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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세, 경제, 기술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현장의 목소리와 흐름을 전달합니다. 복잡한 글로벌 이슈를 쉽게 풀어내 독자들이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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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서방 지도자들은 자국 수도에 주재하던 러시아 첩보원 수백 명을 추방하고 러시아와 연계된 기업들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이러한 공조 조치는 러시아가 정보를 수집하고 마이크로칩, 송신기, 무기 제조에 쓰이는 기계 같은 장비를 구매하기 어렵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국자들에 따르면 이후 추방된 첩보원 수십 명이 뜻밖의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일본이다. 허술한 방첩 관련 법률과 번성하는 하이테크 산업으로 인해 일본은 러시아의 전쟁 수행에 핵심 고리가 됐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추산에 따르면 러시아 미사일과 드론의 약 90%에 일본산 부품이 들어간다. 도쿄에서 진행되는 작전의 중심에는 '제20국'으로 알려진 러시아 군사정보 부서가 있다. 이 비밀 조직의 역할은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다. 서방 정보기관 5곳의 전현직 당국자들에 따르면 이 조직의 요원들은 외교관이나 사업가로 위장해 전쟁에 쓰이는 기술을 사들이거나 훔친 뒤 러시아로 밀반입한다.
세계 경제가 올해 에너지 위기로 인한 열병에서 막 벗어나는 듯하더니 다시 체온이 오르고 전망도 악화하고 있다. 이달 들어 원유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고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에서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다. 시리아에서 과테말라에 이르기까지 연료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으며, 인도와 필리핀은 긴급 에너지 절약 조치를 도입했다. 올여름은 돌이켜보면 많은 이들이 잘못된 안도감에 빠져 있었던 시기였다. 지난 6월 미국과 이란은 불안정한 휴전을 연장하고 세계 최대의 원유 수송 요충지인 호르무즈해협을 다시 개방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130척이 넘는 유조선이 걸프만을 빠져나와 세계 각지로 화물을 운송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합의는 곧 무너졌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에너지 가격에 추가적인 압력을 가하는 가운데 이제는 분쟁이 조기에 끝날 가능성도 거의 없어 보인다. 많은 전문가들은 가을과 겨울에 석유와 가스 시장의 수급이 위험할 정도로 빠듯해질 수 있으며,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소모전(消耗戰)은 오늘날 분쟁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전쟁은 어느 쪽이 상대의 군사 역량과 경제적 자원, 정치적 의지를 먼저 고갈시킬 수 있는지를 놓고 벌이는 지리한 싸움이 됐다. 물론 두 전쟁은 각각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니지만 이렇게 비슷한 궤적을 보이는 것은 오늘날 전쟁이 전개되는 방식에 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전쟁 내내 포병 부대는 포를 보유하고 표적의 위치도 파악했지만, 발사할 포탄이 없는 상황을 거듭 겪었다. 우크라이나 기술자들은 새로운 종류의 드론을 개발해도 몇 주 안에 러시아의 대응책이 등장해 잠시 누렸던 우위를 무력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란에서는 미국이 적의 군사력을 약화시키고 지하 깊숙이 묻힌 핵시설을 파괴했지만, 애초에 그 무기들을 위협으로 만든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 각각의 양상은 국가들이 갈수록 소모전 전략을 선택하거나 소모전에 갇히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서로 다른 간극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국가가 서류상 보유한 군사 역량과 실제로 투입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전력 사이의 간극이다.
몇 년 전 고객경험(CX) 컨설턴트인 에이드리언 스윈스코는 이 분야가 고객과의 실질적인 소통에서 벗어나 벤치마크, 지표, 기타 추상적인 개념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다고 한탄했다. "사람들이 세부 사항에 너무 얽매인 나머지 고객을 보지 못하고 있었어요. " 그는 말했다. 스윈스코는 친구와 맥주를 마시며 누군가 좀 더 "펑크(punk)"적으로 일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밴드 중 하나로 배드 릴리전을 꼽는 스윈스코는 그 말의 의미를 곱씹다가 펑크에 빗대는 것이 꽤 적절하다고 깨달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약 50년 전 펑크가 발전한 배경에는 재미있는 음악을 만드는 대신 프로덕션과 악기 연주에 지나치게 집중하게 된 로큰롤 장르에 대한 반발도 있었다. 펑크 뮤지션들은 오랫동안 체계적인 훈련의 부족을 에너지와 열정, 진정성 있는 DIY 정신으로 메워 왔다. "코드는 세 개면 돼. " 펑크록에서 유명한 말이다. "이제 밴드를 시작하자. " 스윈스코는 이러한 군더더기 없는 접근법이 고객 경험에도 통할 수 있다고 보았다.
