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전반에 걸린 여러 전문가들의 고견을 들을 수 있습니다.여러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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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미디어 서비스로 나아가는 '디지털 생태계의 핵심 관문'인 스마트폰은 정보 검색과 금융거래, 본인 인증, AI 비서에 이르기까지 우리 일상을 함께하고 있다. 이러한 필수재를 어떤 조건으로 구매할지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에 대한 접근성, 국민의 미디어 주권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다. AI 기술이 진보하고 다양한 기능이 탑재되는 만큼 단말기 가격은 지속 상승하고 있으며, 그에 비례해 이용자 부담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여건을 고려해 지난 11년간 스마트폰 지원금 상한을 규제하던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 지난해 7월 폐지됐다. 규제의 빗장이 풀렸다고 곧바로 이용자 혜택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보의 비대칭성'을 악용해 지원금 혜택이 소수에게만 집중되거나 불필요한 고가요금제 또는 부가서비스 가입을 강요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존재한다. 이에 방미통위는 최근 '이동통신단말장치 등의 건전한 유통환경 조성을 위한 시책'을 수립해 발표했다.
정부의 2027년 예산안에서 AI(인공지능)가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AI 예산안을 2026년 9조9000억원에서 2027년 21조3000억원으로 대폭 확대한 것은 AI가 국가 성장전략과 재정운용의 중심축이 됐음을 의미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예산의 단순 규모를 넘어 이 예산으로 어떤 질적 AI 전환을 만들어낼 것인가다. AI는 산업현장에서 제조불량 감지, 고객데이터 분석, 품질개선 등 일상의 도구로 자리잡았다. 정부 역시 바우처, 실증, R&D 사업으로 기업의 AI 활용을 지원했다. 특히 AI 바우처는 중소·중견기업의 진입문턱을 낮추고 공급기업엔 시장진입 기회를 제공하며 초기확산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을 바꿀 때다. "AI를 얼마나 도입했는가"를 넘어 "AI로 일하는 방식과 산업구조가 얼마나 바뀌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현재 정책과 현장에서 쓰이는 AX(AI 전환)엔 두 개념이 혼재돼 있다. 기존 업무구조를 유지한 채 AI를 적용해 효율을 높이는 'AI 도입(Adoption)'과 AI를 바탕으로 업무프로세스와 운영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AI 기반 전환(Transformation)'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신뢰를 말로만 확인하지 않았다. 나무나 도기 같은 물건을 둘로 나눠 한 조각씩 가졌다. '심볼론(symbolon)'이라 불리는 표식이다. 다시 만났을 때 맞물리는 절단면은 서로를 알아보는 증표였다. 상징을 뜻하는 영어 '심볼(symbol)'이 여기서 나왔다. 신원의 본질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 화면에 이름과 사진이 뜬다고 신분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 발급했는가, 위·변조되지 않았는가, 효력이 살아 있는가. 이 세 가지가 확인돼야 비로소 신뢰할 수 있는 신분증이 된다. 모바일 신분증도 이 세 가지에서 출발한다. 국가가 발급하고 본인 확인을 거쳐 본인 명의 스마트폰 한 대에만 담긴다. 신원정보는 암호화되고 전자적 정보에는 유효기간을 둔다. 발급·폐기와 진위·유효성 검증을 위한 공통 기반도 국가가 운영한다. 지난 8월 시행된 전자정부법 시행령은 이런 안전장치를 발급기관의 의무로 구체화했다. 보안을 강화하면서 편의성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도 특징이다. 필요한 정보만 골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수출이 새로운 이정표를 향해 가고 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확대되는 가운데 식품·화장품을 비롯한 K-소비재도 한류를 타고 세계 시장에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실제로 올해 8월까지 K-뷰티 수출은 전년 대비 31% 증가한 97억 달러를 기록했고, K-푸드는 역대 최단기간인 253일 만에 수출액 100억 달러를 돌파하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수출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에게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좋은 제품을 갖고 있어도 현지 시장의 정보와 네트워크가 부족하면 적합한 바이어를 찾기 어렵고, 실제 거래까지는 역시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8월 한국무역협회가 1090개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0%가 '해외 거래선 발굴의 어려움'을 가장 큰 애로로 꼽았다. 결국 수출마케팅의 핵심은 기업을 적합한 시장과 바이어에 정밀하게 연결하고 실제 거래로 이어가는데 있다. 무역협회 해외마케팅 사업도 이러한 '연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먼저 상반기 일본·베트남·인도네시아·프랑스에 이어 하반기에는 미국에서 'LA K-프리미엄 소비재전'을 개최하고, 상하이 '중국국제수입박람회'에서는 88개 기업을 위한 한국관을 열어 미국과 중국이라는 가장 큰 시장에서 현지 바이어를 직접 만날 기회를 제공한다.
