흐지부지된 채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전씨 측은 이날 재차 "발포는 전두환 측과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시민사회는 범죄행위를 사후에도 끝까지 밝힐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무책임한 전두환, 사망으로 해결 실마리도 없어졌다"…분노한 시민단체들 ━ 전씨는 재임 시절 1980년 '서울의 봄'을 강경 진압하고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에 공수부대를 투입하는 등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비판받아
오월단체와 광주 시민단체는 23일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 "역겨운 삶을 살았던 학살자 전두환은 지연된 재판으로 결국 생전에 역사적 심판을 받지 못하고 죄인으로 죽었다"고 했다.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은 이날 성명을 통해 "국가번복과 5·18학살 주범, 민간인 대학살 책임자 전두환이 사과없이 사망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계속되는 거짓말과 왜곡으로 국민과 대한민국 사법부를 기망한 전두환은 반성과 사죄는 커녕 자신의 회고록으로 5·18 영령들을 모독하고 폄훼했다"며 "자신이 5·18과 무관하다며 구차한 변명과 책임회피로 일관해왔다"고 했다. 이어 "그동안의 재판이 대한민국 헌정사를 유린하고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책임자에게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는 '역사적 심판'이 되기를 기대해 왔지만 그의 죽음으로 이마저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이들은 "오월학살 주범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고, 만고의 대역죄인 전두환의 범죄행위를 명명백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