1788년 2월 13일 정오, 영국 상원의원들이 행렬을 이뤄 웨스트민스터 홀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의사당 밖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들은 동인도회사의 벵골 총재로서 인도의 상당 부분을 통치했던 인물에 대한 탄핵 재판을 보기 위해 그곳에 모였다. 이는 영국 국가가 마침내 힘을 과시하며 당대 최고 기업 올리가르히, 말하자면 18세기 런던의 일론 머스크와 맞서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약 170명의 상원의원 외에도 판사와 변호사, 수많은 하원의원이 참석했다. 재판 개정 당시의 모습을 담은 유명한 기록에 따르면, 왕비는 "황갈색 새틴 옷을 입고 있었으며, 머리 장식은 소박했고 아주 살짝 작은 다이아몬드들이 박혀 있었다. " 왕비는 세 자녀와 함께 방청석에 자리했다. 상원의장으로 재판을 주재한 에드워드 설로(Edward Thurlow)는 당시에도 그랬듯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다음 말로 이 재판의 핵심을 요약했다. "기업에는 처벌할 육체도, 단죄할 영혼도 없다. 따라서 기업은 제멋대로 행동한다.
키이우의 일상이 다시금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다. 울부짖는 공습경보 사이렌과 공격 임박을 알리는 앱의 날카로운 경고음이 도시 전역에서 일상이 되었다. 주유소와 기차역, 쇼핑몰, 사무실,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하는 폭발은 끊이지 않는 일상이 되었다. 몇몇 보도에 따르면 수도를 떠나 더 안전한 서부 지역으로 피난을 떠나는 가족들의 행렬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 수도에 사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시 생활의 부침에 완전히 무감각해지지는 않았어도 꽤 익숙해진 터였다. 공습경보와 미사일, 정전, 러시아의 발전소 공격으로 인한 혹한이 그런 일상이었다. 하지만 8월 말 제트엔진을 장착한 샤헤드 드론이 대규모로 등장하고 러시아 미사일의 명중도 늘면서 공포와 파괴는 새로운 수준에 이르렀다. 한층 강화된 러시아의 종심縱深 타격 능력에 우크라이나 측 요격 미사일 부족이 겹치면서 전선은 다시 한번 키이우 시민들의 턱밑까지 다가왔다. 이코노미스트 취재진은 최근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에서 전쟁의 새 국면이 우크라이나에 물리적·심리적·경제적·정치적 압박을 가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마이클 월터스(25)는 대학을 졸업하고 첫 정규직 일자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지난해, 혈액암의 일종인 비호지킨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뉴질랜드 출신인 월터스는 오클랜드에서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 면역요법을 수차례 받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자 의사들은 그에게 CAR-T 치료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환자의 면역세포를 추출해 실험실에서 재설계한 뒤, 암세포와 싸우도록 몸 안에 다시 주입하는 치료법이다. 월터스는 미국과 인도는 물론 호주까지 치료처를 알아보았다. 멜버른의 한 병원에서 해당 치료가 가능하다고 밝혔으나 비용이 최대 60만 달러(8억6000만 원)에 달해, 그의 가족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상하이 시노유나이티드병원에서 월터스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비용을 지불했고 8월 18일 치료 덕분에 림프종이 완전 관해 상태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들었다. "삶에 대해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 월터스는 말했다. "10년이나 15년 전이었다면 제게 이런 선택지는 없었을 거예요.