이혼 사건에서는 비상장주식의 분할 방법이 쟁점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법원은 지난 5월29일 선고한 판결(2024므16033, 16040)에서 비상장주식의 재산분할 방식에 관한 기준을 제시했다. 이 사건 2심 법원은 비상장회사를 운영하는 남편에게 비상장주식 전부를 귀속시키고 그 가액에 상응하는 재산분할금을 현금으로 아내에게 지급하도록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아내에게도 주식 일부를 귀속시키는 등 다양한 분할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남편은 비상장주식 전부를 보유하고 아내는 재산분할금 전액을 현금으로 지급받는 것이 당사자 사이의 형평을 현저히 해칠 수 있어서다. ━원칙으로서의 '대상분할'과 비상장 주식의 특수성━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에서 부부 공동재산을 나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으로 재산 자체를 나누는 '현물분할', 특정 재산을 부부 일방의 소유로 귀속시키고 상대방에게 그에 상응하는 금전을 지급하게 하는 '대상분할(代償分割)' 등이 있다.
높이를 낮추자고 했더니 건물이 늘어났다. 신속통합기획 자문회의에서 주변과의 조화를 위해 단지 남동쪽 건물을 낮추자는 의견이 모였다. 개선안에서 건물은 낮아진 대신 동이 늘었다. 줄어든 층에 담지 못한 주택이 다른 자리로 옮겨갔다. 동 사이는 좁아졌다. 밖에서 보기엔 나아졌지만 정작 주민에게는 더 답답한 단지가 될 수도 있었다. 정비계획을 검토할 땐 결정의 여파를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높이를 바꾸면 배치와 동 간격, 사업비와 주민 부담이 달라진다. 공원과 도로도 마찬가지다. 배치를 바꿔 풀리는 일도 있지만 필요한 땅과 돈을 누가 감당할지 다시 따져야 할 때도 있다. 공공성 확보 요구에는 구체적인 대안과 계산이 따라야 한다. 재개발·재건축은 노후한 집을 바꾸고 주택을 공급하며 도로와 공원 등 기반시설을 다시 짜는 일이다. 구역 안 주민뿐 아니라 옆 동네에서 학교와 역을 오가는 사람의 생활도 달라진다. 한번 정해진 길과 건물의 배치는 수십 년간 남는다. 서울시 신속통합기획은 정비계획 초기부터 시와 자치구, 주민, 전문가가 개발 방향을 함께 논의하는 공공지원제도다.
지난 여름부터 흥행 중인 영화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 이후 오디세우스의 귀향 과정을 다룬다. 오디세우스가 원하는 건 더 큰 영토가 아니라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는 이타카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러나 귀향은 단순한 복귀가 아니다. 떠난 사람도 변했고, 기다린 사람과 집도 변했다. 그래서 귀향에는 안도와 상실이 함께 있다. 관객이 이 오래된 이야기에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낯선 신과 괴수의 세계를 함께 지나며 결국 자기 삶의 그리움과 두려움을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이야기는 문화적 차이를 지운 평균값이 아니다. 오디세이는 매우 그리스적인 이야기이기에 오히려 귀향과 기다림, 용기와 오만이 선명해진다.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여러 음유시인과 예술가를 거치며 계속 달라졌다. 놀란 감독의 이번 영화도 오래 이어져 온 이야기를 오늘의 관객에게 맞게 다시 다듬은 결과다. 월터 옹은 인류가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다시 '2차 구술문화'로 이동한다고 했다. 문자와 기술 위에서 이야기의 현장성과 참여성이 되살아난다는 뜻이다.
일본 교토의 오래된 찻집 앞에는 늘 긴 줄이 늘어선다. 관광객들은 작은 말차 상자 하나를 사기 위해 한참을 기다린다. 사람들이 찾는 것은 단순한 말차 제품이 아니다. 교토 남부의 작은 도시 '우지'(Uji)가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와 명성이다. 오늘날 세계 시장에서 지역의 이름은 더 이상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고베 비프', '고르곤졸라 치즈'처럼 지역의 역사와 생산 방식, 생산자의 노력, 소비자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하나의 브랜드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보성녹차', '광양불고기', '임실치즈' 등은 오랜 기간 소비자의 신뢰를 쌓은 지역 브랜드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지방 도시를 찾아 지역 음식과 특산물을 경험하는 모습도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다. 지역의 명성이 관광과 소비를 이끌고 다시 지역경제의 활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지역 브랜드의 가치는 결국 소비자의 신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신뢰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하나의 지역 이름이 브랜드로 자리 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신뢰가 흔들리는 데는 순식간이다.