남자들이 외롭다는 이야기,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LA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진 게레로의 글은 최근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남성 외로움 대유행"에 관한 여러 논평 중 하나이다. 논평에서 게레로는 이렇게 단언하고 있다. "외롭다고 인정하는 남자는 거의 없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남자가 외로움을 겪고 있다. " 게레로는 "가상 세계", 그리고 가상 세계 속 "포르노그래피와 이데올로기적인 자극제"가 외로움 대유행의 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달력에서 사교 일정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이러한 담론은 남성이나 남성성을 비판하는 답을 내놓는다. 가디언의 한 칼럼니스트는 이런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남성들은 힘, 독립성, 극기를 우선시하도록 사회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회화는 마음을 터놓고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기 어렵게 만든다. "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애틀랜틱의 다른 필자는 이렇게 쓴다. "우정을 유지하는 것은 원래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남성이 마음을 열고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종종 마주하게 되는 사회적 낙인은 이를 한층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조지아주 라파예트에 있는 GE어플라이언스의 약 10만㎡ 규모 조리기기 공장 조립라인에서는 사람과 로봇이 나란히 일한다. 대형 자동화 로봇팔이 전자레인지를 뒤집어 노동자들이 밑면에 배선 작업을 할 수 있게 해주며, 함께 속도를 내 15초마다 한 대씩 생산한다. 전체 작업 공정은 센서와 카메라로 감시되며, 여기서 수집된 데이터는 머리 위의 대형 화면에 표시되고 마진율이 낮기로 악명 높은 소비재 산업에서 마지막 한 방울의 생산성까지 쥐어짜 내려는 관리자들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사람이 앉아서 매일 수천 대의 제품을 검사하다 보면 딴생각이 들기 쉽고 힘들어요. 무감각해지는 일인 데다 솔직히 말해서 사람들은 이 일을 그다지 잘하지 못하죠. " 중국계 소유인 이 회사의 빌 굿 제조 총괄은 말했다. "하지만 AI 시각인식 시스템은 지치는 법도, 놓치는 법도 없어요. " 그러나 굿이 정말 기대하는 것은 다음 단계로 추진 중인 작업이다. 회사의 모든 공장, 모든 공정을 실시간으로 디지털 시뮬레이션해 문제가 생기는 즉시 진단하고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즐거워 보이는 일이 드물다. 공식 행사에서 그의 평소 표정에는 지루함과 짜증이 뒤섞여 있다. 마치 다른 곳에 더 흥미로운 일이 있다는 듯하다. 그가 기분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중국 관영 매체에서는 뉴스거리가 됐다. 지난해 10월 도널드 트럼프와의 회담 도중 그가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을 때, 한 보도에 따르면 그 장면은 "관찰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5월 베이징에서 열린 두 사람의 회담에서는 행사 연출도 시진핑의 표정 못지않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시진핑의 공식 관저 안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두 사람이 함께 등장했을 때, 거의 똑같은 안락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다만 미국 대통령을 위해 마련된 의자는 더 낮고 푹신해, 트럼프가 주인인 시진핑보다 몸집이 작고 자세도 더 구부정해 보이게 했다. 트럼프가 불쾌하게 여겼더라도, 내색하지는 않았다. 중국 공산당은 그 선배 격인 소련 공산당처럼, 종종 은근한 암시와 에둘러 말하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4월 시진핑은 대만 대표단을 초청해 오찬을 베풀었다.
캐나다와 미국이 양국의 현대사 사상 최악의 무역전쟁에 휘말린 직후, 유럽 정상들의 보안전화에 대서양 건너편에서 걸려온 전화가 울렸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캐나다와 유럽연합(EU)의 관계를 다음 단계로 끌어올리고자 힘을 쏟고 있었다. 서방 동맹의 경제적 연결망을 완전히 재구축하려는 대담한 승부수였다. 카니 총리는 수개월간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정상부터 유럽의 덜 알려진 일부 왕족까지 거의 모든 주요 지도자와 비공개로 대화해왔다. 캐나다와 그 국민 4100만 명을 유럽 27개국 공동체에 더욱 긴밀히 연결할 방안을 논의한 것이다. 이제 카니 총리는 미국과의 이혼에 따른 고통을 덜기 위해 유럽과의 결혼을 서둘러 주선하며 캐나다의 유럽 선회를 가속하고 있었다.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위협이 오히려 미국의 북쪽 이웃을 유럽에 바짝 밀어붙인 셈이다. 정상들이 반농담으로 캐나다를 EU의 새 회원국이라 부르기 시작할 정도다.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에 따르면 카니 총리는 유럽 담당 특사에게 EU나 그 공동시장에 정식으로 가입하지 않는 범위에서 가장 야심 찬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
모하메드 루이지가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무슬림형제단 관계자들의 첫 접근을 받은 것은 13세 때였다. 18세가 됐을 때는 전 세계에 이슬람 통치를 수립하려는 무슬림형제단에 충성을 맹세한 상태였다. 프랑스에서 공부하던 1999년에는 모스크 두 곳에서 무슬림형제단을 대표하게 됐고 릴(Lille)의 프랑스무슬림학생회 지부장도 맡았다. 루이지에 따르면 자신의 임무는 "이슬람주의를 확산하는 것"이었다. 이슬람이 정부와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가 돼야 한다는 사상이다. 그러나 2006년에 이르러 이 운동을 일종의 "전체주의적 프로젝트"로 인식하고 경악한 루이지는 무슬림형제단을 탈퇴했다. 그는 이 운동이 프랑스와 무슬림 모두에게 "실질적인 위험"이라고 여긴다. "우리는 무슬림 공동체가 이슬람주의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야 해요. " 프랑스 당국도 무슬림형제단의 활동을 우려하고 있다. 2025년 프랑스 내무부가 발표한 '프랑스 내 무슬림형제단과 정치적 이슬람' 보고서는 무슬림형제단이 머지않아 국가의 세속주의 원칙과 여성 인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