한미 전략적 투자 합의는 우리가 익숙한 해외직접투자와 성격이 다르다. 총 3500억 달러 가운데 2000억 달러는 미국이 선정하는 전략산업 프로젝트에 한국이 자금을 공급하고, 1500억 달러는 조선 분야의 직접투자·보증·선박금융 등이다. 2000억 달러는 연간 200억 달러 한도에서 집행되며 미국 대통령이 최종 사업을 선정한다. 배분 가능한 현금은 한국이 원리금을 회수하기 전까지 한미가 절반씩, 이후에는 한국 10%, 미국 90%로 나눈다. 사업 위험을 부담하지만 수익 배분은 제한되는 이례적인 구조다. 대신 미국은 가능한 경우 한국 기업을 공급업체로 우선 고려하고, 토지·전력·용수와 인허가에도 협조하기로 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개인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2025년 포천 500대 기업 가운데 109곳이 해외 출생 1세대 이민자가 세운 회사다. 미국은 외국 기업에도 기회의 땅이었다. 소니는 미국 시장을 발판으로 세계기업으로 성장했다. 기업은 미국에서 사업을 키워도 본사가 지분과 핵심기술을 보유하면 성과를 배당과 수출, 기술·서비스 수입으로 본국에 돌려보낼 수 있다.
세계 식량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작황 불안과 지정학적 갈등, 자국 우선주의 확산으로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먹거리와 농식품 원료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에게 이러한 변화는 위기인 동시에 농식품산업의 체질을 바꿀 기회다. 그 전략적 해법 중 하나가 새만금 신항만과 연계한 글로벌 푸드허브 조성이다. 올해 말 신항만의 첫 잡화부두 2선석이 완공될 예정이다. 그러나 항만은 부두를 건설했다고 저절로 활성화되지 않는다. 성패는 안정적인 물동량과 경쟁력 있는 배후산업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부두를 먼저 건설한 뒤 화주와 기업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방식으로는 조기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개항 초기부터 화물을 창출할 산업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이 글로벌 푸드허브 조성을 본격화 해야할 골든타임인 이유다. 새만금은 대규모 농생명용지와 식품산업 기반을 갖추고, 신항만·공항·철도·도로가 연계되는 복합물류 거점으로 발전하고 있다. 신항만과 접근성이 높은 지역에 푸드허브를 조성한다면 국내외 농식품 원료의 반입부터 저장·가공·검역·통관·콜드체인·수출에 이르는 과정을 까지 한곳에서 처리할 수 있다.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주인공은 은행원이다. 그의 아버지는 작은 나사 공장을 운영했다. 거래처의 도산으로 자금난에 빠지자 아버지는 오랫동안 거래해 온 은행에 추가 융자를 부탁했다. 은행은 이를 거절했다. 아버지는 위기 앞에서 세상을 등진다. 아들은 훗날 복수를 다짐하며 바로 그 은행에 입사한다. 한국 시청자의 입장에서 이 장면을 보면 씁쓸한 이질감이 든다. 극 중 악덕 은행조차 그 나사 공장을 직접 들여다보고 평가하기는 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은행들은 그 매몰찬 거절조차 하지 않는다. 번듯한 담보가 없는 나사 공장은 시작부터 은행의 고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계대출은 아파트라는 확실한 담보와 획일화된 신용점수에 좌우되고 자영업자 대출은 보증기관의 보증서 유무로 결판난다. 담보와 보증서만 확인하는 기계적인 과정에 은행의 주체적인 '판단'이 개입될 여지는 없고 판단이 생략된 곳에 진정한 '심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치열하게 심사하지 않으니 책임질 일도 없다. 담보대출이 변제되지 않으면 경매가 실행되고, 보증부 대출이 부실화되면 보증기관이 대위변제하고 그 손실은 고스란히 세금으로 전가된다.
세계 교육계 '학력 올림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2025 결과가 발표됐다. 성적표는 올해도 눈부시다. 대한민국 만 15세 학생들은 OECD 38개국 중 수학 1~2위, 과학 1~3위, 읽기 1~9위를 휩쓸며 최상위권을 지켜냈다. 처음 도입된 '디지털 세계에서의 학습'에서도 2~5위에 올랐다. 비회원국 53개국을 포함해도 선두권을 놓치지 않았다. 부모의 배경이 학력에 미치는 영향도 작은 것으로 나타나 교육의 '공정성'과 '포용성' 지표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화려한 순위 이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가장 어두운 그림자는 문해력의 추락이다. 한국 학생들의 읽기 평균 점수는 2022년 515점에서 501점으로 14점 급락했다. 상위수준(5수준 이상) 학생 비율은 13. 3%에서 10. 3%로 줄었다. 영상과 쇼츠, 파편화된 디지털 정보에 둘러싸여 호흡이 긴 글을 읽으며 사유하는 능력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이 부른 문해력의 약화는 비단 우리 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가 함께 마주한 도전이기도 하다.